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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밀레니엄 과학읽기/ 건강을 위한 ‘소비의 함정’ 건강 증진을 위해 ‘소비’를 하는 사회문화적 현상이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 건강 식품을 비롯하여, 몸에 좋다고 알려지면 뭐든지 사서 먹으려는 음식 문화는 가장 전형적인 예에 속한다. 생명을 의미하는 ‘바이오’(bio)라는 접두어가 주택 시설, 화장품, 생수, 의류, 신발 등 온갖 종류의 상품에 붙기 시작하면서 건강을 위한 소비는 가히 부가가치가 높은 산업이 되었다. 이처럼, 상품의 원래 사용 가치는 ‘건강이라는 이름’에 접속되는 사용 가치로 바뀌고 있거나, 아니면 더욱 광범위한 사회문화적 의미를 갖게 된다. 여러 가지 레저 활동들이 전자에 해당하며, 몸매 만들기는 후자에 해당한다. 또다른 국면은 ‘건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행위들이 자기 정체성(self-identity)을 실현하는 중요한 방식이 되어간다는 점이다. 건강은 성, 사회 계급, 젠더, 인종 등의 개념들을 도덕적·사회적으로 구성하여 자아와 타자의 경계를 정의하는 한 방식이 됨으로써, 주체의 형성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와 같은 현상의 공통점은 시민 개인의 선택에 따른 소비가 유행병처럼 널리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시민 각자가 자기 정체성의 실현을 위한 중요한 전략으로 건강증진을 추구하고 그것이 소비를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시민권의 개념도 ‘건강한’ 시민의 권리에 초점이 모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민권의 개념도 새롭게 정립되고 있는데, 소비와 개별화는 건강한 시민의 권리를 담보하기 위한 출발점이 된다. 이는 분명히 신자유주의적 정책 철학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데, 시민은 자신의 건강에 대한 책임을 지는 존재가 된다. 국가가 시민 대중의 건강에 책임을 질 필요가 없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시민 개인은 소비를 통하여 자발적으로 국가의 목표에 순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신자유주의적인, ‘건강한’ 시민의 권리인 셈이다. 이런 양상은 급속하게 확산되고 있다. 건강 문화에 이런 흐름을 비판적으로 보게 되는 까닭은 건강의 이름으로 대중적 소비가 무차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으며 이런 형국이 신자유주의적 풍속을 타고 우리의 삶에 깊숙이 파고들어 정체성을 바꿔놓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은 시민 개인이 책임지게 되는 몫이 되고 국가는 시장 경제에 이를 방치하기 때문에 건강의 불평등 현상은 가속화된다. 건강 상품을 소비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사람으로 더욱 심각한 분열 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그래서 세상은 소비를 할 수 있는 ‘건강한’ 사람과 소비를 하지 못하는 ‘건강하지 않은’ 두 집단으로 나뉘게 된다. 건강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이런 문화가 지니는 문제점들이 이처럼 분명한데도, 대중적 소비를 통한 건강증진이 날개를 활짝 펼 수 있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개별화와 소비를 정당화시키는 도덕적 매커니즘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강과 질병의 구분은 의학적 판단의 범주를 넘어 도덕적 규범의 대상이 된다. 질병에 걸리는 사람은 대체로 자신의 생활 행태에서 질병의 원인을 찾아 고쳐야 하는 개별적인 책임을 지게 된다. 개인이 건강의 위험 요인을 철저히 관리하고 조절해야 하는 책임을 맡는 순간, 그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도덕적 의무도 지게 된다. 비만, 흡연, 알코올중독 등은 건강의 도덕적 가치를 반영하는 전형적인 사례에 해당한다. 이와 같이 일상 생활의 의료화와 신자유주의적 가치가 건강 문화에 깊숙하게 스며들어 자기 정체성의 도덕적 규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종찬/ 아주대·의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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