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움직이는 세계 ] 2001년05월22일 제360호 

무기력한 좌파는 싫다

우파연합의 승리로 끝난 이탈리아 총선…차별화되지 못한 좌파에 대한 심판인가


사진/ 중도좌파를 압도적인 표차로 누르고 총리에 당선된 베를루스코니. 그는 유럽연합에 고립정책을 취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억만장자 기업가인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총선 승리 뒤 TV연설을 통해 계속적인 정쟁으로 인한 혼란과 단명의 정부 역사로 얼룩진 이탈리아 정치사를 반성하면서 “전후 58개의 정부가 실패한 강력한 행정부를 구성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겠다”고 다짐했다. 그리고 그는 대외적으로는 지난번 오스트리아의 총선 뒤 우파가 집권하자마자 취했던 유럽연합의 외교봉쇄조치를 의식한 듯 “우리는 유럽의 한 부분인 것과 미국과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것을 자랑스러워하며 이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라는 대외정책의 기조를 밝혔다.

연정내 극우파들은 잠재적 폭탄?

이탈리아 중도우파는 315의석 중 177석을 얻어 125석을 얻은 중도좌파를 압도적으로 물리치고 상원을 휩쓸었고 하원에서도 630석 중에서 368석을 얻어 중도좌파의 242석을 훨씬 웃도는 의석을 확보했다. 그의 정당인 포르자당과 북부동맹당, 그리고 민족연합의 연정은 사실상 전후 이탈리아 정치사상 가장 안정적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는 “이들과 수년 동안 함께 일해왔기에 의회에서도 함께 잘해나가리라고 믿는다”고 연정에 대해서도 낙관적인 전망을 표현했다.

언론에서는 베를루스코니가 오스트리아와 같이 극우노선을 통해 유럽연합과의 고립정책을 취하기보다는 적당히 타협해나가면서 유럽연합과 관계를 지속해나갈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우파정부와 유럽연합 내 좌파정부와의 갈등으로 인해 유럽연합의 통합속도는 다소 지연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하다. 이번 총선에서 승리한 우파연합 ‘자유의 집’이 결코 순탄한 길만을 가지 않으리란 전망도 나오고 있는데, 그 원인은 ‘자유의 집’을 이루고 있는 다른 상대들의 극우적인 정책과 내부결집력이다.

1994년 집권 뒤 북부연맹과의 연정에 실패하여 7개월 뒤에 권력을 내놓아야 했던 베를리스코니로서는 싫든 좋든 가장 큰 연정상대인 북부동맹을 껴안아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이탈리아 북부의 독립을 주창하는 독립주의자로도 알려진 북부동맹의 보시 대표가 선거중에 보인 태도는 유럽연합에 많은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그는 유럽연합이 이탈리아를 훔쳐가려 한다고 유럽연합에 적대적인 태도를 서슴없이 보였고 유럽연합의 관료주의를 ‘서구의 소비에트’라는 말로 비유해 비판했다. 그는 또한 불법이민자들을 범죄자로 처벌하기를 주장하는 극우적인 정책을 보이고 있어 유럽연합의 정책과는 많은 마찰을 보일 것으로 내다보인다. 세력은 미미하지만 ‘자유의 집’의 한축을 이루는 무솔리니의 손녀가 이끄는 ‘민족연합’도 파시스트정당이라는 간판을 공공연히 내걸고 있다. 우파연합이 승리한 뒤 유럽연합에서 받을 외교적 압력과 각 정파간의 갈등, 그리고 노조와의 갈등등은 출발부터 예상됐던 것이다.

이번 총선은 영국의 <가디언>이 표현했듯이 ‘더러운 선거’로 유럽연합 내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과열타락의 양상을 보였다. 총선이면서도 각당 대표들의 개인선거처럼 양상이 변했고 당 대표들에 대한 인신공격과 살인협박 등이 있었다. 나폴리에서는 상대방 후보의 선거운동원들이 선거 사무실을 습격하는 등 공포스런 선거분위기를 드러내기도 했다. 물론 베를루스코니쪽에서는 선거자금을 엄청나게 쓴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공약보다는 상대방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이 선거판을 휩쓸었다. 좌파연합인 ‘올리브나무연대’에서는 베를루스코니의 부정한 과거를 폭로하면서 그를 ‘괴물’로 비유했는가 하면 베를루스코니는 자신에 대한 외국언론들(<이코노미스트> <르몽드> <르 피가로> 등)의 비판이 ‘공산주의자들의 음모’라고 맞받았다. 그리고 좌파연합의 대표인 루텔리를 ‘공산주의자들의 강아지’라고 부르는 인신공격을 서슴지 않으면서 신냉전구도로 선거바람을 몰아갔다. 세계 30대 부자에 드는 베를루스코니는 지금도 뇌물과 돈세탁으로 2건의 재판을 남겨놓고 있는 상태이다. 그러나 선거운동과정에서 이러한 스캔들을 방어하기 위해 그의 소유인 세개의 TV채널을 동원하여 인간됨됨이를 집중적으로 선전하면서 그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이미지를 심기 위해 노력했다.

