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움직이는 세계 | 등록 2001.10.10(수) 제379호 |
[움직이는세계] ‘쌍 명절’과 함께 춤을 국경절과 중추절이 겹친 중국의 황금연휴… 소비가 비약적으로 늘어난 ‘휴일 경제’ 바람
중국은 지난 10월1일부터 일주일간 ‘쌍 명절’의 축제를 즐겼다. 미국 테러사건으로 국제적으로 경기가 침체한 가운데 중국은 19년 만에 국경절과 중추절(추석)이 겹치면서 전국적으로 지난해보다 소비가 늘고 여행객이 늘어나는 ‘경제 호황’을 구가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52주년이란 국경절 황금 휴일에 전통 명절인 중추절이 가세하면서 소비를 배가시킨 것이다. 1∼7일간의 휴일 동안 비행장과 도로, 철로는 여행 인파들로 가득 메워졌으며, 중국 언론들도 ‘휴일 경제’붐에 대해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특히 이번 ‘쌍 명절’은 지난 7월 올림픽 유치에 이어 오는 11월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대한 기대감으로 기쁨이 배가된데다 연휴 마지막날인 7일 밤엔 중국 축구가 오만을 누르고 사상 처음 월드컵 본선진출을 확정지으며 대미를 장식했다.
쇼핑객·관광객의 ‘돈 뿌리기’
중국이 ‘휴일 경제’라는 특수를 만들어낸 것은 불과 3년 전이다. 중국은 95년 주5일근무제 실시와 최대명절인 춘절(음력설)의 10∼15일 휴일에 이어, 5월1일 노동절과 10월1일 각각 일주일의 ‘황금 연휴제’를 제정했다. 이 휴일 연휴제는 78년 개방·개혁 이후 높아진 중국 인민들의 소득수준을 소비로 연결시키기 위한 중국 공산당의 경제활성화 정책으로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는 지난주 “중국 인민들은 정부수립 52주년을 ‘소비’로 맞이했다”면서 “인민들은 공산당이 ‘돈을 쓰라’는 지시에 따라 움직였다”고 보도했다. 중국 당국은 국경절 관광수입이 220억위안(약 3조5천억원)을 기록한 지난해 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전역의 소비 열기는 일주일간 중국 언론에 보도된 내용을 훑어보더라도 확인된다. <상하이 데일리>는 지난 10월2일 “휴일 쇼핑객들이 매장을 메우고 현금 소리가 쩔렁쩔렁했다”고 보도했다. 실제 연휴 동안 베이징과 상하이 등 대륙 내 주요도시의 백화점 등에서는 매출액이 급증하고, 전국 주요 여행지의 경우 비행기표와 열차표가 매진됐다. 중국 당국은 휴일 동안 매일 50만명의 국내외 여행객이 베이징 관광에 나섰으며 이는 지난해보다 2.4% 증가한 수치라고 밝혔다. 지난 1일 천안문 광장의 오성홍기 게양식에 20만명이 게양식장면을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자금성으로 널리 알려진 고궁 박물관을 찾은 관광객은 평상시보다 9.7%가 증가했으며, 입장권 수입은 평균 15%가 증가해 하루 270만위안(약 4억원)을 능가했다. 베이징의 한 유명 카오야(오리구이) 요리점에서는 평상시의 3배 매출량인 1100마리가 날마다 팔려나갔다. 시내 호텔객실은 80%가 찼으며, 치안을 위해 3400명의 공안이 추가로 배치됐다. 또한 경극, 서커스, 오페라, 음악과 무용 등 다양한 행사가 베풀어졌고 200개의 크고 작은 음악회가 열렸다. 베이징을 찾은 샤오 노인은 “올해는 올림픽 유치와 세계무역기구 가입 등 좋은 소식들뿐”이라며 중국의 전통 갈짓자(之)춤인 ‘양거’춤을 덩실덩실 추어보였다. 휴일 동안 3680만명이 고속버스를 이용할 정도로 도로가 몸살을 앓았다. 상하이의 <해방일보>는 도로 여행객들이 1일∼3일까지 평상시보다 96.3%, 노동절보다 45.6% 각각 증가했다고 보도했다. 개방의 선두지역인 광저우의 식당은 예약없이는 자리를 구하기가 힘들 정도였다. 광저우지역은 1일 하루 463편의 여객기가 이륙해 지난 춘절의 최다기록을 깼다. 주요 백화점도 고급 옷과 보석 등이 불티나게 팔려나가는 등 성황을 이뤘다. 1일 하루 선전을 통해 20만명이 홍콩을 찾았다. 특히 아프가니스탄과 가까운 중국 북서부 신장 자치구의 구도인 우루무치는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이슬람계 위구르족들이 오성홍기와 꽃들로 장식된 인민광장에서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을 추며 휴일을 즐겼다. 약 12만명의 신장인들이 여행을 떠났으며 5만명이 관광을 위해 신장을 방문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장지역은 정부의 ‘서부 개발정책’에 따라 유명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올 상반기 개인소득이 4천위안(약 64만원)으로 향상된 티베트 라싸의 대형백화점들은 패션쇼, 노래와 무용 등으로 고객의 눈길을 끌었다. 구도로 관광자원이 풍부한 난징시 철도당국은 교통편의를 위해 150편의 열차를 추가 투입했다고 밝혔다. 쓰촨성의 불교 유적지인 아메이 산은 관광객들로 메워졌으며, 톈진에서는 고기잡기 행사가 벌어졌다. 푸젠성 성도 푸저우 장빈공원에서도 1일 수천개의 연과 오색 풍선이 하늘을 수놓으며 연휴를 축하했다. 결혼의 계절인 가을을 맞아 장쑤성의 쑤저우에서는 22쌍의 신혼부부들이 공원에서 합동결혼식을 올린 뒤 하객들끼리 대형 월병(月餠)을 나눠 먹었다.
