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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세계] 페루, '쥐들'은 가고 봄은 왔다 일본에 은둔중인 후지모리 기소 움직임… 구인맥 청산과 경제위기 탈출이 과도정부의 과제
지난 8월 페루의 정치위기를 취재하러 현지에 갔을 때 발렌틴 파냐과 의원(대중행동당 사무총장)으로부터 들은 말이다. 낡은 2층 건물의 우중충한 사무실에서 알베르토 후지모리 페루 대통령의 정치적 독선을 세차게 나무라던 파냐과 의원은 현지 페루언론에 대해서도 불편한 심기를 감추지 않았다. “명색이 야당 사무총장인데, 지난 2년간 어느 기자도 내게 인터뷰를 하자는 제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3개월이 지난 지금 모든 게 바뀌었다. 파냐과 의원은 기자들이 만나려 해도 쉽게 만날 수 없는 바쁜 몸이 됐다. 11월22일 알베르토 후지모리가 비운 자리를 이어 임시대통령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가 새 국회의장에 뽑힌 지 1주일 만의 큰 변화다. 파냐과 의원이 필자에게 들려주던 “후지모리의 예측 불가능성”은 마침내 후지모리의 일본 망명(11월17일)으로 마침표를 찍은 듯한 모습이다. 파냐과 새 대통령이 11월22일 취임식장에서 “민주주의를 다시 제도화하는 게 우리의 임무”라고 말한 것도 10년에 걸친 1인 장기집권으로 만창이가 된 정치게임의 규칙을 바로 세우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파냐과의 취임식은 지난 10월 초 민중혁명을 통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유고연방 대통령이 물러난 뒤 바로 한달 반만에 남미의 최장기집권자가 몰락한 것을 확인하는 현장이었다.
‘일본 은신’ 가능할까
11월 중순 부르네이에서 열렸던 아시아-태평양 정상회담을 마치자 마자 일본에 눌러 앉으려는, 정치사에서 좀처럼 보기 힘든 모습도 “예측이 어려운” 후지모리의 “상대를 놀라게 하는” 정치스타일에서 나온 것으로 이해된다. 후지모리가 일본에서 팩스를 이용해 사직서를 페루에 보낸 것도 흔한 일은 아니다. 페루의회는 그러나 그의 사직서를 받아들이지 않고, 찬성 62표 반대 9표로 그를 대통령직을 수행하기에는 “도덕적으로 적합하지 않은 인물”로 낙인찍고 새 대통령으로 파냐과를 뽑았다. 이로써 지난 대선 이래 들끓던 페루정국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합법적 정권교체를 이루기 위한 선거정국이다. 후지모리는 그렇다고 망명신청을 한 것은 아니다. 일본 시민권이 있기 때문이다. 30년대 초반 페루로 떠난 그의 부친은 1938년 후지모리가 태어나자, 고향인 가와치에 출생신고를 해놓았다고 한다. 말하자면 이중국적자다. 해외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상당수가 이중국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일본 정부로서도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 한 눈감아 온 게 사실이다. 그러나 후지모리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어엿이 일국의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일본국적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가 상식을 벗어난 일이다. 2대에 걸친 이민사는, 축재에 관한 한 성공적이라 말할 수 있겠다. 후지모리의 아버지는 가난을 면해보려고 일본을 떠났던 반면, 농업대 교수 출신의 후지모리는 거액의 비자금을 일본은행들에 분산 예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는 게 큰 차이라면 차이다. 아무튼 일본 정부로서는 후지모리가 부담스런 존재다. 후지모리의 인도를 페루 정부가 요구할 경우 껄끄러운 외교문제가 될 게 뻔하다. 후지모리가 일본에 장기간 머무를 게 분명해진 시점에서 일본의 여론은 어떨까. 한마디로 좋은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일본 <아사히 신문>은 사설에서 “페루로 돌아가는 것이 정치인 후지모리의 본분”이라 못박았다. 페루로 돌아가 그가 왜 대통령직을 그만두게 됐는가를 국민들에게 직접 설명해야 한다는 논리다. 그런 다음 일본에 오고 안 오고는 후지모리의 선택일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제기된다. 무엇이 후지모리로 하여금 페루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들었나. 후지모리 자신은 이 대목에 대해서는 “얘기가 길다. 언젠가는 밝히겠다”고 입을 다물고 있다.
