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츠 ] 2000년08월09일 제321호 

[스포츠] 마운드를 호령하는 젊은 '맹주'들

주목받지 못한 고졸 투수 김수경과 김진웅… 에이스로 급부상하며 구단의 ‘보물’로


(사진/고교 시절 김수경은 무명 그 자체였다. 현대에 입단해서 98년 신인왕을 거머쥔 것은 혹독한 훈련 덕분이었다)


지도자에게 가장 큰 희열 중 하나는 가능성 있는 제자가 기대 이상으로 커주는 일이다. 그런데 가능성보다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거둬놓은 제자 가운데 특출난 활약을 하는 선수가 나온다면 기쁨은 배가 된다. 2000 한국프로야구에는 그런 젊은 제자들이 맹활약을 펼치고 있어 코칭스태프를 흐뭇하게 하고 있다. 이제 갓 스무살 남짓인 현대유니콘스의 김수경과 삼성라이온스의 김진웅이 그 주인공들이다. 김수경이 79년생이고 김진웅이 80년생이라 김수경이 나이로는 한살 더 많지만 학교는 함께 다녔다.

청소년 대표에도 들지 못한 선수들이…

8월3일 현재 각각 13승(김수경)과 12승(김진웅)을 올리며 다승왕 선두경쟁에 뛰어든 두 선수. 각 팀에서 에이스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는 이들 두 젊은 선수는 각각 현대와 삼성 마운드를 앞으로 최소한 10년은 이끌어 가리라는 기대를 받고 있다. 스타가 생명인 프로스포츠. 이들 둘은 한국프로야구의 스타시스템을 통해 집중육성할 필요가 있다. 이 둘은 성장배경이나 현재의 상황 등 여러모로 닮은 점이 많다.

우선 둘의 공통점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곧바로 프로무대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김수경은 현대고, 김진웅은 대구고를 각각 졸업했다. 98년에 나란히 냉혹한 프로의 세계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이들이 주목받고 있는 이유는 다른 데 있다. 바로 고교 시절 청소년대표에 속하지 못했으면서도 프로무대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나마 김진웅은 김수경에 비해 이름이 알려진 편이었다. 대구고 3학년이던 97년, 김진웅은 당시 투수 중 고교 최대어라는 평가를 받았다. 단지 문제였다면 소속팀 전력이 평균에 미달했다는 점이다. 그가 속한 대구고는 그해 한 차례도 8강에 들지 못했다. 아무리 김진웅 혼자 날고 뛰어도 팀의 성적은 바닥권을 벗어나지 못했다. 기량은 출중했지만 팀이 이런 형편이니 청소년대표 명단에서 제외되는 것이 어찌 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김진웅에 비해 고교 시절 김수경은 그야말로 무명 그 자체였다. 팀이나 김수경 자신이나 내세울 만한 별다른 성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프로에 입단하자 받게 된 기대치도 당연히 김진웅이 위였다. 고교 시절 삼성라이온즈의 눈길을 잡아둔 것은 다름 아닌 김진웅의 투구폼이었다. 그의 투구폼은 한때 삼성의 에이스였던 김상엽의 투구폼을 쏙 빼닮았다. 거무튀튀한 얼굴 탓에 ‘만딩고’라는 별명을 갖고 있었던 김상엽은 89년부터 삼성에서 활약해 90년에는 18승을 거두는 등 삼성 역대 최고 투수 중 하나였다. 과감하고 다이내믹한 투구폼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삼성으로서는 그 김상엽이 다시 돌아온 듯 보였을 것이고, 우연하게도 김상엽 역시 대구고를 졸업하고 바로 삼성에 입단한 경력이 있었다.

체인지업의 명수 김진웅


(사진/고교 시절 뛰어난 실력을 인정받으면서도 팀의 부진으로 청소년 대표팀에 들지 못했던 김진웅. 올해 체인지업을 무기로 다승왕 경쟁에 뛰어들었다)


현대는 98년 신인지명에서 김수경을 2차로 지명했다. 당시만 해도 현대는 “일단 젊은 선수들을 많이 확보해서 그 중 하나라도 건지면 다행이다”라는 계산이었다. 그 많은 젊은이 가운데 하나가 김수경이었다. 투구폼이나 구위 어느 것 하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단지 기대할 것은 183cm 80kg이라는 듬직한 체구뿐이었다. 그나마 그것도 가능성에 머무르는 것이었다. 그 김수경이 입단과 동시에 미국 겨울 전지훈련을 거치면서 일대 혁명을 일으켰다. 김시진 투수코치가 장점을 극대화하면서 투구폼을 완전히 뜯어 고친 것이다. 코칭스태프가 “이제 그만 하라”고 사정할 때까지 훈련을 멈추지 않는 트레이닝머신 김수경은 혹독한 담금질을 통해 98년 프로무대에 데뷔했다.

