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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이는세계] “그날 내 삶은 완전히 무너졌다” 터키 침공으로 분단된 키프로스인들의 고통… 통일방안에 대한 견해차로 분단 장기화
남의 일 같지 않은 분단의 아픔
로도시아(37)는 당시 열한살의 초등학생이었다. 아버지는 담배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어느 날, 고향인 아기아 트리아다라는 작은 시골마을에 터키군이 들어오면서 가족들의 인생은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아버지가 터키군에 끌려가서 행방도 모른 채 두달 이상이나 감옥생활을 하다가 돌아온 뒤 남쪽으로 피난와서는 수천명의 난민들과 텐트에서 2년 이상 생활해야 했다. 그뒤 부모는 자녀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호텔과 식당에서 청소나 접시닦이 일을 해야 했다. 그는 “지금도 고모가족은 북키프로스에 남아 있지만 25년 동안 한번도 만난 적이 없으며 부모님은 두고온 친척과 고향집 때문에 마음고생이 여간 아니다. 키프로스가 통일이 되어 하루빨리 내가 뛰놀던 학교를 다시 가보기를 소원한다”고 말했다. 지중해 연안의 작은 섬 키프로스는 군사전략적 가치로 말미암아 언제나 강대국의 점령지가 되어왔다. 터키-오토만 제국으로부터 독립한 즉시 영국의 식민지가 되어 1955년까지 억압에 시달렸다. 독립한 이후에도 계속 영국의 군사기지는 남게 되고 이는 정치적 갈등의 씨앗이 된다. 1974년 6월 당시 미국의 군사기지 건설 제안을 반대하고, 남아 있던 영국의 군사기지마저 철폐시키려던 마카리오스 정부가 쿠데타로 무너지자, 터키는 이를 빌미로 당시 18%의 인구를 차지하던 터키인들을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1974년 7월20일 대규모 군사작전을 벌여 약 40%의 섬을 차지하게 된다. 이로 인해 1700여명의 키프로스 그리스인들이 의문의 실종을 당하고 20만명 이상이 피난민으로 북키프로스를 떠나 각지로 흩어졌다. 이후 키프로스는 터키가 지배하고 있는 북키프로스와 그리스인이 대부분인 남키프로스로 분단된 채 25년간 군사적 대립상태가 지속돼왔으며 ‘지중해의 화약고’로 불리며 그리스와 터키 사이의 가장 중요한 정치적 변수로 작용해왔다. 1974년 이후 터키점령지역인 북키프로스는 지금까지 터키를 제외하고서는 공식국가로 인정받지 못한 상태에 있으며 유엔은 키프로스에서 하나의 정부만을 인정한다는 결의안을 통과시킨 바 있다.
“배후는 미국이다!”
지난 11월10일 제네바에서 유엔 중재로 열린 ‘남북키프로스정상회담’은 아무런 성과없이 서로의 입장만 확인한 채 막을 내렸다. 지난 25년 동안 줄기차게 유엔 중재로 회담이 오고갔지만 여전히 줄다리기 상태가 이어지고 있다. 이번 정상회담은 지난 9월 뉴욕에서 열린 밀레니엄정상회담에서 코피 아난이 두 지도자와 접촉을 갖고 키프로스 통일의 중재의향을 밝히면서 성사된 것이다. 이 회담에서 터키는 분리국가로 북키프로스를 인정해 줄 것을 요구하며 연합수준의 통일방안을 제안했다. 그러나 남키프로스는 한국가연방제통일안을 고수했다. 다음날 터키 총리 불렌트 에제비트는 앙카라에서 기자회견을 통해 “터키는 유엔사무총장의 생각인 ‘한 국가 한 정부’를 받아들일 수 없으며 ‘연합’을 원한다”는 공식입장을 밝혔다.
아테네=하영식 통신원youngsig@otenet.g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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