사상 최악의 더러운 선거


사진/ 패배한 좌파연합의 루텔리.


이번 선거는 우파와 좌파의 대결로 이념적인 대결구도양상을 보이지만 무엇보다도 이탈리아의 정치지형은 지역주의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다. 시실리를 중심으로 한 남쪽과 밀라노를 중심으로 한 북쪽은 전통적으로 우파세력에 대한 지지도가 강하며 로마, 피렌체, 볼로냐를 중심으로 한 중부지역은 전통적으로 좌파의 아성으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좌파나 우파나 전통적으로 뿌리가 깊은 지역에서는 그렇게 심한 선거전을 벌이지 않았고 로마를 비롯한 대도시에서 주로 부동표를 겨냥한 득표활동에 열을 올렸다.

이번 선거에서는 투표할 후보를 결정하지 못한 젊은 층에서 부동표가 40%나 나오면서 좌파의 우유부단한 정책에 식상해 있던 많은 표가 우파로 간 것이 결정적인 원인이 됐다. 또한 약 50개의 정당이 난립하는 불안정한 정치판에 식상한 이탈리아인들의 ‘안정희구 정서’가 이번 선거에서 우파에 결정적인 이익을 가져다준 것으로 보인다. 뿐만 아니라 선거 전 외국 언론들이 베를리스코니을 집중공격한 것이 이탈리아인들의 잠자던 ‘애국심’에 불을 질러 베를리스쿠니에 엄청난 반사이익을 던져준 것으로 선거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특히 베를리스코니를 대중적인 인물로 만들었던 것은 그가 선거운동중 사용했던 언어들이다. 축구광들인 이탈리아인들에게 쉽게 먹혀들 수 있는 축구용어(챔피언, 우승컵 등)를 사용한 것이 그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다른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베를리스쿠니의 공약인 조세감면, 연금상승, 범죄척결, 일자리 보장 등 사회의 모든 계층의 지지를 얻기 위한 공약들이 단순폭로전에 의존했던 좌파의 선거전략을 압도했던 것도 승리의 주요원인으로 짚을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좌파정부의 무능력과 무사안일주의가 이탈리아총선에서 좌파가 패배한 중요한 원인이 된다. 지역주의에 의거한 무능력한 인사들의 당선과 집권기간중의 우유부단하고 부패한 모습들이 이탈리아 국민들의 등을 돌리게 만들었다. 지난번 가톨릭방송사의 전자파로로 바티칸과 대립이 생겼을 때 정부의 수상은 바티칸의 입장을 지원하고 환경청장관인 윌러 보르돈을 정치적으로 고립시켜 그를 물러나게 하여 이탈리아 국민들을 분노시킨 바 있다.

현재 유럽연합 내에서는 이른바 ‘좌파’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이번 이탈리아총선에 유럽연합은 많은 경각심을 보이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이탈리아가 유럽연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세 나라와 함께 유럽연합의 4대 강국에 속하며 경제적으로는 세계 6위의 경제대국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의 정권이 이른바 ‘신좌파정권’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유럽연합 내에서 이탈리아와 충돌이 예상되고 있다.

국제주의를 포기한 좌파


사진/ 상대방 선거운동원에 의해 난장판이 되고만 한 후보의 사무실.


그러나 실제로 유럽연합에서 좌파나 우파의 차이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유럽연합이라는 공간 내에서야 좌파나 우파가 존재하지만 유럽연합이라는 배타적 공간을 넘어서서는 좌파나 우파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영국과 미국의 이라크폭격에서도 잘 드러났듯이 대외정책에서는 신좌파도 제국주의자로서의 면모를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록 좌파집권기중에는 외국이민자들에 대한 단속이나 처분이 조금은 관대하게 집행되는 면이 있다 하더라도 그 기조는 우파의 반외국인정책의 큰 틀을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한다. 특히 영국의 노동당은 집권을 위해 진보적 노동조합들과 손을 끊으면서까지 우경화했다. 경기가 상승하여 일손이 모자라게 되면 외국인에 대한 정책은 약간 관대해지고 경기가 후퇴해 실업률이 증가하게 되면 외국인들에 대한 차별정책이 눈에 띄게 되는데, 우파와 좌파의 자리바꿈은 대개 이때 이루어지게 된다.

유럽대륙에서의 좌파나 우파의 구별기준이 진보와 보수의 구도에서가 아니라 유럽통합과 외국인에 대해 정책에서 조금 더 열려 있는가에 대한 문제가 돼버렸다. 내년부터는 유로화가 유럽에 사용될 정도로 그 통합력은 가속화됐다. 그러나 이것이 좌파가 유럽정치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다는 징표라 한다면 현재까지 사상 유례없는 숫자의 외국인들이 유럽 바깥으로 추방당하는 현상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국제주의를 포기한 좌파나 극단적 민족주의를 표방하는 우파는 종이 한장 차이에 불과하다는 것을 이번에 이탈리아 국민들은 표를 통해 보여줬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 youngsig@oten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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