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ww.hani.co.kr/h21![]() |
![]() |
|
기사섹션 : 문화 | 등록 2003.12.11(목) 제488호 |
![]() |
[문화] [책갈피] 인권의 세기를 향해 가시밭길로… [박원순 변호사의 사건 · 법정 기록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
“나에게 유죄 판결을 내리시오. 역사가 나를 무죄로 할 것입니다.” 청년 카스트로가 법정 최후진술로 한 이 말은 전 세계 양심수들의 슬로건이 되었다. 1980~90년대의 인권변호사이며 현재 ‘아름다운 재단’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는 이 말을 화두로 한국 인권변론사와, 그와 함께한 한국 민주화운동의 역사를 <역사가 이들을 무죄로 하리라>(두레 펴냄)로 담았다. 당시 사건들과 법정의 상세한 기록들이 꼼꼼하게 정리됐다. 그는 이 땅의 첫 인권변호사를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을 변호했던 이들에게서 찾아냈다. 일제 치하 법률가들은 대부분 민족의 수난과 관계없이 특권층으로서 부와 명예를 누렸지만 김병로, 이인, 허헌 등은 항일 변호사 공동 전선을 형성해 애국투사 무료 변론과 생활보조 등으로 독립운동을 후원했다. 대동단 사건, 안중근 의거, 의열단 사건, 조선공산당 사건, 소작쟁의, 광주학생운동 등과 관련된 법정마다 이들의 변론이 있었다. 해방 이후 혼란과 갈등에 휩싸였던 한국 사회에서 진보당 사건을 변론한 김춘봉, <경향신문> 폐간 사건을 맡은 정구영 등은 ‘암흑 사법’ 시대에 인권을 위해 싸운 드문 변호사들이다. ‘인권의 거목’으로 불리는 이병린 변호사는 군사독재 시대 인권변호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는 김지하의 <오적> 사건에서 200자 원고지 190장의 변론안을 통해 풍자시의 성격과 언론·사상의 자유에 관한 동서고금의 사상, 문학, 이론을 인용해 무죄를 주장한 것으로 유명하다. 독재정권은 그를 제거하기 위해 간통 사건까지 조작했지만 무위로 끝났다. 한승헌 변호사는 1960년대 말부터 인권변론을 시작해 동백림 사건, 통일혁명당 사건 등 수많은 사건을 맡았다가 반공법으로 구속되기도 했다. 유신체제의 인권유린을 마주하면서 이돈명, 황인철, 조준희, 홍성우 등 인권변호사 4인방이 등장했다. 이들은 1980년대 중반까지 10월 유신, 긴급조치, 5·17 비상계엄 확대, 광주사태 등 유신독재와 전두환 정권 아래 온갖 시국 관련 사건을 맡았다. 민청학련 사건으로 수배돼 도피생활을 하면서 <전태일 평전>을 썼고, 부천서 성고문 사건을 폭로했던 조영래 변호사는 인권변호사의 전설로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기억되고 있다. 지은이는 “특권과 특혜가 보장되어 있는데도 인권변호사들은 지위와 이익을 포기한 채 억압받고 핍박받는 사람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편이 되었다. 정치적 보복의 위협을 무릅쓰고 인권 희생자들의 곁에 섰다 구속당하고 감시당하는 등 기꺼이 박해와 수난의 희생자가 되었다”며 그들은 용기 있는 지식인의 전형이자 선비정신의 구현자였다고 말한다.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