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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촌] 독립국가를 위한 투쟁의 역사 필리핀 인구 중에 모슬렘 인구는 5% 정도이다. 대부분 필리핀의 남부지역에 살고 있으며, 수세기에 걸친 스페인 통치 기간 동안에는 필리핀 정부로부터 독립된 정부로 인정받았다. 그러나 미국이 점령한 1989년 이래 강제 통합의 과정을 밟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자연히 종교·문화적으로 동질적인 대부분의 모슬렘들은 필리핀으로부터 독립적인 국가 형태를 다시 승인받기를 원하게 됐다. 1960년 말에 이들 중 일부가 자치적인 독립적 지위를 얻고자 무장을 하게 된다. 사태를 우려한 필리핀 정부는 1972년 9월 마르코스 대통령 정권 시절 계엄령을 선포하면서 모슬렘의 무장해제를 시도했다. 모슬렘 무장단체가 정부군, 특히 크리스천 무장그룹들에 의해 해체되는 과정에서 종교적인 마찰이 시작됐다. 이에 젊은 모슬렘인들 중에 인텔리들이 모여 MNLF를 건설하게 되는데 당시 MNLF를 조직했던 대표 누르 미수아리(Nur Misuary)는 필리핀의 명문대학교인 UP의 수재 중 한명이었다. 그는 범 모슬렘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Moros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이것이 바로 방사모로(Bangsamoro) 즉, 필리핀 모로 대중을 지칭하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는 기원이 되었고 민족주의적인 독립운동으로 발전했다. 이런 가운데 필리핀 남부지역에서의 전쟁은 1천여명의 군인과 시민을 죽음으로 내몰았고 수십만명의 난민을 낳게 했다. 1976년 12월, 이슬람회의기구(OIC)와 리비아의 주재하에 MNLF와 필리핀 정부간의 협상이 리비아의 트리폴리에서 시작되었다. 이른바 트리폴리협정이라고 불리는 이 회의에서 모슬렘이 많이 살고 있는 13개 지방에 자치정부를 1977년까지 세우는 데 서로 동의했다. 이 평화협정의 결과에 반대하며 독립국가를 강력히 주장하는 그룹이 바로 모로이슬람해방전선이다. 1970년대 후반은 이란에서 이슬람 혁명이 한창이던 때였다. 이란 혁명이 일어난 직후 이란 정부의 MNLF의 지원은 확실해졌다. 심지어 “이란의 이슬람의 혁명은 억압된 필리핀 남부 모슬렘 대중이 해방될 때까지 완전하지 않은 것이다”라는 선언이 나올 정도였다. 이란의 필리핀 모로이슬람에 대한 노골적인 지원은 필리핀에 기름수출을 거부하는 사태로 발전하게 된다. 이란의 오일 수출금지는 MNLF의 승리임과 동시에 필리핀 내부정치에 대한 모슬렘의 첫 번째 국제개입이었다. 마르코스 독재 시절에 모로이슬람의 민족주의 운동은 대중적인 지지를 받게된다. 그러나 평화협정에 따라 모슬렘 자치정부지역을 세우는 것은 결코 마르코스 행정부가 진실로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이에 따라 선언은 있었으나 이행은 되지 않았다. 이러한 과정을 지켜보면서 MNLF 내부에 다른 분쟁이 일게 된다. 무장투쟁만이 확실한 승리를 얻는 것이며, 이슬람 독립국가만이 유일한 대안이라는 주장은 아부 사이야프를 낳게 했다. 현재 아부 사이야프는 정부군에 의해 지난 1998년 대표가 사살된 이후 그 동생이 대표를 맡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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