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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산기가 필요해진 유럽인 유로화 전면 도입과 함께 변화하는 일상… 유럽연합 정치적 통합의 시금석 될 것인가
북극부터 인도양까지
프랑스인들은 드판에서 차에 기름을 넣고, 카페에서 벨기에 맥주를 마시며 돌아올 때는 유명한 벨기에 초콜릿을 사가지고 프랑스로 되돌아온다. 마찬가지로 국경에서 가까운 프랑스 당케르크의 슈퍼마켓에는 포도주, 미네랄 워터, 양질의 육류를 사러온 벨기에인들을 자주 보게 된다. 동일한 상품과 서비스에 대하여 나라마다 다른 가격정책을 유지하고 있어 유럽연합국가의 국경도시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예컨대 차량 유류가격은 벨기에가 프랑스에 비해 낮고 콜라가격은 프랑스가 벨기에에 비해 저렴하다. 올해 1월1일부터 드판으로 휴양을 오는 독일인들은 마르크화를 벨기에 프랑으로, 벨기에로 쇼핑을 가는 프랑스인들은 프랑스 프랑을 벨기에 프랑으로, 프랑스로 여행이나 쇼핑을 오는 벨기에인들은 프랑스 프랑으로 환전할 필요가 없어졌다. 유로 도입 이전 현금으로 지불할 경우 각국의 화폐로 환전하여 지불하였으나 유로화의 전면적 도입으로 이러한 불편이 일거에 사라진 것이다. 오랜 준비기간을 거쳐 마침내 유로가 도입되었다. 유럽연합 15개 회원국 중 영국, 스웨덴, 덴마크 3개국을 제외한 12개국 3억 인구가 사용하는 화폐로서 유로가 등장했다. 이미 신용카드 거래나 각종 결제에 유로가 표시되어왔으나 일반대중이 체감할 수 있는 유로화가 실생활에 등장하여 향후 많은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난해 말부터 은행과 환전소에는 적십자사의 모금함 상자가 등장하여, 고객들이 여행중 사용하고 남은 유로권 국가의 동전 혹은 은행거래시 받는 동전을 모금함에 집어넣는 모습이 흔히 눈에 띄었다. 유로가 도입되면서 환전상이나 은행의 환전업무는 상당히 줄어들게 됐고 3월부터는 비유로권 화폐의 환전업무와 외화송금만으로 업무가 축소될 예정이다. 북극에 가까운 핀란드 북부지역에서부터 에게해에 흩어져 있는 그리스의 수많은 섬에 이르기까지 유로권 12개국은 물론 서인도제도의 프랑스령 마르티니크, 인도양상의 레위니옹에도 유로가 도입되었다. 유럽연합의 회원국이 아닌 피레네산맥의 안도라공국과 남불에 위치한 모나코에도 유로가 통용되기 시작했다. 안도라에는 스페인의 페세타와 프랑스의 프랑이 병용되고 모나코에서는 프랑스의 프랑이 사용되기 때문에 유로 도입과 함께 유로권역으로 편입된 것이다. 이미 지난달 중순부터 동전만으로 이루어진 스타터 키트(starter kits)가 폭발적인 인기 속에 일반에게 판매, 보급되어 새로이 도입된 화폐와 상견례를 가진 바 있다. 또한 각국 정부들은 공공장소와 매체를 통한 홍보에도 많은 노력을 집중하여 유로가 산타클로스와 함께 유럽각국의 거리를 장식했다.
