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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애국 언론’들의 합창! 〈뉴욕타임스〉 편집총국장 사퇴 사건을 계기로 돌아본 9·11 이후 미국 언론의 현주소
요즈음 미국 언론보도를 보고 있노라면 궁금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났어도 사담 후세인의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아프간 전쟁이 끝났어도 오사마 빈 라덴의 행적이 유령처럼 떠돌고 있다. 전쟁 전에는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던 언론들이 지금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실상을 파헤치지 않고 있다. 적어도 언론은 그 사실에 대해 ‘왜’라는 의문을 가져야 하고, 취재를 통해 독자들에게 알릴 책임이 있다. 전문가들은 미국 언론이 9·11 이후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유례없는 장문의 ‘고해성사’
창사 152년의 전통을 지닌 <뉴욕타임스>는 최근 한 신참기자가 저지른 표절과 왜곡 사건의 여파로 편집국장을 포함한 고위 간부들이 사퇴하는 등 진통을 겪고 있다. 지난 6월5일 <뉴욕타임스>는 성명서를 통해 하웰 레인스(60) 편집총국장과 편집국 2위 서열인 제럴드 보이드(52) 국장의 사표를 수리하고, 조지프 랠리벨드(66) 전 편집총국장을 임시 총국장으로 발령한다고 발표했다. 편집국 역사에 유례없는 인책 사건이다. 5월11일치 <뉴욕타임스>에는 지금까지 미 언론에서 볼 수 없었던 ‘정정보도’가 게재되어 언론계는 물론 독자들을 놀라게 했다. 전국부 소속 제이슨 블레어(27) 기자의 오보·표절·왜곡 기사에 대한 사과와 함께 경위를 밝힌 것이다. <뉴욕타임스>는 약 7500개의 단어로 4개 지면에 걸쳐 블레어 기자가 지난해 10월 이후 작성한 73건 기사 중 36건의 ‘사기성’ 기사 보도의 경위를 소개했다. 단순히 정정보도를 한 것뿐만 아니라 문제 기사들에 대한 독자들의 제보도 요청했다. 이어 5월13일에는 편집국의 1단계 자체조사를 보도하면서 사전에 오보를 막지 못한 중요한 원인은 편집국 고위 간부들간 공유 시스템이 허점을 드러내고 인사관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리고 5월14일에는 <뉴욕타임스> 창사 이래 ‘최악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발행인을 포함한 편집국 비상총회를 인근 극장을 빌려 약 2시간 동안 진행했다. 언론사 자체가 취재 대상이 돼버린 비상총회는 외부 언론에 비공개로 실시됐는데 상당히 뼈아픈 대화들이 쏟아져나왔다는 후문이다. 이 자리에서는 평소 문제점이 노출된 블레어 기자를 옹호해왔던 하웰 레인스 편집총국장에 대한 책임론까지 거론됐다. 한 기자는 레인스 국장에게 “사퇴할 의사가 없는가”라고 했으나, 당사자는 “다시는 이런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강구책을 마련할 것이며 이번 일로 사퇴하지 않겠다”고 답변했고, 아서 설즈버거 주니어 발행인도 “사퇴서가 제출되더라도 반려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AP통신은 익명의 참석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퓰리처상 수상자까지 문제 일으켜
문제의 블레어 기자는 흑인계로 <뉴욕타임스> 인턴을 거쳐 정식 기자가 됐다. 이 과정에서 실력보다는 인종별 고용기회균등법의 혜택으로 정식 채용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즉, 일정 비율의 기자를 흑인·라티노 등 소수민족계에서 선발하는 과정에서 흑인인 블레어 기자가 쿼터제로 정식 기자가 됐다는 것. 이를 두고 다른 백인계 기자는 “흑인계 기자들에게 잘못을 지적할 때 자칫하면 인종차별로 오해당하기도 했다”고 토로했다. 블레어 기자 때문에 초상집이 된 <뉴욕타임스>는 2주가 채 못 되어 또 ‘문제성 기자’가 나타나 줄초상을 맞고 있다. 1996년에 퓰리처상까지 받은 베테랑 기자인 릭 브래그는 지난해 보도한 기사가 문제가 되어 정직처분을 받았다. 브래그 기자는 지난해 6월 플로리다주의 소규모 굴양식장을 취재했는데 그 기사의 신빙성에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최근 온라인 매거진 <슬레이트>는 “브래그 기자의 이름으로 보도된 굴양식장 기사는 사실 그의 보조원인 웨스 요더가 취재한 것”이라고 폭로했다. 보조원인 요더는 <슬레이트>와의 인터뷰에서 “굴양식장 취재를 위한 인터뷰와 탐사는 모두 내가 했고, 브래그 기자는 단지 하룻밤 현장을 다녀왔을 뿐이다. 그러나 브래그 기자는 내가 취재한 내용을 보고 받아 생생한 기사를 작성했다. 나는 보조원이라 애초 내 이름이 게재되는 것을 기대하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한편 당사자인 브래그 기자는 <컬럼비아 저널 리뷰>와의 인터뷰에서 “나와 요더는 둘이 함께 좋은 기사를 작성했다”고 밝혔다.
“민감한 질문도 못하는 분위기”
한편 오보가 발생했을 때 신문들이 지체 없이 정정보도를 한다고 응답한 수는 63%였다. 오보에 대한 신속한 정정보도는 독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뉴욕타임스>가 블레어 기자의 표절·오보 사건에 대해 이례적으로 4쪽에 걸친 장문의 ‘고해성사’를 게재한 것도 독자들의 신뢰를 다시 얻기 위한 조치인 것이다.
영국의
언론 칼럼니스트인 팻 힉키는 요즘 미국 언론을 사람에 비유해 ‘중년의 위기’라고 표현하면서, 언론이 현재의 위기에서 생존하려면 저널리즘의 원리원칙을 바로 세워야 한다고 상기시켰다. 즉, 언론의 기본이 진실성, 공정성, 정확성, 객관성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미국의 언론뿐 아니라 오늘의 한국 언론도 심각하게 생각할 과제이다.
LA= 김지현 전문위원 lia21c@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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