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hani.co.kr/h21

기사섹션 : 문화 등록 2003.12.11(목) 제488호

[문화] [문학|김남일] “가벼운 세상을 진지하게 보련다”

‘아름다운 작가상’ 받은 소설가 김남일의 어제와 오늘… 한-베 문학의 다리 놓고 다시 시대의 진보 속으로

소설가 김남일(46)은 “나를 매혹시키는 것은 산과 책과 길”이라고 말한다. 아직 걷고 있는 길의 끝이, 목표점이 어디인지 찾지는 못했지만 이제 ‘길’ 자체의 소중함을 바라보고자 한다며. 1980년대의 대표적인 민족문학·노동문학 작가였던 그는 요즘 세대에게는 약간 낯선 이름이 돼버렸지만, 그의 안에서 오랫동안 무르익은 많은 말들은 이제 소설들이 되어 막 밖으로 흘러나오려는 참이다.

끊임없이 질문하며 민족문학 경계 넓혀

그에게, 민족문학작가회의 젊은작가포럼은 지난 12월6일 울산광역시 북구 예술회관에서 열린 전국문학인대회에서 ‘아름다운 작가상’을 주었다. 젊은작가포럼이 지난해 처음 만든 이 상은 작품세계와 삶에서 두루 ‘아름다운’ 작가에게 돌아간다. 김남일은 “내가 무슨 아름다운 작가냐. 너무 부담스럽다”며 상을 안 받겠다고 도망다니기도 했다. 그러나 후배들은 앞다퉈 그의 ‘아름다움’을 이야기한다. 고영직 젊은작가포럼 위원장은 “김남일 선배는 왜 글을 써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면서 민족문학의 경계를 넓혀왔다. 승부욕이나 사심이 없는 사람이지만 그 때문에 조명을 받지 못하는 것이 안타깝다”고 말한다. 문학평론가 고명철은 “너무나 따뜻한 사람이면서, 80년대 민중·민족적 문학운동부터 지금까지 삶과 문학의 진보를 향한 길을 걸어왔다”고 했다.

‘80년대 민중·민족적 문학운동’. 여기서 김남일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1983년 등단한 그는 1980년대의 폭력과 광기에 맞서는 창작활동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 시대 문학에 관심 많았던 독자라면 김남일의 이름을 당대 가장 주목받은 작가로 꼽는다. 유신 말기에서 광주 민주화운동에 이르는 시대 상황과 그 속에서 일어나는 노동계급과 노동자 콤플렉스로 ‘아래로’ 내려가는 지식인의 이야기를 그린 첫 장편소설 <청년일기>(1987), 농민 문제의 현실을 담은 <다시 서는 땅>(1988), <일과 밥과 자유>(1989) 등은 여전히 그 세대의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가 <문화일보>에 연재하고 있는 ‘80년대 문학의 갈피를 들추며’는 그 시대의 문학판에서 최선을 다했던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그 시대의 촘촘하고 생생한 역사다.

1980년대 말~1990년대 초 소련과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그 역시 흔들렸다. 그는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청주로 내려가 1992년부터 1996년까지 함경도 등 지금의 북한 지역을 배경으로 좌익 항일운동의 역사를 다룬 대하 장편소설 <국경> 7권을 필사적으로 써내려 갔다. 한번도 제대로 다룬 적이 없던 역사의 부분을 생생한 함경도 사투리로 그려냈다는 찬사를 받은 이 책에 대해 그는 “앞이 안 보이니까 역사 속으로 후퇴한 거죠. 지루했죠”라고 부끄러워한다. 이어 1997년 써낸 <세상의 어떤 아침>은 소시민이 되어가는 ‘진보적 지식인’ 등을 그렸고 ‘후일담 소설’로 분류됐다.

새로운 화두 붙들고 아시아 변방에 관심

김남일은 여기서 약간 목소리가 높아졌다. “평론가들은 이런 소설에 후일담 소설이라는 딱지를 붙이고 지나간 시대에 대한 향수나 아련함만 담는다는 비판을 많이 했지만 나는 거기에 새로운 길목에 선 작가들의 글쓰기와 실존에 대한 고민들도 담겨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1980년대 우리가 살아온 과정과 이야기를 송두리째 쓸모없는 것으로 비난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고 느낀다.” 그러나 후일담류에서 한발 더 나가 서야 할 지점이 어느 곳인지, 그는 오랫동안 헤맬 수밖에 없었다. “학교 졸업하고 긴급조치에 걸려 감옥 갔다 나와 세상에 내던져졌을 나처럼 약한 놈이 어느새 시위대 맨 앞에 서 있었다. 그렇게 10년을 살았던 나는 자신을 들여다보는 훈련이 안 돼 있었다. 나를 볼 수도, 나에 대해 쓸 수도 없었다.” 대신 그가 매달린 것은 새로운 세상과의 만남이었다. 민족문학작가회의 사무국장으로 작가들의 베트남 알기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고 작은 운동을 벌인 사람이 그다.