은행·우체국 노조 “환전이 무서워”
유로화가 도입되면서 처음 몇주가 유로화의 순항을 가늠할 수 있는 중대시기가 될 전망이다. 제기되는 문제 중에서 우선 물가에 대한 가치판단의 혼동이 두드러진다. 한동안 소비자들은 자국화를 준거틀로 삼아 물가를 가늠할 것이다. 1유로는 약 2독일마르크, 6.5프랑스 프랑, 1,930이탈리아 리라에 상당한다. 자국화폐로 물가수준을 가늠했던 소비자들이 유로화로 익숙하게 상품과 서비스 가치를 평가하는 데는 상당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예컨대 이탈리아인들은 수백만 혹은 수십만 단위로 거래를 하다가 몇십 혹은 몇백 단위로 수적 개념의 급격한 변화를 겪어야 하는 것이다. 앞으로 2개월 동안 유럽인들에게 계산기는 필수 휴대품이 될 것이다. 소규모 거래가 많이 이루어지는 빵집, 담배가게와 같은 곳에 유로를 충분히 확보해두어 고객들을 맞이해야 한다. 자국화와 유로화를 동시에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슈퍼마켓이나 점포에서 근무하는 직원들이 격무를 이유로 파업을 일으킬 소지도 있다. 환전업무를 담당할 은행과 우체국 노조의 파업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유로권 국가에 설치된 800만대의 자판기와 1천만대의 공중전화기도 유로화를 인식할 수 있도록 전환하는 작업도 마무리되어야 하는데, 자판기 한대당 연간 수익금에 상당하는 비용이 들어 자판기 운영업자들은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정부가 지원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또한 자국화에 맞게 설치된 주차요금징수기 등도 재빠른 변신을 해야 유로화에 대한 신뢰구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이런 사정으로 유로화는 출발부터 험로가 예상된다. 뉴욕 테러사건으로 세계경제가 전반적 침체국면 아래 있고, 부에노스아이레스발 경제위기가 대아르헨티나 주요 투자국인 유로권의 경제에 끼칠 파장이 우려돼 달러화에 대한 유로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로화는 단순한 화폐 이상의 의미가 있다. 유럽통합의 궁극적 목표인 정치적 통합의 실현을 가늠할 수 있는 리트머스 시험지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로화는 출범부터 달러화에 이어 세계 제2의 화폐로 부상했고 달러화와 함께 국제금융시장에서 양대축을 형성하게 됐다.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도 비유로권으로 남아 있는 영국, 스웨덴, 덴마크가 유로를 도입하고 유럽연합의 회원 신청국인 동구권 국가들이 유로권 경제에 편입되면 유로화는 향후 달러화에 필적하는 강력한 통화로 부상하면서 세계경제의 판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으로 전망된다. 독일 마르크화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던 발칸지역의 코소보와 몬테네그로는 사실상 유로화의 영향하에 놓인 것으로 평가된다.
영국은 언제까지 버틸까
유럽연합 회원국이면서도 국가경제 운용의 용이성 등을 이유로 통화주권을 고집하고 있는 영국, 스웨덴, 덴마크가 과연 얼마나 오랫동안 이 거대한 흐름을 외면할 수 있을지도 주목된다. 영국의 경우 유럽대륙에서 연간 1300만명이 방문하며 유럽대륙의 경제와 불가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상황에서 거스를 수 없는 현실로 다가선 유로를 강건너 불보듯 쳐다볼 수만 있는 입장은 아닌 것이다. 영국 정부의 유럽장관(Minister for Europe)인 피터 하인이 영국 내 업자들에게 유로로 거래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상황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유로권인 아일랜드와 파운드화권인 북아일랜드, 강력한 독일경제의 영향에 민감한 덴마크의 주트랜드, 비유로권인 스웨덴과 유로권인 핀란드의 국경지역, 유로권 국가에 포위된 스위스 등의 향후 움직임이 유로화의 성패에 달려 있다고 보아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일반기업들도 유로화의 도입으로 외화거래비용 절감 등 가시적 혜택을 누림으로써 유로화 도입의 수혜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또한 환차손에 대한 우려없이 안정적으로 사업을 할 수 있어 많은 기업들에게 유로 도입은 새로운 전기가 되리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벨기에의 드판에는 프랑스의 칼레항구를 통해 영불해협을 건너는 영국인들이 도중에 들러서 담배, 주류, 초콜릿 등을 다량으로 구입하는 모습이 흔히 눈에 뜨인다. 유로 도입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유럽에서 차지하는 영국의 위치에 대한 질문을 이들에게 던지고 있다.
드판(벨기에)=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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