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이는 세계 ] 2002년04월24일 제406호 

내전이 남긴 깊은 상처

필자는 <전쟁의 회상>이란 책을 통해 레프카다섬의 내전경험을 정리한 마리아 사누풀루 박사에게 자벨레나와의 만남을 알렸다. 그의 반응은 전혀 의외였다. “자벨레나가 지금도 살아 있나요? 모두들 죽은 줄 알고 있는데….” 1981년에 박사논문을 위한 자료를 수집하기 위해 레프카다섬에서 장기간 머문 사누풀루 박사는 당시 많은 빨치산들, 섬주민들과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다. “당시에 이들은 하나같이 자벨레나라는 이름을 언급했다”고 기억을 더듬었다. 지금도 여전히 자벨레나는 빨치산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는 얘기였다.

이탈리아와 독일의 침략을 받을 당시 레프카다섬은 정치적으로 남과 북으로 나뉘었는데 남쪽은 우익, 북쪽은 좌익이 지배했다. 독일 나치에 맞선 빨치산 전사들은 대부분이 북쪽 출신이었고, 독일나치에 협력한 나치 협력자들은 대부분이 남쪽 출신이었다. 물론 자벨레나도 북쪽 출신이었다. 나치군이 물러간 후 나치 협력자들은 영국 군정의 비호 아래 섬자치정부의 권력을 잡았다. 나치와 싸운 좌익진영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권력을 쥔 나치 협력자들에게 도리어 수배를당하게 된다. 2차 세계대전 중 나치 협력자들의 행태는 소극적인 차원의 마지못한 협조가 아니라 섬의 지리를 모르는 나치군들을 안내하여 빨치산 부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는 데 앞장설 정도였다고 섬의 생존자들은 전하고 있다. 레프카다섬에서 일어난 좌우익 간의 내전은 섬주민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힌 채 끝났다. 내전에서 패배한 빨치산들은 대부분이 형장에서 이슬로 사라지거나 장기수로 복역하면서 잔인한 고문을 당했고, 생존자들은 지금도 고문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55년의 세월이 지난 지금 레프카다섬의 상처는 거의 아물었다. 이제는 서로 총을 겨누던 좌익과 우익 집안들 사이의 결혼이 일상화하면서 찢긴 공동체가 하나로 합쳐지고 있다는 소식이다. “내전 당시의 극단적인 대립상황으로 거슬러올라간다면 현재 이들이 함께 살아가는 모습은 가히 기적이랄 수밖에 없다”고 사누풀루 박사는 덧붙인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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