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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 정치는 생활이다! 지역 시민들의 연대와 자치로 대안정치의 모델을 만든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
스즈키 의원과 첨예하게 대립하던 다나카 마키코 외상을 경질한 이후 급락하기 시작한 고이즈미 총리의 인기는 자민당 내 두 핵심인물이 이처럼 각종 비리와 연루되어 잇달아 탈당하면서 더욱 곤두박질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일본 경제의 3월 위기설은 고비를 넘겼지만, 구조개혁에 사활을 걸겠다던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드라이브는 지역구의 이권에 민감한 이른바 ‘족(族)의원’들의 반발에 부딪쳐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이래저래 일본 정치는 짙은 안개에 둘러싸인 채 돌파구를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의원 월급은 시민의 활동자금으로
도쿄도의회 의사당 5층. 도의회 의원 6명과 시·구의회 의원 55명이 속한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 사무실. 생활인이란 이름에서 독특하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알고 보니 의원 모두 주부 출신의 여성 의원들이다. 하지만 지역정당을 표방하는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가 정작 돋보이는 것은 의원의 임기가 2기 8년, 길어야 3기 12년으로 제한되어 있다는 점이다. 의원의 선거비용은 모두 시민의 회비로 충당하고 있다. 대신 의원이 되어 받는 보수의 대부분은 시민의 활동자금으로 쓰인다. 대를 이어 국회의원이 되고, 정치자금 확보를 위해 각종 이권과 결탁할 수밖에 없는 일본의 정치풍토에선 거의 혁명에 가까운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실제로 이번에 문제가 된 두 의원은 정치자금 모금순위에서 각각 1위와 3위를 기록한 인물들이었다. 정치가 돈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겠지만, 의원의 보수와 회원들의 회비만으로 정치를 하는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만은 적어도 이 문제에서 비켜서 있다.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가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1988년. 하지만 모태라 할 수 있는 ‘그룹생활인’이 도쿄도 레이마구 도의원 선거에 첫 도전장을 낸 것은 1977년이다. 생활협동조합 활동만으로는 생활과 관련된 근본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느낀 나머지 지역정당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정치를 생활의 도구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1979년엔 첫 시의원을 탄생시켰다.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는 그 안에 또다시 시와 구 단위로 32개의 더 작은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밖으로는 북단 홋카이도에서부터 남단 후쿠오카까지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작은 네트워크들이 모여 큰 물줄기를 만들어내는 데 대략 20여년의 세월이 걸린 셈이다. 도쿄 생활인 네트워크가 내세우는 원칙은 “안심, 공생, 자치” 3가지. 장애인이나 어린이, 외국인, 노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안심하고 생활할 수 있는 마을을 만들자는 것이 근본취지다. 도쿄도 내 다마시의 생활인 네트워크의 구체적인 정책을 보면, 아이들의 건강문제와 노인문제, 연금문제,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철폐, 지역 탄약고 반환운동 등 모두가 구체적인 생활 속에서 정책들을 끄집어냈음을 알 수 있다. 이들 가운데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도시농업’이다. 자연과의 공생 같은 거창한 슬로건을 내걸지 않더라도, 도쿄도 내에서 안심하고 먹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자체 조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도시 열섬현상 같은 지구온난화방지를 위해서도 반드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스크럼도시와 새로운 공공
이같은 공생과 자치의 원칙을 그들은 ‘낡은 공공’이 아닌 ‘새로운 공공’이란 개념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정책으로서의 복지, 문부성 지도하의 학교 경영, 내수확대라는 이름으로 자행되는 자연환경 파괴 같은 ‘낡은 공공’이 아니라, 생활의 관점에 선 시민들이 경제계 또는 국가 주도에서 벗어나 보다 장기적이고 글로벌한 관점에 선 ‘새로운 공공’을 실현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실현하기 위한 도구가 바로 ‘시민의 자’다. 아이·노인·여성·남성 누구에게나 평등하게 적용되는 ‘시민의 자’를 통해, 도쿄라는 지역을 발판으로 모든 현실정치와 대치해왔으며 또 대치해가겠다고 한다. 전국정당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선책으로써 지역정당을 선택한 것이 아니라, 낡고 부패한 기존 정치판을 혁신하기 위해 지역정당과 지역정당들 간의 연대를 택했음을 알 수 있다. 참신한 생각이 있는 지방자치단체 후보라고 하더라도 기존 전국정당에 누구나 할 것 없이 연줄을 대야 하는 우리나라 정치풍토와는 너무나 다른 대목이다. 오랜 시민운동의 결과물로서, 지방자치단체장 선거를 앞둔 우리들이 눈여겨보아야 할 덕목이라 하겠다.
도쿄=신명직 통신원 mjshin59@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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