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2000년09월27일 제327호 

[과학] 탈리도마이드의 비극

강건일의 과학읽기

1998년 7월 미 식품의약청(FDA)은 한센씨병 합병증 치료에 탈리도마이드의 사용을 허가했다. FDA는 위험에 비해 혜택이 압도적으로 크기 때문에 허가했다고 설명했으나 40살 전후의 전세계 탈리도마이드 피해자들의 착잡한 심경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 이들은 FDA의 안전조처가 완전한지 다짐받고자 했다. 앞으로 탈리도마이드가 암을 위시한 여러 질병에도 사용될 것이 거의 확실하기 때문에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탈리도마이드가 아니라 그 구조를 바꾸어 안전한 약을 내놓아야 한다는 이들의 주장에도 일리가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독일에서 개발돼 1957년 10월에 의사의 처방이 없이도 구입할 수 있는 ‘무독성’ 진정 수면제로 판매된 약이다. 1961년 11월 독일에서 그리고 1962년 여름에야 일본에서 판매가 금지된 것으로 보아 거의 5년간 사용되었다. 그 때문에 유럽에서만 8천명, 전세계 46개국에서 1만명 이상의 기형아가 태어났다. 이 비극은 예방이 가능했을까? 약물이나 식품에 의해 기형아가 태어날 가능성은 1930년대 이래 동물 모델로 연구돼 왔으나 지식과 제도가 아직 성숙하지 못했으므로 관련 내용을 약 허가 규정에 도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분석한다.

하지만 부작용 보고를 신중하게 다뤘다면 상당 부분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1959년 11월 독일의 한 의사가 탈리도마이드 복용 환자에 나타난 심각한 신경손상 부작용을 개발 기업체에 알린 이래 1961년 봄까지 독일과 영국에서만 수백건의 같은 부작용 사례가 보고됐다. 만일 기업체가 이를 묵살하지 않았거나 또는 정부에서 관심을 가져 탈리도마이드를 처방 약으로 전환만 했더라도 수천명의 기형아는 태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문제를 덮기에만 급급했던 기업체의 태도는 탈리도마이드가 기형아 출산의 범인임이 드러난 뒤에도 계속되었다. 확실한 증거를 수집한 의사가 1961년 11월15일 약 판매를 중지해야 한다고 알렸으나 듣지 않았다. 결국 11월26일 신문에 보도되고나서야 “의문이 해소될 때까지” 판매를 중지하겠다고 결정한 것이 기업체이다. 심지어 일본에는 “실제 아무 문제가 없다”고 알려 금지조처가 늦어졌다는 기록도 있다.

탈리도마이드는 미국에는 상륙하지 못했다. 약 허가신청서가 FDA에 제출됐으나 1960년 부임해 첫 번째 과제로 이 약의 심사를 맡은 프랜시스 켈시는 승인을 거절했다. 켈시는 독일에서 수행한 동물 실험 등 전(前)임상 시험 자료가 엉성한 것을 발견했으며 신경손상 부작용을 문제로 보았다. 만일 모체로부터 태아로 약 성분이 이송된다면 문제는 심각할 수밖에 없는데, 신청서에는 판단 자료가 없었다.

탈리도마이드 비극이야말로 과학자의 철저하지 못한 연구, 보건 행정기관의 안이한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기업체의 영리 추구가 인간 생명에 어떤 위해를 줄 수 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제 늦게나마 신약개발을 시작했으나 과학적 그리고 정신적 전통, 모두 뒤져 있는 우리에게 이보다 귀중한 교훈은 없어 보인다.

전 숙명여대 교수·과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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