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이는 세계 ] 2003년02월12일 제446호 

남미 최대 산유국의 비극

남미 북부 카리브해 연안에 자리잡은 나라 베네수엘라는 1498년 콜럼버스의 제3차 신대륙 항해로부터, 1821년 ‘해방자’ 시몬 볼리바르에 의해 독립할 때까지 300년간 에스파냐 식민지였다. 식민지 시절부터 원주민들과 아프리카 출신 흑인들의 노예노동으로 유지해온 사탕수수 농장경제가 근본적으로 바뀐 것은 19세기 말 석유가 발견되면서부터였다. 베네수엘라는 현재 석유수출국기구(OPEC) 소속 나라 가운데 생산량 3위(하루 약 300만 배럴)를 기록하고 있으며, 확인매장량은 아메리카 대륙 전체 매장량의 약 50%(세계 5위)를 차지한다. 현재 석유산업은 베네수엘라 국가 재정의 50%에 이르며, 외화수입의 80%를 차지하는 국가의 근간산업이다.

풍부한 석유자원을 바탕으로 1980년대 말까지 남미에서 1인당 국민소득이 가장 높은 나라였고, 58년 이래 대의제 민주주의가 자리잡아 남미에선 보기 드물게 정치안정을 이룩한 나라기도 했다. 그러나 부정부패에 맞서 군사반란을 일으킨 공수부대 중령 출신 우고 차베스가 대선에 출마한 98년 당시 국민의 80%가 빈곤선 이하의 비참한 생활 속에 허덕이고 있었다. 76년 국유화한 석유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은 형편없이 낙후되어 있었다. 40년간의 정치안정은 심각한 사회 불평등을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다. 변화를 열망하는 국민의 지지를 바탕으로 집권한 차베스는 취임하자마자 제헌의회를 소집해 새로 헌법을 제정하겠다고 제안했다. 국민투표 결과 88%의 지지를 얻어 제헌의회 의원 선거를 실시했고, 집권연합은 전체 의석 131석 가운데 121석을 확보했다. 그는 새로 제정된 ‘볼리바르 헌법’을 바탕으로 다시 대선을 실시해 2000년 7월 60%의 지지를 얻어 임기 6년, 재선의 기회가 주어진 대통령으로 재취임했다.

차베스는 2002년 4월11일 48시간의 쿠데타에 의해 잠시 쫓겨났다가 권좌에 복귀했다. 사건의 발단은 2001년 11월 의회가 1년간 대통령에게 입법권을 부여하는 대통령특별입법권에 따라 제정한 49개 사회경제개혁 법률이다. 이 법안엔 석유산업의 수익을 전액 국가재정으로 귀속시킨 석유법, 신고하지 않은 개인소유 토지를 국가가 수용하는 토지개혁법안, 민간은행 총 대출의 10~15%를 서민에게 의무적으로 융자하도록 명시한 은행법, 초등학교에서 대학교까지 무상교육 실시를 명시한 교육개혁법, 비과세 범위를 축소한 세제개혁법안, 기존 노조의 특권을 박탈하는 노조개혁법률안이 포함되었다. 사회적 논쟁의 여지가 많은 법안을 여론의 검증과정 없이 일방적으로 추진하려고 한 것은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친 반정부세력 총파업의 빌미가 돼왔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의 비타협적 좌파 노선은 그간 베네수엘라 산업을 지배해온 미국과 국내 자본가의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다국적기업들은 자본을 회수하기 시작했고, 베네수엘라 상공인협회 페데카마라스는 정부의 개혁정책에 정면도전하며 파업을 방관하거나 조장하기에 이른다. 현재 베네수엘라 경제위기는 차베스의 강경노선에 대해 미국과 국내 자본가들이 역공을 가한 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카라카스=박정훈 전문위원 jhpark2001@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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