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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움직이는 세계 등록 2003.06.11(수) 제463호

[움직이는 세계] 세계시민이여, 부시를 막아라!

G8반대 시위 이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방향… “2004년 대선을 미국인들에게만 맡겨둘 수 없다”

생수의 상표로 널리 알려진 자그마한 프랑스 국경도시 에비앙. 경제선진 8개국 연례 정상회의 (G8) 개막일인 6월1일에 맞추어 에비앙에서 제네바에 이르는 길은 전 세계에서 몰려든 약 10만명(경찰 추산은 5만여명)의 대규모 반G8 시위대로 가득 채워졌다. 비록 2001년의 이탈리아 제노바 G8반대 시위보다는 규모가 작았지만 제네바 역사상 최대 시위인파로 기록되었다.

이번 집회는 이라크전 이후 이른바 ‘반세계화·반전’ 운동 진영이 세계적 차원에서 조직한 첫 대규모 집회라는 점에서 많은 주목을 받았다. 약 1천만명 이상이 전 세계 주요도시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전개한 2월15일 이라크전 반대 시위에 비해 규모는 작았지만, 이번 시위는 이라크전 이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향배를 가늠해볼 수 있는 중요한 사건이었다.

G8이 아니라 G1을 타깃으로

2월15일 반전시위가 ‘전쟁반대’였다면 이번 행사조직위원회는 ‘부시를 막아라’(Stop Bush)를 주된 구호로 채택했다. 향후 반세계화·반전 운동의 방향과 전략을 함축하고 있는 이 구호에 대해 주최쪽의 한 관계자는 “조지 부시 대통령의 에비앙 G8 회의 참석을 물리적으로 저지함으로써 비록 이라크 전쟁이 끝났지만 부시의 정책을 반대하는 세계의 여론이 여전히 높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자 한다”고 설명했다.

사실 행사의 공식 이름은 ‘G8 반대 회의’였지만 논의의 초점은 부시 정권에 대한 반대로 모아졌다. 시위 전에 조직된 토론회에서 일부 참석자들은 “이라크전 이후 G8은 이제 미국이라는 하나의 거대국가 G1과 나머지 7개국(G7)으로 재구성되었다”며 “앞으로 투쟁의 초점이 G8보다는 제국인 G1에 모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스위스의 일부 인권단체들은 G8반대 집회를 준비하면서 조지 부시와 토니 블레어를 전쟁범죄자로 기소하는 운동을 추진했다. 이들은 “국제연합(UN) 안전보장이사회의 승인 없이 전개된 이라크 전쟁은 국제법 위반이므로 부시와 블레어는 대규모 민간인 피해에 대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에 따르면 스위스 정부는 지난 2000년 대량학살(genocide)에 관한 국제협정을 비준했고, 따라서 스위스 사법당국은 스위스 국적뿐만 아니라 스위스 영토에 거주하거나 방문하는 협정위반자를 구속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들의 법적 대응은 결실을 맺지 못했다. 부시 대통령이 스위스와 프랑스 국경에 위치한 제네바 공항에 도착한 뒤, 곧장 군용 헬리콥터를 타고 에비앙으로 날아갔기 때문이었다.

이번 G8반대 집회 주최쪽은 6월1일의 시위 이전에 스위스의 제네바와 프랑스의 안마스에서 각종 토론회를 조직했다. 2001년까지 G8반대 집회의 최대 의제는 외채탕감이었다. 그러나 9·11과 이라크 전쟁을 거치면서 G8 회의는 경제중심에서 대테러전쟁과 군사안보로 중심축이 기울었다. 이에 따라 G8반대 집회의 성격도 달라졌다.

올해 집회 참가자들의 공통된 관심은 “월등한 군사력을 배경으로 등장한 팍스아메리카 제국을 어떻게 볼 것인가”였다. 이를 반영하듯 각종 토론회에는 기존의 세계화 관련 경제용어에 군사용어가 대거 추가되었다. 예를 들어 금용거래과세시민연합(ATTAC) 프랑스 지부는 ‘금융 불안전성, 무장한 세계화 그리고 지구적 지배구조의 위기: 다른 세계는 가능한가?’라는 주제 아래 경제전쟁, 사회-생태전쟁 및 군사전쟁으로 나누어 토론회를 조직하였다. 이 토론회 참가자들은 “미국은 물론 G8국가 대다수가 최대의 무기 제조·수출 국가다”라고 지적하면서 “이라크전을 전후해 군사적 측면에서의 세계화가 부각되면서 경제선진국, 특히 미국의 군산복합체에 대한 대응이 중요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군사적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해

