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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역전 홈런’을 치다 [평화, 그 마지막 기회]
미국의 반격으로 궁지에 몰린 슈뢰더 반전 정책… 누구도 기대하지 못한 인파가 ‘평화의 축’ 만들어
지난 2월14일 저녁, 생방송으로 보도된 유엔 안보리 회의 중계방송이 독일인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았다. 동시통역으로 전달된 방송에선 지루한 논쟁이 계속됐지만, 채널을 쉽게 돌리게 하지는 못했다. 파월 미 국무장관의 발언 중에 전쟁 개시를 직접 언급하는 말이 행여 나오지 않을까라는 불안감이 ‘낡은 유럽인’들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와 독일이 추진하여 러시아와 중국의 동의를 얻은, 유엔 이라크 무기사찰단의 활동시간 연장 및 사찰단 규모 확대 요구가 과연 안보리를 무사히 통과할 수 있을까라는 마지막 희망을 놓지 않았던 까닭이다.
“Do you buy a german car”
미국 한 극우 종교단체가 “Do you buy a german car”라는 독일자동차 불매광고를 방송에 내보내자, 독일 경제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혔다. 2002년 수출 부문을 제외하면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한 독일경제에 미국시장은 생명줄과 같은 의미를 가지기 때문이다. 독일 정부의 전쟁반대 정책에 대한 경제계의 반발이 본격적으로 불붙기 시작했다. 가뜩이나 2월2일 있었던 두곳의 주정부 선거에서 참패한 독일 사민당은 창당 140년 이래 최악의 여론 지지도를 보이면서 위기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안으로는 경제정책이 실패했다는 비판과 밖으로는 이라크를 둘러싸고 미국 정부와 날카로운 각을 세우면서 결국 국제적 고립을 낳았다는 비난들이 쏟아져나왔다. 미국 국방부는 때를 맞추어 독일 주둔 미군 철수 계획을 발표하면서 독일 정부를 더욱더 궁지로 몰아세웠다. 그리고 어느덧 야당과 일부 언론들은 정부 퇴진과 재선거를 상황 타개책으로 내놓기 시작했다. 미국 정부로부터 “현 독일 정부 임기 동안 관계회복은 불가능”하다는 메시지가 전달된 것은 물론이다. 지난 2월9일 <슈피겔>은 독일 정치권과 미국 정부를 다시 한번 뒤흔들었다. 유엔 평화유지군의 상징인 ‘파란 헬멧’의 표지사진과 함께 보도된 “전쟁 대신 유엔을 통한 이라크 통제”라는 특종 기사 때문이었다. 프랑스와 독일 정부가 1월부터 공동으로 비밀리에 작업해온 이라크 사태에 대한 평화적 해결안이 공개된 것이다. 이라크 무기사찰단의 규모를 두배로 늘리고, 사찰단에 무장한 유엔 평화유지군이 동행하며, 이라크 전체를 항공금지구역으로 설정하는 것 등을 골자로 하는 이 방안은 이라크에 무장해제의 압력과 속도를 더욱 높이겠다는 의지를 담고 있다. 이를 위해 프랑스·독일 양국 정부는 평화유지군에 자국 군인들을 참여시키는 것뿐 아니라, 프랑스의 미라지 정찰기 등 기술적 지원도 아끼지 않을 것이라는 의사를 밝혔다.
독일-프랑스 평화안도 시들어갔으나…
평화적 해결에 대한 기대는 한편으로는 미국과의 깊은 경제·군사적 상호연관성으로 인해, 또 다른 한편으로 외교능력의 현실적 한계에 부닥치면서 점차 사라지는 듯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무기사찰단 활동기한 연장안은 러시아와 중국의 지지를 얻어냈지만, 미국과 영국의 완강한 거부를 극복할 전망은 보이지 않았다. 전쟁 발발이 오늘내일로 가까워졌다는 보도들이 언론을 통해 전해졌다. 이를 반영한 듯, 2월15일 베를린의 반전 시위를 준비하는 주최쪽도 참여 예상인원을 8만명 수준으로 발표했다. 베를린 경찰은 새로 깐 잔디가 훼손될 가능성이 있다며 국회의사당 앞 집회를 불허했다. 손발을 에는 차가운 겨울바람도 데모를 준비하는 사람들의 걱정에 더해졌다. 그러나 2월14일 금요일 밤부터 하나둘씩 낭보가 날아들었다. 지루하게 끌던 유엔 안보리 회의에서 파월 미 국무장관이 3월1일에 이라크 결의안을 상정하기 때문에 유엔 무기사찰단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는 소식이 시작이었다. 2월14일 밤이 되면서 시위 참여를 위해 베를린으로 올라오는 관광버스가 500대를 넘어섰다는 시위 주최쪽의 집계발표가 이어졌다. 시위 참여 예상인원도 10만명으로 수정되었다. 미국과의 관계 악화를 우려해 슈뢰더 총리는 정부 장관들에게 시위 참여를 자제해줄 것을 당부했다. 그러나 2월14일, 총 3명의 장관이 시위에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고, 연방국회의장도 참여의사를 주최쪽에 통보해왔다.
50만명의 합창 “우린 해낼 수 있다”
베를린=글·사진 강정수 전문위원 jskang@web.d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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