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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가 침략자를 구원하리라 ‘통화 전쟁’은 이라크 침공의 또 다른 이면… 금융자본의 사도 부시는 총을 들 수밖에 없었다
더블딥의 ‘국제적’ 해결
감세조처의 철회는 국내정치에서 부시 대통령의 정치력을 심각하게 훼손시켰을 것이다. 무엇보다 부시의 주요 정치 기반이 요즘 유행하는 전쟁 용어를 빌리면 ‘감세동맹’이어서 반발이 엄청난데다, 자신의 정책 오류를 공공연히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이럴 경우에는 아버지 부시의 예에도 못 미치는, 즉 전쟁조차 못 해보고 재선에 실패할 위험까지 감수해야 한다. 더더욱 불확실한 것은 감세철회를 통해 연방예산을 늘리고 대규모 경기부양책을 쓴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과연 얼마만큼 효과가 있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제까지의 경기후퇴는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의 역사적 금리인하로 버텨왔지만, 이제는 그나마 더 이상 인하할 여지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따라서 미국의 이라크 전쟁은 이 같은 경제적 문제를 ‘국제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시사하는 것으로 읽혀야 한다. 뿐만 아니라 미 국내경제의 해결은 국제적일 수밖에 없는 조건을 또한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지난 3월24일치 <뉴욕타임스>에 실린 제임스 그랜트의 분석은 참고할 만하다. 그는 먼저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이 동시에 세계 최대의 채무국이라는 점에 주목하라고 강조한다. 1990년대 말의 거품은 해외와 국내로부터 유입된 자금, 결국 채무에 의해 만들어졌다. 미국의 지난해 말 현재 채무규모는 2조3천억달러에 이른다. 이 채무는 이라크전이나 9·11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무역수지 적자규모는 5천여억달러에 달한다. 그가 보기에 미국이 처한 난점 가운데 하나는 이 같은 대규모 채무나 적자에도 불구하고 달러가치가 계속 유지돼야 한다는 데 있다. 만일 채무상환 요구가 시작되면, 즉 주식시장이나 국채시장에 투자된 외국계 자본이 빠져나가기 시작하면 미국의 금융권은 한순간 혼란에 빠지고 만다. 이는 곧 달러가치 하락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인플레이션의 주요 요인이 될 수 있다. 두 가지는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어느 쪽이 먼저라고 말하기는 매우 어렵다. 미국경제의 약화를 예상하고 투자된 해외자본이 유출됨으로써 달러화가 약화되고, 이로 인해 미 국내적으로는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나마 빠듯한 FRB의 금리인하 여력은 더욱 압박을 받는다. 그가 보기에 지금 FRB가 고려하는 것은 인플레이션으로 전화할 수 있는 하나의 차등금리제다. 그것은 현재의 금리(현재 FRB의 금리 결정은 은행 간 단기대부- overnight bank loan- 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더 낮출 수 있는 대신 금리에 영향을 끼치는 또 다른 한축인 장기국채 가격을 떨어뜨리려는 것이다. 이 같은 이중금리는 역사적으로 모두 흥미로운 시기에 실시되었다. 한번은 1947~51년에, 또 다른 경우는 1960년대 초반 케네디 정권 아래서 이루어졌다. 둘 다 한국전과 월남전이라는 전쟁 시기와 일치한다.
