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과학 ] 2000년07월25일 제319호 

[과학] 디지털회오리/ 컴퓨터를 뒤집는 엽기적 도전

몇년 전인가 컴퓨터 도매상가를 어슬렁거리다 뒷골을 땅치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다. 어떤 컴퓨터 전시장이었는데 웬 컴퓨터가 메인보드에 카드만 몇장 꽂힌 채 있는 게 아닌가. 케이스는 홀짝 벗어젖히고 그렇게 있는 거다. 게다가 모니터도 전자총이 보이게 벗겨져 있고, 키보드도 자판은 어디로 갔는지 찾을 수도 없고 감지판만 덜렁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컴퓨터는 제대로 동작하는 것 아닌가? 이런 신기한 일이! 그 신기함은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나보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한번씩 멈춰서서 쳐다보고 갔으니 말이다. 그러나 필자가 그러했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다지 오래 관심을 보이지는 않았다. 가만 생각해보면 별로 신기할 것도 없지, 케이스가 없다고 컴퓨터가 동작하지 않을 이유는 전혀 없으니 말이다.

컴퓨터에 대해 우리가 갖는 이미지란 것과 컴퓨터의 아키텍처를 공부하는 사람의 그것과는 상당한 차이가 있을지 모른다. 실제로 컴퓨터가 동작하는 데 꼭 필요한 것만 모아서 그것을 책상 위에 펼쳐도 컴퓨터를 사용하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잘못해서 파워 서플라이에 손을 댄다거나 드라이버 같은 쇠붙이로 마더보드를 긁는 짓만 하지 않는다면 별다른 문제없이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마더보드의 몇몇 구성물을 뜯어버려도 컴퓨터는 문제없이 동작한다. 시리얼 포트쯤이야 뽑은들 어떠하랴! 컴퓨터를 사각의 틀에 갇힌 그 무언가로 생각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도전은 시작된다. 그리고 엽기적 컴퓨터 마니아가 되느냐, DIY 마니아가 되느냐의 기로에 서게 된다. 필자는 당연히 전자를 선택했고, 수십대의 컴퓨터를 기형아로 만든 뒤에야 만족감을 느낄 수 있었다.

컴퓨터에 대한 첫 엽기적 도전 대상을 물색해보니 그래도 가장 만만한 것은 마우스였다. 싸고 위험성도 없으니까. 이틀 동안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끝에 마우스를 조이스틱으로 만들기로 작정을 했다. 어차피 마우스나 조이스틱이나 그게 그거니까…. 마우스를 뜯어서 칼로 깎아내고 본드로 붙이고 버튼을 전선으로 연결해서 배쪽에 연결한 뒤 볼 부분의 접지점을 스틱과 연결시킬 계획이었다. 그런데 스틱으로 쓸 만한 물건이 없었다. 할 수 없이 라면 먹을 때 사용하려던 나무젓가락 두개를 연결시켜 마우스 볼 구멍에 꽂아넣었다. 방향이 좀 맞지 않기에 마우스 유틸리티를 사용해서 x축과 y축을 거꾸로 움직이게 만들었더니 드디어 마우스의 탈을 쓴 조이스틱을 만들 수 있었다! 아… 그때의 만족감이란 DIY로 조립한 슈퍼컴퓨터의 그것보다 훨씬 컸다.

그뒤 몇 가지 도전은 이어졌는데 최후의 작품은 모니터로 어항만들기였다. 학교에서 버리는 모니터를 주워와 깨끗이 닦은 뒤 유리판을 사방으로 붙이고 방수처리를 해서 어항으로 만들었다. 이 작품의 이름을 ‘사이버 어항’이라고 지었는데 결국 유리판을 사느라 돈을 너무 많이 쓰는 바람에 금붕어를 구할 수 없어 친구에게 넘기고 말았다. 컴퓨터에 대한 엽기적 도전, 다 쓸데없는 짓이라 치부한다면 어쩌겠나. 평생을 컴퓨터와 함께 살아야 하는 바에야 한번쯤 비공식적 일탈을 해보고 싶다 이거지.

이준영/ 인츠닷컴 바이보물 웹마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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