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결핵균 감염자를 구별하라?강건일의 과학읽기
2000년 5월4일 미국 의학학술원(Institute of Medicine)은 2035년까지 미국에서 결핵을 근절하기 위한 방안을 다룬 보고서를 냈다. 이 단체의 성격상 의회에서도 건의를 반영하기 위한 검토에 들어갈 것이 분명하다. 보고서의 제목에 ‘태만의 종식’이라는 문구가 있다. 이들은 1972년 결핵관련 예산 삭감 등 자기도취와 태만이 1985년과 1992년 사이 결핵환자의 급격한 증가를 가져왔으며, 이를 통제하는 데 뉴욕시에서만 10억달러나 되는 엄청난 돈을 지출한 것을 분석했다. 보고서는 관련 정부 연구비를 현재의 3배인 매해 2억8천만달러로 증액하여 향상된 진단법과 백신 연구 등을 촉진하는 방향도 제시하고 있으나 근절책의 핵심은 이민자 중 균 감염자를 가려내 치료한다는 계획에 있다. 신규 결핵환자 중 이민자 수가 1992년의 27%에서 1999년에는 43%로 증가했으며 앞으로 결핵환자의 대다수가 이민감염자에서 나타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이런 조처는 당연해 보인다. 따라서 이를 다룬 언론은 이민절차의 수정을 부각시켰다. 균 감염자를 가려내기 위한 투베르쿨린 피부 반응검사를 의무화하고 양성자라도 이민은 허가하되 치료한 다음에야 영주권을 준다는 내용이다. 이 규정은 60%에 가까운 한국은 물론이고 세계 평균 36% 감염률을 웃도는 국가에 적용된다. 결핵분야의 연구자들은 이 보고서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BCG 백신만 해도 우리의 경우도 1987년 통계로 보아 74% 예방효과에 그치고 있다. 내성 균주에 효과가 있는 치료약도 나오지 않고 있다. 이 모든 이유는 결핵이 후진국 병이며 약 개발의 열쇠를 쥐고 있는 거대 제약기업이 값이 저렴해야 하는 결핵약 개발을 외면해왔기 때문이다. 연구비 증액을 계기로 무엇인가 돌파구가 나올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하지만 균 감염자를 가려낸다는 계획은 단순하지 않다. 균 감염자는 환자가 아니다. 더욱이 병을 전염시키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특정집단에 검사를 의무화하는 것은 윤리적인 문제가 될 수 있다. 또한 피부반응검사만 해도 미국과는 달리 우리가 의무적으로 접종하는 BCG에 의해 양성반응이 나온다. 이를 구별할 신뢰성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런데도 보고서는 양성자는 무조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규정한다. 이외에도 일반 체류자와 해외여행 미국인을 고려하면 근절 목표 달성에 의문이 있다. 미국학자들의 이런 논의는 새삼 우리의 현실을 생각하도록 한다. 미국에는 1999년 1만7천여명의 신규 환자가 발생했으나, 그보다 훨씬 적은 인구의 우리는 그 두배가 넘는다. 미국의 결핵사망률은 인구 10만명당 0.5명꼴로 대단히 낮지만 우리는 7.1명이라지 않은가. 그런데 결핵의 날 김성규 교수의 발표에 따르면 대학병원에서 진단된 타인에게 균을 옮길 수 있는 균 양성환자 154명 가운데 적절한 치료가 이뤄지는 환자는 81명이라고 한다. 과학평론가·전 숙명여대 교수 dir@kop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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