월병이 뇌물 수단으로 이용되기도
항공편이 가장 불티났던 인기 지역은 황산, 하이커우, 다롄, 칭다오, 구이린, 시안 등으로 나타났다. <인민일보>는 1일 하루 동안 4만명이 안후이성의 황산에 올랐으며, 휴가 동안 30만명이 중국 남부 윈난성으로 여행을 했다고 보도했다. 세계 항공사들이 불황으로 노동자들을 감원하고 있는 상태에서 중국민항총국(CAAC)은 최근 1376개의 노선에 14개 노선이 추가될 것이라고 발표할 정도로 항공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민항총국은 항공여객이 매년 16∼18% 성장할 것으로 예상해 앞으로 4년 동안 보잉 737기종 30대를 구입키로 계약을 맺은 상태다. 중국 지도자들도 이번 휴일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 주룽지 총리는 30일 국무원 주최로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국경절 전야 리셉션에서 “중국은 공산당의 지도 아래 모든 분야에서 커다란 성공을 거뒀다”면서 “덩샤오핑의 이론에 따라 장 주석의 ‘3개대표’이론을 발전시켜 나가자”고 역설했다. 이 자리에는 장쩌민 주석, 리펑 전인대 상무위원장, 리루이환 정협주석, 후진타오 부주석 등이 참석했다. 중국 관영 <인민일보>도 국경절 사설을 통해 “세계경제가 침체를 겪고 있지만 중국경제는 개혁·개방정책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장쩌민 주석은 30일 밤 천안문 광장에 모인 시민들의 환호에 답했으며, 30만개의 화분과 램프로 장식된 광장과 주변의 창안제는 축제분위기에 휩싸였다.이번 휴일에는 지나, 소후, 넷이즈 등 중국 내 유명닷컴이 인기를 끌었다. 3년 전만 해도 삐삐(호출기)로 메시지를 전했던 중국은 2년 전부터 이메일이 보편화했고 현재 인터넷 사용자가 2600만여명으로 휴가 동안 짧은 축하 메시지에 사진이나 멜로디 첨부가 유행했다. 특히 축하 인사말은 한건당 1.2∼2위안씩 판매됐으나 소후는 휴일 나흘 동안 90만건을 판매했으며, 지나는 110만개를 판매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춘절 때 2만건에 비하면 급증한 것이다. 지나는 5천위안(약 80만원)의 상금을 내걸었고 다른 닷컴도 쿠폰과 할인권 경품으로 네티즌들을 유혹했다. 온라인 게임 이용 또한 휴일 동안 40% 정도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난징에서 해묵은 재료로 만든 ‘불량 월병’ 판매사건이 일어났음에도 월병에 대한 인기는 여전한 것으로 나타났다. 당 태종이 북부 돌궐족을 정벌하고 개선한 뒤 신하들과 둥근 떡을 나눠먹은 데서 유래된 월병은 원나라를 무너뜨리고 명을 세운 주원장이 월병 속에 농민봉기의 거사 날짜를 적은 쪽지를 넣어 돌렸다는 전설이 보태지면서 더욱 유명해졌다. 그러나 최근 월병은 부정·부패가 숨어드는 도피처가 되고 있기도 하다. 중국인들이 ‘돈을 번다’는 의미로 좋아하는 숫자인 ‘8’자를 이용한 4888위안(약 78만원), 8888위안(약 140만원)짜리 초호화 월병이 뇌물의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실제 광시 난닝시의 한 식당이 만든 4888위안짜리 월병상자 속에는 6개의 월병 외에 홍보석, 금칼 등이 들어 있는 것으로 보도됐다. 또다른 1680위안(약 26만원)짜리 월병 96상자는 한 무역회사가 특별 제작주문한 것으로 밝혀졌다. 또한 장쑤성 쑤저우에서는 수십명의 대륙과 대만 출신 요리사들이 지름 5m, 두께 25㎝ 크기로 통일을 기원하는 초대형 월병인 ‘중화단원월병’을 합작제작해 기네스 기록을 작성했다. 이 월병은 창장(양쯔강)의 물과 대만의 배, 동북의 잣, 산시의 대추, 상하이의 팥, 하이난의 야자 등 전국 명물을 연료로 사용했다.
실질적인 중추절의 의미는 사그라들어
그러나 시중에서 거래되는 월병은 보통 60∼300위안(9600∼4만8천원)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90년 이후 경제성장과 함께 먹을거리가 풍부해지면서 월병은 중국인의 입맛에서 따돌림을 당하고 있다. 중국 내 한 역사학자는 “기름기 많고 단음식인 월병은 이제 맛없는 음식으로 취급받고 있다”면서 “받은 선물을 다른 이에게 선물로 건네다보니 나중엔 곰팡이 쓴 월병을 건네받는 경우도 발견된다”고 털어놨다. 중국은 문화혁명(66∼76년)기를 거치면서 중추절의 의미가 사그라들었다. 특히 75년부터 화장문화가 일반화돼 우리나라처럼 성묘문화가 없는데다 법정 공휴일로 지정되지 않아 ‘월병먹고 달보는’ 풍습만 남아 있는 상태다. 한편 광저우에서는 2만개의 가라오케와 디스코 클럽 중 공안들의 단속으로 8천개 이상이 문을 닫았다고 밝혔다. 시장경제가 도입되면서 비친 중국 중추절의 한 단면이다.
베이징=하성봉 특파원 sb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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