입단시 김진웅이 김수경에 비해 기대는 더 모았지만 프로와 성공의 악수를 먼저 나눈 쪽은 김수경이었다. 98년 데뷔 시즌에 승률타이틀을 거머쥐면서 현대의 한국시리즈 우승의 주역이 된 것이다. 생애에 단 한번뿐인 신인왕의 영광도 김수경 차지였다. 이듬해인 1999 시즌에는 탈삼진 타이틀을 차지해 영광을 이어갔다.

반면 김진웅은 잔뜩 웅크리고 도약의 기회만 엿봤다. 첫해 올린 승수는 고작 3승. 그러나 지난해 11승으로 뛰어오름으로써 삼성의 판단이 틀리지 않음을 확인시켰다. 그리고 올해 8월3일 현재 12승을 올렸다. 13승으로 다승부문 선두인 김수경에 불과 1승 차이다. 투수진이 불안한 삼성마운드에서 김진웅은 올 시즌 부동의 에이스로 활약하고 있다.

김수경의 간판은 최고의 컨트롤

김진웅은 나이 어린 투수답지 않게 체인지업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이 무엇보다 장점이다. 현대야구를 체인지업의 시대라고 말할 정도로 체인지업은 최고급의 구질이다. 그 체인지업을 제대로 던질 수 있는 덕분에 올해 대활약을 펴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단점은 아직도 투구폼에 손볼 곳이 많다는 사실이다. 키킹모션에서 양쪽 다리가 고정되지 않고 약간 열려 있어 컨트롤과 힘의 집중에 저해를 가져오고 있다. 계형철 투수코치는 “아마추어일 때 든 버릇이 잘 고쳐지지 않는다. 현재 많이 좋아지기는 했지만 아직 더 보완해야 한다”고 김진웅에게 시도때도 없이 충고한다. 또 하나 두뇌피칭에 좀더 신경쓸 것. 포수의 리드에 수동적으로 끌려가는 게 아니라 자신의 구질과 볼배합을 세밀하게 머리 속에 담아 두고 이를 분석하는 노력이 뒤따라야만 진정한 에이스가 될 수 있다.

김수경은 컨트롤이 무엇보다 귀중한 재산이다. 투수에 관한 한 최고의 분석을 자랑하는 김성근 삼성2군 감독은 “김수경의 컨트롤은 국내 최고다. 폼이 낮고 공을 놓는 포인트가 아주 좋다”고 칭찬한다. 주무기로 삼는 구질은 슬라이더. 김수경에게도 약점은 있다. 슬라이더를 주무기로 삼다보니 오른손 타자의 바깥쪽에 승부를 많이 하게 된다. 따라서 몸쪽의 과감한 승부구가 드물다는 점이다. 몸쪽의 승부는 투수의 근성을 느끼게 한다. 그래서 몸쪽은 에이스가 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공략포인트다. 큰 것 한방을 맞을 확률도 몸쪽이 높지만 그렇다고 몸쪽을 기피해서도 안 된다. 몸쪽은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승부처다. 다시 말해 ‘위험 속에 승부가 있는’ 것이다. 김수경에게는 또 하나 직구와 슬라이더라는 단조로운 볼배합에 각이 큰 커브나 체인지업을 추가해 다양화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이것이 앞으로 남은 가장 큰 과제다.

삼성과 현대에서는 이들 두 젊은 스타들에 대한 스케줄을 장기적 안목에서 마련할 필요가 있다. 현대는 올 시즌을 끝으로 정민태가 외국으로 떠난다. 이렇게 되면 김수경이 그 빈자리를 감당해야 한다. 커지는 부담만큼이나 마운드에서 피로도 늘어나게 될 것이다. 김진웅은 현재상태로도 팀의 에이스다. 정신적인 부담을 스스로 식히기에는 아직은 어린 선수들이다. 등판 스케줄 관리뿐 아니라 이들에 대한 세심한 심리관리가 절실한 이유다.

홍헌표/ 스포츠서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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