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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버에 착륙한 무정부주의 비폭력을 주장하는 러시아의 젊은 무정부주의자들, 사회운동 확장 위해 사이트 개설
6월 중순 모스크바국립건축대에서 처음 소개된 적 있는 조그만 인터넷사이트가 뒤늦게 알려져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조용한 파문을 일으키며 화제가 되고 있다. 90년대 초 소련의 붕괴와 더불어 러시아에 본격적으로 상륙한 자본주의문화에 이미 식상해 아예 무정부적이고 반문화적인 성향에 귀의하고자 하는 현대 러시아 젊은층의 일부 정서를 대변하고 있는 사회운동프로그램인 ‘자신만의 2000’ 주도자들이 이번 사이트 제작의 주인공들이다.
문화현상 전반에 대한 비판
그 면면을 살펴보면, 현재 싱가포르 대학강단에서 교직생활을 하고 있는, 러시아에서는 여성운동가로 꽤 알려져 있는 이리나 아리스타르호바, 얼마 전에 <제2공화국의 대중매체>라는 저서로 유명세를 얻고 대중매체비평가로 자리를 잡은 이반 자수르스키, 러시아 젊은이들 사이에서 무정부주의운동의 정신적 지주로 평가되고 있는 비평가 올레그 키레예프, 한때 모스크바국립대학 학생회장을 지내면서 저항정신을 불태웠던 작가 알렉세이 즈베트코프 등이 주요한 얼굴들이다. 올해 5월1일 노동절에 즈음하여 반정치, 반문화 거리켐페인을 주도해왔던 이들은 이제 자신의 세를 거리에서뿐만 아니라 가상공간으로 본격적으로 확대해야겠다는 계획을 세워왔다. 거리켐페인과 함께 이들은 “아직 30살이 넘지 않은 자들의 눈에 비친 러시아 현대사”에 대한 비공식적인 견해를 모은 비평집 〈모든 P에 대한 반대〉 저작에 전념해왔는데 이번에 이 책의 출판기념회를 가지게 된 것이 새 인터넷사이트 개설을 앞당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이번에 새로 웹상에 선보인 사이트 주소 ‘www.getto.rema.ru’의 핵심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게토’는 ‘우리만의 2000’운동 참가자들의 인터넷 페이지 작성 프로젝트명을 지칭한다. 원래 이 말은 이탈리아어로 ‘주조소’를 뜻하는 ‘ghetto’로 영미권에서는 흔히 소수민족, 빈민가 등이 모여사는 슬럼가를 의미한다. 이 사이트의 제작진은 이 단어를 기성정치와 문화에 대한 비판, 그리고 새로운 젊은이문화와 유행의 전파를 위한 소수정예운동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흔히 일반 젊은이들이 쉽게 흥미를 갖기 힘든 딱딱한 정치비평만을 고집하지 않고 영화, 인터넷, 대중매체 등 폭넓은 문화현상 전반에서 기성질서에 대한 비판과 제안을 포괄하고자 한다.
체첸전을 끝장내라!
사이트의 핵심을 차지하고 있는 ‘mailgetto’라고 하는 배너를 클릭한 방문자들은 자유롭게 정치, 문화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교환할 수 있다. 그와 함께 이 웹페이지에서는 사이트 개설과 함께 출판기념회를 가진 <모든 P에 대한 반대>에 대한 주요 내용을 소개하고 있어 이곳을 방문하는 이들은 ‘자신만의 2000’운동의 주요한 논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에서 사이트 제작진들은 우선 옐친 시절 민중의식구조를 분석하고, 90년대 이후 권력에 저항해왔던 젊은이들의 운동사를 개괄하며 예술과 패션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신문화 과정들을 소개하고 있다. 옐친 시절에서는 물론 현재까지 이 운동의 주요한 목표물이 되고 있는 것은 체첸전이다. 사이트 주요 제작진의 한명으로 신러시아 좌익운동가로 정평나 있는 무정부주의자 올레그 키레예프는 “현존 권력은 괴물 같고 무미건조하며 폭력과 쥐어짜기에 의존하고 있다”며 현 정권을 비판하고 있다. 체첸전은 그 전형적인 예이다. 그러기에 ‘자신만의 2000’운동에서 현재 가장 주안점을 삼고 있는 것은 하루빨리 비인권적인 체첸에서의 전쟁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반전운동이다. 이와 같이 키레예프를 대표로 하는 현대 러시아 젊은이들의 무정부주의운동은 비폭력을 핵심주제로 삼고 있다. 새 인터넷사이트 개설식에서 투쟁방법을 묻는 필자에게 “체첸전쟁에 굉장한 불만을 갖고 있지만 이에 대한 저항으로 폭탄을 던지는 등의 행위는 하지 않을 것이니 염려말라”고 답한 키레예프는 “가장 시급한 과제는 현재 왜곡된 문화에 저항하는 젊고 싱싱한 사회여론의 형성”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박현봉 통신원 parkhb_spb@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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