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직이는세계] 국제기구가 난민을 울려?유엔난민고등판무관실(UNHCR)의 웹사이트(www.unhcr.ch)를 접속하면 “세상에서 실향보다 더한 슬픔은 없다”라는 글귀가 나온다. 에스킬루스, 소포클레스와 함께 고대희랍의 3대 비극작가로 불리는 유리피데스의 절절한 표현이다. 정치, 종교, 인종적 박해로 삶의 터전을 떠나 난민이 되는 상황은 인류역사의 전개와 그 궤적을 함께해왔다. 그러나 상처받은 사람들의 절박한 상황을 밑천삼아 축재를 한 사람들이 있어 분노를 자아내고 있다. 더구나 난민들을 보호하고 항구적 해결책을 모색하는 데 주체적 역할을 수행해야 할 당사자들인 UNHCR의 직원들이 난민들로부터 뇌물을 받고 제3국 정착을 주선해 왔다는 사실은 비록 극히 일부의 직원들에 국한된 사안이라 하더라도 도덕성과 공리를 근간으로 해야 할 국제기구의 도덕성에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현재 UNHCR은 나이로비 사무소 일부 직원이 뇌물을 받고 난민들을 유럽,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 정착할 수 있도록 주선해온 사건에 대해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사건의 중대성을 감안해 코피 아난 유엔사무총장과 올해 초 취임한 루트 루버스 유엔난민고등판무관도 철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들에 대한 단호한 처벌을 천명했다. 수단과 접경하고 있는 케냐 북부의 카쿠마난민촌에는 주로 수단인들이 수용돼 있고 다답난민촌에는 소말리아 난민들이 주로 수용돼 있다. 이들 이외에도 에티오피아, 대호수지역의 난민들이 수용되어 있는데 현재 케냐의 난민수용소에서 생활하고 있는 난민은 약 20만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난민문제의 항구적 해결책으로는 본국으로의 자발적 귀국과 난민을 수용하고 있는 국가 혹은 제3국에서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본국으로의 자발적 귀국은 평화가 정착되었거나 귀국시 박해의 위협이 해소되었을 경우에 가능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제3국 정착도 난민을 받아들이는 나라들이 많지 않고 그나마 극히 제한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에 난민들은 필사적인 방법을 탐색할 수밖에 없다. 공식적인 경로를 통한 제3국 정착은 엄격한 난민자격심사와 오랜 기간이 소요되기 때문에 ‘신속처리’를 위해 난민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 많게는 5천달러에 이르는 ‘급행료’를 마련해 부패한 관리들에게 바쳐온 것으로 알려졌다. 난민들의 보호와 정착을 담당하는 관리들은 중간 브로커를 통해 급행료를 지불할 능력이 되는 난민들을 물색, 이들로부터 돈을 받고 제3국 정착을 알선해왔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난민이 아닌 일반인들도 난민으로 위장, 제3국에 정착한 사례도 보고되고 있다. 이런 음험한 거래가 드러나자 UNHCR은 99년부터 자체적으로 조사를 진행해왔고 조만간 정확한 조사보고서를 발표할 것으로 보인다. UNHCR은 사건의 재발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난민을 받아들이는 나라의 공관에 직원이 개인적으로 난민신청을 접수하지 못하게 하는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또한 해당국 공관 난민정착 담당관들과의 유기적인 협조체제 구축, 언론을 통한 홍보에도 주력하는 등 사태진화에 고심하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초 루트 루버스 고등판무관은 유럽 각국이 난민들을 위해 닫힌 빗장을 풀라고 열렬히 호소한 바 있다. 그의 호소가 반향을 일으키려면 적어도 집안청소는 철저히 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헨트=양철준 통신원 YANG.chuljoon@wanadoo.f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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