달러화의 수요를 찾아
장기국채의 가격인하(정확히는 수익률 하락)는 재정적자를 이유로 한 통화량 확대, 쉽게 말하면 돈을 더 찍어내서 조성된다. 그랜트는 미국이 이 같은 경제적으로 상호 모순되는 조처를 원활하게 취하기 위해서는 해외와의 협조, 즉 외교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경제는 전쟁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분석은 전혀 다른 해석을 가능케 한다. 경제원칙상 통화량이 늘어나면, 더구나 본원통화가 늘어나면 인플레이션 압력이 생겨나지만, FRB의 이 같은 차등금리제 구상은 다른 정치적 함의가 있다. 만일 다른 곳에서 달러화에 대한 수요가 생겨나면 인플레이션 압력은 상쇄된다. 다른 곳 그곳은 해외일 수밖에 없다. 즉, 달러화가 지금보다 더욱 국제 결제수단으로서의 영역을 넓히면 미국은 두 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을 수 있다. 재정적자를 통화 발행을 통해 메우면서도 국제통화로서의 달러가치를 유지시킬 수 있다. 이 같은 달러화 강세는 수입물가의 인상 압력을 상쇄할 것이다. 문제는 경제적 요인에 의한 달러화의 수요 확대는 이미 1990년대 말에 한계에 도달했다는 데 있다. 더구나 유럽이 경제적 통합을 가속화하면서 유로화가 달러화에 위협적으로 등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달러화 지위를 비경제적 방식으로, 즉 강제적으로 확장시키는 것밖에는 도리가 없다. 그리고 전쟁을 통한 힘의 과시는 가장 유효적절한 수단 가운데 하나였다(그것의 평화적 방식은 1997~98년의 아시아 금융위기였다). 미국의 이 같은 이해관계는 이라크 전쟁에 대한 각 열강들의 태도와도 정확하게 일치한다. 이미 유로화에 통합된 프랑스·독일이 전쟁에 반대했을 때, 평화 애호나 인도주의적 구호 밑에 자신들의 국내자본 이익도 함께했다는 것을 고백하는 데는 침공 뒤 채 2주도 걸리지 않았다. 아직 유로화에 통합되지 않은 영국의 기회주의적, 또는 제3의 길의 태도는 유로권과 달러권 사이에서 자신의 자리를 잡으려는 파운드의 몸부림이다(현명하게도 블레어는 올 초 유로화 통합관련 국민투표를 내년으로 연기한다고 선언했다). 미국은 이라크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지만, 내면에는 또 다른 전쟁, 통화전쟁이 진행 중인 것이다. 이는 1930년대 공황이 일어났을 때 각 경제권이 블록화되어 벌이던 통화전쟁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우습게도 제3세계 사막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전투는 제국주의 열강들 사이의 통화전쟁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이라크의 석유나 지정학적 위치도 이 전쟁에서는 중요하다. 그러나 이라크의 석유나 재건이 전 세계적 불황을 걷어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군산복합체에는 전쟁이 복음이겠지만, 경제적 효과는 미국 경제 전체로 보면 미미하다. 군사적 케인스주의가 과잉생산에 놓인 경제에 대한 처방이 되기에는 이라크전은 지나치게 규모가 작은 전쟁이다. 그럼에도 이라크전이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보는 것은 미국 내 통화주의자들의 확신과 달러가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금융자본의 소망이기도 하다(시장은 참으로 노골적으로 반응한다. 이라크전이 단기간에 끝날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다우지수가 올해 1만을 넘을 것이라는 관측이 득세하고 있다).
무조건 전쟁이 필요했다
미국이 폭격을 시작했을 때 일각에서 나돌던 ‘charade’(그림자 놀이)론은 단지 음모론이 아니라 상당한 설득력을 갖는다. 즉, 미국이 유엔 안보리에서 결의안을 상정하려고 협상한 것은 실제 합의를 얻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제스처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전쟁 발발 한달간 부시의 발언을 살펴보면, 처음에는 대량살상무기 제거에서, 다음은 사담 후세인 축출, 그 다음은 후세인 망명 보도가 언뜻 비칠 때마다 후세인 망명 여부와 상관없이 이라크에 진격해 후세인 ‘체제’를 없애버리겠다는 식으로 변해왔다. 따라서 미국은 무조건 전쟁이 필요했다는 관측이 가능하다. 전쟁 명분을 둘러싼 모든 발언들은 단지 ‘정치적 수사’에 지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물론 미국도 전쟁으로 인해 상당한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한다. 무엇보다 미국의 재정이나, 국제적 역학관계상 속전속결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 부담으로 남는다. 미국이나 국제적 자본가들이 전쟁 직전 ‘이라크전에 대한 불확실성의 제거’를 운운한 것은 ‘단기전으로 끝낼 수 있다면 해치우고, 아니면 다른 길을 감수하라’는 통첩으로 이해될 수 있다. 전쟁의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정면돌파를 시도함으로써 부시 정권은 자신의 진면목을 확인시켜주었다. 그는 금융자본이 자신의 안정을 위해 믿어도 좋을 만한 사도였던 것이다. 그것은 모험이었지만 확실한 모험이었다. 그가 믿은 것은 정밀무기가 아니었고, 그 무기가 민간인을 살상하더라도, 이 전쟁의 명분이 뭐라도 상관없이 그를 지지해줄 미국 민중들을 정확하게 읽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구호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승리가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신념 아래 움직였고 대중들은 그를 배반하지 않았다. <워싱턴포스트>가 최근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미국민의 70% 이상이 이번 전쟁에서 이라크가 대량학살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지더라도 전쟁에 동의한다고 답했을 때 그들은 정확하게 자신들의 이익을 표현했다. 미국이 베트남전에서 패배한 뒤 겪은 20여년간의 생활수준 후퇴를 그들은 기억하고 있었던 것이다(미국민의 실질 가처분소득이 1차 오일쇼크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은 거품의 최전성기인 2001년이었다).
침묵하는 다수는 전쟁의 신과 함께
뉴욕=이공순 전문위원 yk189@columbia.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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