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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의술을 대접하라! 이종찬의 건강 바로읽기
세계지도를 펴놓고 유럽과 중국을 비교해보면, 참으로 기묘한 생각이 든다. 유럽을 다 합쳐도 땅덩어리가 중국보다 작은데다가, 인구로 따지면 비교할 필요도 없다. 그렇게 작은데도 유럽은 수많은 나라들이 서로 다른 독특한 문화를 발달시켜왔다.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이라면, 영국, 프랑스, 독일의 문화가 얼마나 서로 다른지를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일반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의료인들조차도 의학의 경우는 유럽이 똑같다고 간주해버린다. 그들이 이렇게 생각하는 근저에는 의학은 보편타당한 과학이기에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실은 이와 정반대이다. 같은 유럽이라도 똑같은 질병에 대한 치료방식이 서로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증상이라도 진단결과가 다를 수 있다. 같은 영어문화권인 영국과 미국의 의학도 서로 다르다. 의학의 문화적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동아시아의 의학에 대해선 문화라는 말을 갖다붙여도 거부감을 느끼지 않는다. 이들은 동아시아 의학이 과학적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동아시아에서 수천년간 면면이 전해내려온 의학적 지혜들을 일상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전통적인 의학의 지혜 중에서 우리가 앞으로도 갈고 다듬어야 할 것들이 무수히 있겠지만, 그중 대표적인 것이 침구술이다. 침과 뜸은 원래 한국인에게 삶의 친근한 수단이었다. 그러던 것이 개화기에 들어오면서 수난을 겪게 되었다. 일제시대에, 일본이 전통 의학을 제도적으로 없애는 대신 침구사만을 인정했던 이유가 자못 궁금하지만, 침구술은 명맥을 이어갔다. 그런데 불행은 오히려 해방 이후에 발생했다. 한의학이 제도권으로 다시 복원되고 전통 의학에 대한 관심이 계속 고조되고 있지만, 정작 침구술은 전통 의술로서의 자긍심을 점점 잃어가고 있다. 한의사들에서도 침구술은 다른 분야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기가 없다. 그보다는 쉽게 상업화가 가능하고 돈이 되는 첨단기기와 장비를 이용한 치료방식들이 한의학 분야에서 무분별하게 증가하고 있다. 이렇게 우리 스스로 전통 의술인 침구술을 무시하고 있는 사이에, 미국과 유럽에서는 침구술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되고 있다. 미국에서는 아예 침구사를 따로 인정하는 곳도 있다. 전문적인 연구결과들도 쏟아져나오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의 전통 의학에 대한 서구시장의 진출과 연관되어 있다. 미국의 세계화 전략 중 하나가 동아시아 의료시장을 장악하는 것이다. 이웃 일본은 아예 침구술만을 배울 수 있는 전문대학이 따로 있어서, 3년 정도 공부하면 자격증이 주어진다. 동아시아의 역사와 문화를 공부하기 위해 미국으로 유학가듯이, 침구술을 배우기 위해 유학을 가야 하는 서글픈 상황이 다가올지도 모른다. 침구술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서양 의술과 이를 모방하는 한의학으로 국가 의료시스템을 운영하는 한, 국민 의료비는 더욱 증가할 것이며 건강보험은 휘청거릴 수밖에 없다. 침구술을 더욱 대중화하는 것은 국민건강과 국민경제에 모두 도움이 된다.
아주대 의대 교수 medph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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