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움직이는 세계 등록 2001.09.12(수) 제376호

[움직이는 세계] 브라질을 뒤흔든 납치극 생중계

유명 쇼프로그램 사회자의 수난… 납치당한 딸 돌려받은 뒤 자신이 인질로 잡혀

“돈 갖고 싶은 사람 누구요? 돈 갖고 싶은 사람!”

이 말은 브라질에서 가장 오래된 일요일 쇼프로그램인 <실비오 산토스쇼>에서 진행자인 실비오 산토스가 방청객을 향해 외치는 유명한 구절이다. 20년 넘게 방영되고 있는 <실비오 산토스쇼>는 일요일 낮에서 한밤중까지 12시간 이상 계속되는 마라톤 쇼프로그램이다. 퀴즈와 연예인 청백대결, 몰래카메라, 연인 짝짓기 등 온갖 잡동사니 볼거리를 파노라마로 모아 하루종일 보여주면서 텔레비전에 매달려 있는 브라질사람들의 심심한 일요일 낮시간을 때운다. 이 방송사의 사장이기도 한 프로그램 진행자 실비오 산토스는 쇼 중간중간에 고액권 지폐인 100헤알(50달러 상당)들을 종이비행기처럼 접어서는, 광란을 하고 뒤집어지는 방청객들에게 마구 던지며 그 유명한 “돈 갖고 싶은 사람 누구요!”를 외친다.

신창원 뺨치는 탈출행각

8월 마지막주에는 실비오 산토스의 인생에 정말 “돈 갖고 싶은 사람”이 나타나는 바람에 브라질 전체가 TV 밖 현실 드라마를 손에 땀을 쥐고 구경했다. 실비오 산토스의 21살난 대학생 딸 파트리시아가 납치된 뒤 납치범들이 몸값 200만헤알(100만달러)을 요구했던 것이다. 협상이 시작됐을 때까지만 해도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납치사건 중 하나에 불과했다. 물론 관련된 사람이 브라질에서 제일 유명한 얼굴인 실비오 산토스였기 때문에 모든 신문, 텔레비전 뉴스들이 숨이 넘어가도록 속보 경쟁을 해댔다. 실비오 산토스는 50만헤알의 몸값을 지불하고 일주일 만에 딸을 구출했다. 아버지와 딸은 집 앞에 몰려든 보도진들 앞에서 행복에 찬 미소를 지으며 얼싸안았고 드라마는 막을 내린 듯싶었다.

그런데 이틀 뒤 납치범 일당의 두목격이었던 페르난두 두트라가 신창원 뺨치는 신출귀몰한 탈주행각을 벌인 끝에 다시 실비오 산토스의 자택에 침입했다. 그는 이번에는 산토스를 납치해 붙들고 경찰과 대치전을 벌였다.

탈주과정에서 범인 페르난두 두트라는 경찰과 격투를 벌인 끝에 2명을 쏴죽였고, 건물 9층에서 스파이더맨처럼 벽 바깥 창문 난간을 타고 내려와 도망쳤다. 이어 시외곽 고속도로에서 자동차 4대를 훔쳐 갈아타면서 경찰차의 추격전을 따돌린 끝에 자취를 감췄다. 그리고는 다음날 새벽, 아침에 일어나 집 안에 있는 운동실로 가던 실비오 산토스의 앞에 떡 나타났다.

실비오 산토스를 인질로 잡고 7시간 동안 경찰과 대치하면서 범인은 주지사와의 면담을 요구했다. 그는 자신이 경찰을 죽였기 때문에 체포되는 날에는 몸 성히 살아남기 힘들다는 걸 안다면서 실비오 산토스에게 주지사를 불러 자신의 신변 안전을 보장한다는 약속을 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결국 주지사가 실비오 산토스의 집까지 갔고 범인의 투항이 이루어졌다. 이날 4개 텔레비전 방송채널에서 광고도 없이 5시간 동안 이 상황을 생방송으로 전국에 중계했다.

납치극이 일상화되고 있다

납치는 이제 브라질에서 실비오 산토스 같은 유명인사뿐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의 생명까지 위협하는 범죄다. 상파울루시에서는 지난해 동안 63건의 납치사건이 발생했고 올해 들어 상반기에만 41건이 발생했다. 한 평범한 직장인은 외제 승용차를 타고다니고 옷차림이 부유해 보인다는 이유로 납치당해서 처음에는 20만헤알의 몸값을 요구당했다가 5천헤알(500만원)을 내고 풀려나기도 했다.

한 경찰 관계자는 “납치범죄를 줄이는 방법은 경찰이 유능하고 신속하게 범인들을 체포하기 때문에 범죄 성공확률이 낮다는 사실을 인지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했다. TV드라마보다 흥미진진했던 이번 납치사건은 막을 내렸다. 범인은 잡혀갔고 실비오 산토스는 다시 일요일마다 텔레비전 쇼에서 ‘돈 갖고 싶은 사람!’을 외치겠지만 현실은 훨씬 암담하고 비극적이다. 두 가정의 아버지가 생명을 잃었고 생방송으로 중계된 이번 사건을 통해 낱낱이 드러난 경찰의 실력으로는 납치범죄 예방효과가 그다지 높지 않을 것 같기 때문이다.

상파울루=오진영 통신원 ohnong@ig.com.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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