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2001년08월22일 제373호 

사회적 연대를 위한 주거공간

이종찬의 건강 바로읽기

1970년대에 압구정동에 들어선 현대아파트는 서울에 살았던 사람에게는 선망과 시기의 대상이었다. 특혜분양을 받은 고위층과 현대건설의 관련 당사자들이 여론의 입방아에 올랐지만, 그들은 아직도 한국 정치의 중심에 서 있다. 이후로 아파트는 서울 강남 일대에 우후죽순처럼 세워졌고, 전국 대도시로 확산됐다.

한국에 참된 의미의 아파트문화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아파트는 인간의 다양한 삶들을 규격화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아파트의 크기에 따라 삶에 대한 기준이 설정된다. 20평형 아파트에 살면, 20평형 아파트의 삶을 강요당한다. 사회적 잣대도 그렇다. 20평형의 인간으로 평가받는다. 서울 여의도에 처음 아파트가 들어서고 초등학교가 세워졌을 때, 아이들은 아파트 크기별로 놀았다. 사람들의 문화적 다양성은 아파트의 획일적인 크기에 의해 부정되고 만다. 문화적으로 다양한 사회일수록 건강한 사회일진대, 1970년대 이래로 아파트가 한국의 대표적인 주거공간이 되어가고 있는 사실은 건강성에 매우 위험한 신호일 수밖에 없다.

한국의 높은 인구밀도를 생각할 때, 아파트가 ‘필요악’이라는 주장은 일면 타당해 보인다. 하지만 아파트의 공간구조를 살펴보면 이런 주장도 설득력을 잃고 만다. 70평이나 80평이 넘는 아파트나 20평대 아파트나 옆집을 모르고 살기는 마찬가지이다. 삶의 질을 보장하는 복지문화의 정착은 사회적 연대에서 출발하는데, 옆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판에 어떻게 한국사람들이 복지문화를 즐길 수 있겠는가.

뿐만 아니라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아파트가 빼곡이 들어선 동네는 그곳이 압구정동이든, 최근에 난개발의 대명사가 되고 있는 경기도 용인이든간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삶의 문화를 공유할 수 있는 공동의 공간이 없다는 것이다. 교회가 대표적이다.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데 들어선 교회들은 지역 동네의 주민들과 사회적 연대를 만들어가는 데 별로 고민을 하지 않는다. 서구사회에서 교회가 문학작품 발표와 낭송을 위한 독서공간으로, 연극과 오페라를 공연하는 문화장소로, 미술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미술전시장으로, 지역사회와 오랫동안 호흡을 같이해왔음을 상기할 때 한국에서 교회, 대학, 공공기관들은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과 물과 기름처럼 분리되어 있다.

1970년대만 하더라도 중·고등학생들에게 대중적인 통학수단이었던 자전거가 사라지고, 아파트가 밀집해 있는 동네에 입시학원 버스와 부모들의 승용차가 질주하고 있는 현상은 한국의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고 있다. 성장발육이 한창인 청소년들에게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아파트가 있는 동네 공간을 바꾸어야 한다. 유치원, 음악학원, 미술학원의 미니버스들이 아파트 안까지 들어와 어린이들을 태워가는 삶의 방식으로는 사회적 연대를 키워나갈 수 없다. 안전하게 걸어다닐 수 있도록 아파트 동네의 거리들을 바꾸자.

1970년대 한국사회에 처음 아파트가 모습을 보였을 때는 그렇다쳐도, 아직까지도 아파트가 들어서는 동네의 모습이 이렇다면, 이는 대단히 암울한 미래를 던져준다. 자라면서 숨박꼭질을 하지 못하는 어린이들은 정서적으로 장애상태가 된다. 이런 어린이에게 승용차를 태워서 학교를 보내는 부모들이 모여사는 사회는 정서적으로 항상 공황상태일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이다.

아주대 의대 교수 medpi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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