“90년대 초 세상에 대한 전망을 잃어버리고 큰 조직에서 서로 주고받았던 상처와 폭력성에 대해 회의가 들 때 ‘새로운 곳에 놀러나 가자’ 하는 심정으로 아무것도 알지 못한 채 베트남에 갔다. 베트남에서 그곳 사람들과 역사를 만나면서 베트남을 통해 새롭게 세상을, 우리를 보고 이야기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취지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작고 주체적인 모임을 만들자는 편지를 보냈다.” 1994년 말 작가 김영현, 방현석, 최인석과 함께 ‘베트남을 이해하려는 젊은 작가들의 모임’을 꾸렸고, 회원들은 베트남 여행을 떠나고, 베트남의 말과 역사를 공부하며 베트남을 이해하고 한국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 10명이 모여 작게 시작한 이 모임은 이제 ‘한국의 문학판이 베트남으로 옮겨갔다’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한국 문학 속의 베트남 붐을 일으켰고, 베트남의 대표적 작가들과 교류하고 그들의 작품을 소개했으며, 한국군의 베트남 양민학살 문제를 공론화하는 등 베트남을 알리는 데 많은 활동을 했다.

요즘 폭넓은 독서와 여행으로 유명한 김남일은 베트남에서 멈추지 않고 세상에 대한 관심을 더 넓히는 중이다. 티베트와 히말라야, 실크로드 사람들의 삶에 관심이 많고, 팔레스타인 작가 갓산 카나파니, 콜롬비아의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이집트 작가 나지프 마흐프로 등 아시아와 아프리카 작가들의 책들을 열심히 읽는다.

“욕망과 불륜의 재발견이 전부 아니다”

김남일이 오랜만에 내놓은 최근작 <사북장여관>(계간 <문학과 경계> 가을호)은 유부남과 이혼녀가 눈 내리는 혹한의 밤 산길을 따라 태백으로 향하는 여행 이야기다. 1990년대 말 이후 흔하디 흔해진 ‘불륜 소설’로 보이는 이야기지만, 그는 오히려 세상이 손가락질하는 사랑에 모든 것을 걸고도 외면할 수 없는 현실이나, 희망도 출구도 보이지 않는 길에 선 주인공의 절망감을 그리는 데 주력하고 있다. 두 연인은 그들의 사랑에 충실하고자 하지만, 과거의 기억이 그들의 여행길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남자는 ‘바람난 남편으로 인한’ 암담한 현실을 해체하고자 1500조각 퍼즐 맞추기에 빠져 있는 부인에 대한 죄의식을 떨칠 수 없고, 여자는 ‘그들의 사랑 때문에’ 겉도는 아들을 잊을 수 없으며 두 사람 모두 탄광촌 운동가에서 사업가로 ‘변신’한 옛 동지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다. 카지노와 아파트 단지로 변한 옛 탄광촌 사북에서 그들이 마주치는 것은 “주변의 어둠보다도 더 까만 터널 입구, 유일한 길”이다. 김남일은 “이 까만 터널을 헤치고 나가면 과연 밝은 곳에 도달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지만, 이 길밖에 없다. 캄캄한 터널 속 바닥으로 내려가 개인적으로 자기 삶의 바닥을 보고 지독히 절망하고 나면 뭔가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차라리 현재로선 뚜렷한 전망이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고 말한다.

이제 오랜 ‘방황’과 길 찾기 끝에 그는 내년부터는 정말 열심히 새 글을 쓸 계획이다. 그 글들은 어떤 모습이 될까 “80년대 내가 쓴 소설들 마지막은 ‘함께 어깨 걸고 스크럼 짜 앞으로 나아갔다’는 식으로 끝난다. 그때는 그렇게 낙관주의자였는데 지금은 세상이 모순덩어리고 조금 두드려 고친다고 나아질 것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지만, 그는 1980년대에 대한 반작용으로 그 시대 고민의 성과들은 내던져버리고 개인의 욕망과 불륜의 재발견에 매몰돼가는 글쓰기가 오래 계속되는 데도 쉽게 동의하지 못한다. “새로운 흐름, 금기를 드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너무 가벼워지는 세상을 거꾸로 진지하게 보고 싶다. 전체적인 세상을 보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되, 그 행간의 작은 것들에 대한 관심, 나를 돌아보려는 반성의 자세를 아우르는 자세로 살고 쓰고 싶다.”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http://www.hani.co.kr/section-021015000/2003/12/021015000200312110488063.html



The Hankyoreh Plus copyright(c) webmaster@news.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