경제적인 영역에서는 “다국적 기업이 끼치는 사회적·환경적 피해에 대해 어떻게 효과적으로 대응할 것인가”에 대한 논의가 많은 주목을 받았다. 그린피스 프랑스는 “G8 소속 국가, 특히 미국의 다우 캐미칼, 캐나다의 몬산토, 독일의 바이에르, 프랑스의 토탈 등 대표적인 석유·화학·유전공학 관련 다국적 기업의 과거 및 현재 기업관행이 사회적·환경적으로 얼마나 부정적 영향을 끼쳤는지”를 지적하면서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자발적 윤리강령이 아닌 법적 구속력이 있는 국제조약을 만들어야 한다”는 캠페인을 전개하였다.

공교롭게도 생수의 도시 에비앙의 G8반대 집회에서 물이 단일 이슈로는 가장 큰 주목을 받았다. 전 세계 수백개의 시민사회운동단체들이 서명한 성명서는 “유럽연합(EU)이 유럽의 물 관련 다국적기업의 사적 이윤을 위해, 72개 세계무역기구(WTO) 회원국의 물 관련 산업 개방을 공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이러한 조처를 당장 중지하고 물을 독점적 이윤이 아닌 인간적 욕구충족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성명서에 따르면 프랑스의 ‘비방디’와 ‘수에즈’사는 전 세계 물 관련 서비스산업의 70%를 차지하고 있으며 독일의 토마스 워터사가 세 번째로 그 뒤를 따르고 있다.

한편 여러 토론회에서 올해 9월 멕시코 칸쿤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무역기구 각료회의의 전망과 대책이 비중 있게 다루어졌다. ‘칸쿤을 탈선시켜라’(Derail Cancun)는 ‘부시를 막아라’와 함께 이번 집회의 대표적 구호였다. G8정상회담의 성명서에는 칸쿤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었다. 이는 G8과 개발도상국간에 농업보조금 문제를 둘러싼 협상이 여전히 난항을 겪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이를 두고 일부에서는 “현재 칸쿤을 둘러싼 상황은 99년의 시애틀과 매우 비슷하게 형성되고 있다”며 나름대로 기대감을 표시했다. 즉, 시애틀 WTO 각료회담의 ‘실패’가 외부적으로는 대규모 거리시위와 내부적으로는 미국과 유럽 및 개발도상국의 입장 차이에서 기인했는데, 이번에도 비슷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의 이창근 국제국장은 “칸쿤의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지 속단하기 힘들지만 이번 집회는 이라크 침공 저지가 실패로 끝난 이후 다소 주춤했던 반세계화·반전운동이 다소 굳었던 몸을 풀고 동시에 다가올 칸쿤을 대비하는 전초전 성격을 지닌다”고 이번 행사의 성격을 진단했다.

미국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하자

내년 G8정상회담은 미국에서 열릴 예정이다. 12월 예정인 미국 대선을 불과 3개월 정도 앞두고 개최될 내년 G8정상회담에는 미국 안팎에서 훨씬 큰 규모의 시위대가 결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에서 온 한 참가자는 “미국에서는 부시를 국민 대다수가 아니라 정치판사에 의해 임명된 대통령으로 간주하는 유권자가 적지 않다”고 지적하면서 “‘부시를 막아라’ 구호는 내년 12월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통한 정권교체를 의미한다”고 주장했다.

사실 토론기간 중 많은 사람들은 “미국의 정책이 전 세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고려할 때, 다가오는 2004년 말 미국의 대통령 선거를 단순히 미국의 유권자들에게 맡겨둘 수만은 없다”는 주장을 했다. 아시아의 한 참가자는 “그동안 미국의 선거감시단으로부터 배운 노하우를 이제 미국에 역수출해야 할 때가 되었다”며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낙선운동 기법을 미국 대선에 적용해보면 어떠냐”는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그동안 미국은 해외에 선거감시단을 파견하여 간접적인 평화적 정권교체를 지원해왔다. 그리고 부시정권은 무력을 통해 이라크에서 유혈 정권교체를 이루었다. 그러나 전 세계의 ‘부시를 막아라’ 여론이 이 추세로 간다면 부시 정권은 내년 대선에서 국제 선거감시단의 감시 아래 평화적 정권교체의 도전에 직면할지 모른다.

제네바=글·사진 이성훈 전문위원 leesh@iprolink.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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