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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 밀레니엄과학읽기/의료의 공공성을 다시 생각한다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타고 이루어지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도, 서구사회의 시민 대중이 시장경제에 맡겨두지 않고 끝끝내 국가의 개입을 정책적으로 요구했던 분야가 의료였다. 유럽에서 신자유주의의 기수로 자처했던 대처 총리도 영국 의료보장 제도의 틀을 바꾸지 못했다. 오히려 유럽사회에서 보건의료 분야는 더욱 사회화되었으며 공공성이 더욱 정교화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 이에 반해, 한국의 상황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은 국가가 시민의 생명에 대해 지극히 전근대적 정책 철학을 갖고 있다는 데 있다. 그것은 모자(母子)보건에서 여실히 나타난다. 유럽은 중상주의에서 산업 자본주의로 이행하는 과정에서 국가 생산력의 원천인 산모와 영유아에 대한 인구 관리를 중요한 국가 정책으로 삼았다. 하지만 여전히 가부장제적 가치관에 근거한 대한민국에서 이들을 위한 의료는 시장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여성들은- 지역적·경제적 차이에 관계없이- 임신하게 되면 곧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산부인과 의사에게 자신의 몸을 맡긴다. 여성 자신의 몸 내면에서 들려오는 메시지보다는 임신에서 출산에 이르기까지 주기적으로 받게 되는 의학적 검사 결과에 더욱 귀를 기울인다. 이런 검사가 과연 필요한지 아닌지에 대한 의문을 품을 겨를도 없이, 첨단 테크놀로지에 근거한 검사들이 의료보험제도에서 규정된 보험망을 피해 의료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여성들에게 적용된다. 출산의 순간에 산모는 출산 방식을 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갖지 못한다. 정상분만과 제왕절개 사이에서 오직 의사에 의한 임상적 판단만이 권위를 가질 뿐이다. 제왕절개에 의한 분만이 한국에서 유독 비율이 높은 것은, 응급실의 경우처럼, 정상분만으로 인한 의료보험수가가 현저히 낮기 때문일까? 아기를 모유와 분유 중에서 어느 것으로 기를 것인지 크게 고민할 필요도 없다. 우리나라보다도 여성 취업률이 높은, 그래서 직장에 보육시설이 상대적으로 잘 갖추어진 나라들에 비해 분유에 의한 양육 비율이 높은 것도 한국사회에서 여성의 몸은 이미 상품화가 상당히 진척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런 전근대적인 처지에서 한걸음도 못 벗어난 채 의료 정책을 바꾸려고 하는 사안이 바로 의약분업이다. 의약분업이 한국의료사에서 지니는 중차대한 의미는, 의료 인력과 시설 등을 포함하여 국가가 소유하고 관리할 수 있는 의료 자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여 의료의 사회화와 공공성이 제도적으로 정착되지 않은 상황에서, 의학 지식, 의술 행위, 의료 권력을 한꺼번에 바꾸려고 한다는 점이다. 의약분업에서 어느 쪽 당사자들이 승리할 것인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이런 논쟁들을 통하여 의료의 사회화와 공공성이 점진적으로 뿌리를 내릴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논쟁에서 이해단체들이 대대적으로 내세우고 있는 아젠다에 빠져들지 말자. 이는 어차피 당사자들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는 산물에 불과하다. 그보다 우리가 심각하게 고민하고 탐구해야 할 것은, 생명현상을 분자생물학적 환원론으로 파악하는 의학지식, 건강증진보다는 질병 치료를 지향하는 의술을 자본화하는 시장논리, 일상생활을 의료화하여 몸을 상품화된 객체로 전락시키고 있는 의료권력이 서로 작용하여 한국사회에서 의(醫)에 관한 지형을 어떻게 만들어가는지이다. 이런 과정에서 의료의 사회화와 공공성을 거듭 검증하고 다지자. 의료의 근대성을 향한 대장정에 참여하고 있는 모든 주체들은 이를 잣대로 삼아 자신의 행동방식과 조직원리를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이종찬/ 아주대 교수·의학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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