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2000년12월12일 제338호 

[과학] 아말감 전쟁의 영원한 종식을…

강건일의 과학읽기

앨프리드 슈토크(1876∼1946)는 붕소화학의 역사에 남아 있는 독일 화학자이다. 그는 밀폐된 실험실에서 수은 통을 사용해 기체를 포획하는 등 연구를 진행하다 여러 곳에서 수은에 노출됐다. 이유를 모른 채 두통, 현기증, 기억감퇴, 설사로 고통받기 시작한 그의 병은 만성 호흡기 질병과 청각장애로 발전됐다. 온갖 치료법을 찾았으나 허사였다. 1923년 거의 기억상실이 왔을 때에야 의사로부터 자신의 병이 수은중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슈토크는 그뒤 20년간 많은 시간을 수은 연구에 몰두했다. 그는 예민한 분석법을 고안하여 토양, 물, 굴뚝 연기 등 환경 물질 속의 수은의 함량을 측정하였고 스스로 실험 동물이 되어 수은 화합물의 독 증상도 기록했다. 특히 그는 수은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한 노력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그의 이름은 아말감전쟁과 함께 남아 있다.

1830년대 미국 치과에는 프랑스로부터 은 아말감(은과 수은의 합금)이 도입됐다. 은 동전을 잘게 깎아 수은을 혼합하여 죽상으로 만든 다음에 압착하여 수은을 제거한 뒤 치아 공간에 넣어 굳히는 방법이었다. 미국 치과의사협회는 수은 독성 등 문제를 들어 회원들의 아말감 사용을 금지시켰다. 이로부터 20여년 동안 벌어진 아말감 찬성자와 반대자 사이의 다툼을 제1차 아말감전쟁이라고 부른다. 이 전쟁은 아말감 찬성자의 승리로 종결됐는데, 부산물로 향상된 아말감의 제조법이 나왔다. 그러다가 1926년 슈토크는 아말감 사용자의 오줌 속 수은의 농도를 제시하며 수은 독성 문제를 들고 나왔다. 슈토크의 주장에 과학성이 부족했다는 평가가 나왔으나 그가 치과의사에게 “대부분 마요네즈 만드는 솜씨가 서투르다”며 격렬한 반응을 보인 배경에는 당시 아말감의 제조 및 시술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깔려 있다. 이때 미국 치과의사협회는 아말감의 사용을 고수했는데, 1932년 최초로 은 아말감의 표준 규격이 제정되는 등 제2차 아말감전쟁의 성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뒤 50여년간 독성학의 발전과 안전 기준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치과 아말감 문제는 다시 거론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1990년 수은이 뇌 등 장기로 이전됐다는, 아말감으로 충전한 양 치아에 관한 논문이 발표되자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일어났다. 이에 맞추어 미국 는 ‘당신 입 속의 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수은 독성을 문제삼는 쪽을 내세워 아말감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뤘다.

이로부터 시작된 제3차 아말감전쟁을 계기로 미국을 위시한 여러 국가에서 아말감의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최근까지 아말감의 안전성에 문제가 없다고 확인해주고 있지만 문제가 전혀 없지는 않아 보인다. 적어도 아말감 충전이나 제거 그리고 치아 손상시, 수은이 흡수될 가능성이 있으며 특히 수은 독성에 예민한 어린이나 임산부의 경우 주의가 필요하다. 이제 대체 충전물로 바꾸어 전쟁을 영원히 종식시켜야 하지 않을까?

전 숙명여대 교수·과학평론가 dir@kopsa.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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