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이는 세계 ] 2003년02월19일 제447호 

정당방위의 논리와 전쟁

사실 테러리스트 조직과의 연관성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상태에서 수천km 떨어진 중동에서 석유를 깔고 앉은 후세인 정권이 어떻게 미국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지 언뜻 이해하기 힘들다. 제3자가 보기에 그다지 납득할 수 없을 만한 근거로도 미국 안에서 전쟁 찬성 비율이 이 정도나마 나오는 것은 국민이 정치가들이 동원하는 다른 논리, 이른바 ‘국가안보’ 논리에 어느 정도 동의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에게 ‘위협’이라는 것의 실체는 부차적인 것이다. 문제는 어떤 사태를 위협이라고 파악하는 인식틀이 어떤 것이냐에 달려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인이 정당방위에 대해 갖고 있는 생각은, 그들이 왜 이 전쟁에 수긍하는지 보여주는 좋은 준거가 된다. 미국에서 정당방위의 적용범위는 상당히 넓을 뿐 아니라 적극적이기까지 하다. 부시 독트린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선제공격론(pre-emptive strike)은 미국인 다수에게 공격적인 것이 아니라 방어적 개념으로 받아들여진다.

미국 사회 주류의 정당방위 개념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난 사례는 로스앤젤레스 폭동을 불러온 1990년 초 로드니 킹 사건 때였다. 폭동의 직접적 도화선이 된 것은 백인들만으로 구성된 배심원단이 로드니 킹을 폭행한 혐의로 기소된 경찰관들에게 정당방위라는 명목으로 무죄를 선고했기 때문이다. 백인 배심원단의 평결을 잘 살펴보면 이는 인종주의적인 동시에 그들이 평소 갖고 있는 정당방위에 대한 개념이 함께 깔려 있다. 5명의 경찰관이 한 사람의 흑인을 둘러싸고 곤봉으로 무차별 폭행했을 때, 백인 배심원단이 본 것은 로드니 킹이 200파운드가 넘는 거구며, 그가 슈퍼크랙이라는 마약에 취해 있었다는 것, 더구나 이 마약은 순간적으로 엄청난 괴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 등이었다. 한마디로 정당방위를 가르는 핵심은 위협이 실제적이냐가 아니라 잠재적이냐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잠재적일 수 있는 위협이 너무 많다. 후세인에게 적용시켜보면 이라크가 가지고 있는 대량살상무기뿐 아니라 그가 테러리스트들과 연관이 있는 것, 나아가 그가 ‘잠재적’ 테러리스트와 연관이 있는 것, 그가 석유를 이용해 미국을 궁지에 빠뜨릴 수 있는 것까지 모두 미 국가안보에 잠재적으로 위협적일 수 있다. 따라서 이 위협을 제거하려고 할 때마다 실제로는 더 많은 잠재적 위협을 발견하게 된다. 유일한 해결책은 후세인을 없애고 이라크에 미국이 이해할 수 있는 정권과 제도를 만드는 것뿐이다. 그것만이 이들이 통제할 수 있는 위협이기 때문이다.

미국이 이라크에서 후세인 이후에 일본의 예를 본떠 식민정책을 수행하겠다는 것은 이 같은 의지의 소산일 따름이다. 이달 초 일본의 방위청 장관이 북한에 대해 선제 미사일 공격을 시사하며 방어적 차원이라고 말했을 때, 그는 미국의 정당방위 정책이 만들어놓은 훌륭한 성공사례를 몸으로 보여준 것이었다. 미국인이 북한의 핵무기 위협 앞에서 태평한 한국인을 보며 분개하거나 어이없어하는 것은 한국인의 반응이 미국인과 미국 사회를 이루는 기본 원칙들 가운데 하나를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들이 분개하는 것은 그 ‘차이’들, 그리고 그 차이가 가져다줄 ‘잠재적’ 위협 때문인 것이다. 한국과 미국에서 같은 반전을 외친다고 해서 그 의미가 같은 것은 결코 아니며, 반전의 국제연대를 말하는 것은 자칫 구호에 현혹되기 십상이다. 왜냐하면 반대편에 선다고 해서 결코 결과가 유쾌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로드니 킹 사건으로 발생한 로스앤젤레스 흑인폭동에서 막상 공격당한 것은 백인 주류사회가 아니라 코리아타운이었다.

뉴욕=이공순 전문위원 mitren2005@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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