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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착자 없으면 못 자?
외국 살면서 겪는 어려움은 역시 뭐니뭐니해도 말이 안 통해서 생기는 문제들이다. 남의 땅에서 그 나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은 멀쩡한 어른이라도 속절없이 코흘리개 어린애만 못한 신세가 되게 마련이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생각해보면 자기 땅에 사는 외국 사람(정확히 말해서 서구의 백인)이 한국말을 좀 유창하게 하는 걸 보고 신기해하며 놀라 넘어가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밖에 없지 않나 싶다. “여기 와서 살고 싶으면 당연히 이 나라 말을 제대로 해야지”라는 것이 보통 브라질 사람들의 외국인에 대한 태도다. 한국 동포사회를 잘 아는 브라질 사람들로부터 “너희 한국 사람들은 왜 우리 말을 안 쓰냐?”라는 질책성 코멘트도 가끔 듣게 된다. 그럴 때면 “포르투갈어 하기 싫어서 안 하는 게 아니라 나이 들어 외국말 배우기가 그만큼 어려워서 못하는 거다. 좀 봐주라” 하고 변명을 대신 한다. 어른이 되어 외국어 익히기는 현지에 산다고 해도 참 어려운 일이다. 따로 시간을 내어 공부하지 않는 한 아무리 24시간 옆에서 들려오는 말이라도 무의미한 소음에 불과하다. 그래서 “이민 와서 처음 1년에 말 못 배우면 영영 못 배운다”는 말도 있다. 모국어만 사용해도 생활이 될 만큼의 조건이 주위에 갖춰지기 때문에 간단한 단어들을 외워서 답답해서 죽을 정도만 벗어난 뒤에는 자연히 말 배울 노력을 않게 되니 제자리에 머물게 된다는 뜻이다. 제한된 몇개의 어휘만 갖고 말을 하려다보니 우스운 일도 많다. 상파울로에 사는 한국 사람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에피소드인데, 어느 한국 아저씨, 하루는 브라질 이웃과 말다툼이 붙었다. 그 아저씨가 흥분해서 말한 한국식 포르투갈어를 영어 표현으로 옮겨보자면 “You speak, speak, I speak, no speak!” 그 아저씨가 하고자 했던 말은, “네 말만 말이고 내 말은 말이 아니냐!”였다. 내게도 엉뚱하게 단어를 잘못 사용해서 웃지 못할 상황을 만들었던 경험이 있다. 브라질 와서 얼마 안 되었을 때, 같이 학교를 다니던 브라질인 친구들과 4명이서 한차에 타고 장거리 여행을 나선 길이었다. 출발하고 5분쯤 지났을 때 내가 운전하던 친구에게 부탁했다. “잠깐만 차 돌려서 우리집에 좀 들렀다 가자. 성도착(性倒錯)자(트라베스치)를 집에 놓고 왔어.” 잠시 차 안에는 침묵만 흘렀다. 운전하던 아이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돌려 우리집 앞으로 데려다 줬다. 차에서 내리기 전에 나는 친구들을 돌아보며 부연 설명까지 해줬다. “나는 성도착자 없으면 잠을 못 자거든.” 나중에 들은 바에 의하면 내가 내리고 난 뒤 차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는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쟤가 지금 뭘 가지러 간다는 소리야?” “…나도 몰라.” “여기 한명 더 타면 너무 좁잖아?” 잠시 뒤 내가 들고 온 것은 베개(트라베세이루: 성도착자를 뜻하는 트라베스치와 발음이 유사함)였다. 나는 어디를 가도 내 베개가 있어야 잘 수 있다고 유난을 떠는 사람이 아니다. “장거리 여행에 베개를 가져가면 차 안에서 잠깐씩 눈 붙이기에 좋지 않겠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그 문장을 꾸밀 실력이 안 되다보니 그랬던 것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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