몬테시노스 ‘공범’으로서의 위기의식
지난 5월 국제적인 비난여론 속에 3선고지에 오를 때만 해도 후지모리 대통령의 운명이 일본망명이란 처참한 처지에 이를지는 누구도 예측하지 못했다. 그의 몰락을 불러온 결정적인 사건은 잘 알려진 대로 정보기관 총책 블라디미로 몬테시노스의 야당의원 뇌물수수 현장이 담긴 비디오테이프가 공개되면서부터였다. “몬테시노스와 후지모리라는, 독단과 아집으로 뭉친 양두마차에 실려 페루가 실려가는 꼴”이란 비판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정치적 공생관계를 유지해왔다. 그러나 몬테시노스의 비디오 파문은 그때껏 정치운명적으로 한배를 탔던 이들을 갈라서도록 만든 결정적인 계기였다. 위기를 느낀 후지모리는 “4월 조기총선 실시,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자신이 살기 위해 몬테시노스에게 망명을 종용했다. 파나마로 망명을 떠났던 몬테시노스가 40일 만인 지난 10월23일 다시 돌아오자, 후지모리 대통령은 “내가 직접 나서서 그를 체포하겠다”고 친위 무장병력을 데리고 리마 외곽의 군부대를 뒤지는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구인맥의 뿌리를 뽑아라
페루의 최대 일간지 <엘 코메르시오>의 최근 보도에 따르면, 호세 우가즈 특별검사는 신임 검찰총장에게 후지모리가 세운 것으로 알려진 싱가포르의 두 회사에 관한 자료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몬테시노스는 이 회사들의 계좌를 이용해 돈세탁을 한 뒤 스위스은행 계좌로 입금했다는 혐의가 제기되고 있다. 이럴 경우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의 범죄 연결고리가 드러날 가능성이 크다. 우가즈 특별검사는 후지모리가 일본에 가기 전 싱가포르에 들러 이 회사들의 계좌에서 1800만달러를 인출해 3개의 일본은행에 입금했는지도 조사중이다. 후지모리와 몬테시노스가 지난 10년간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까지 페루를 덮고 있다. 몬테시노스가 총괄하던 국가정보원(SIN)을 비롯한 정보기관들은 비디오테이프 파문 이후 후지모리에 의해 해체된 상태다. 그러나 정보기관들에서 일하던 요원들이나 그들이 해오던 기능은 대부분 군부쪽으로 넘어갔다. 몬테시노스의 덕을 본 군장성은 50여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0월 후지모리는 4명의 군 최고지휘관들을 면직했고, 최근 10명의 군장성들이 옷을 벗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이 없는 한 또다른 몬테시노스 충성파를 앉히는 결과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몬테시노스가 자신의 비호세력인 군부를 부추겨 쿠데타를 일으키려 한다는 흉흉한 소문도 끊임없이 나도는 형편이다. 구시대 인맥의 뿌리를 뽑는 것이 민주화의 선결조건이란 공감대 아래 파냐과 대통령은 군부 숙정작업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파냐과 정권은 내년 4월에 대선을 치르고 7월까지 차기정권에 권력을 넘겨야 하는 하는 과도기 정권이라는 한계 속에서도 몬테시노스와 후지모리를 기소하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그들의 기소가 페루 민주화를 위한 기본요건이라는 인식 아래서다.
벼랑 끝에 몰린 경제살리기가 최대과제
김재명/ 분쟁지역 전문기자kimsphoto@yaho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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