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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문화 등록 2003.10.09(목) 제479호

[문화] [광화문 설계안] 문화가 숨쉬는 인간의 거리로

차가 들끓는 서울시청 앞 로터리나 광화문 앞 세종로에 보행자를 위한 광장을 만들자는 주장이 더 이상 터무니없는 공상으로 들리지 않게 된 것은 월드컵 덕분이었다. 월드컵이 열리는 동안 전국에서 2400만 시민이 거리로 쏟아져나왔다. 심장에서 터져나온 듯한 시민의 열기를 체험하고 난 뒤 시민단체는 발빠르게 ‘포스트 월드컵 문화사회 만들기 캠페인’을 벌였다. “세종로를 문화광장으로!” 문화연대는 “100m 폭의 세종로 도로를 차 없는 거리, 곧 광장으로 변환해 시민들이 자유롭게 광장의 문화를 향유하자”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는 “승리의 열광과 자부심, 광풍이 몰아치고 난 뒤 다시 무미건조한 현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허탈감을 넘어” 우리의 일상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키는 기회로 이끌어가자는 것이었다.

문화연대 공간환경위원장 정기용(기용건축 대표)씨는 “서울의 중심공간인 세종로를 누가 차지하느냐 하는 것은 한반도의 영토와 백성, 주권을 차지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의미다. 세종로는 한 나라를 상징하는 거리라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며 문화광장의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나 문화광장을 만든다고 해도 사람의 활기로 가득 찬 살아 있는 공간으로 가꿔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정기용씨는 1990년대 초반 대학로의 실패 사례를 지적했다. “당시 대학로에 붉은 아스팔트를 깔고 주말마다 차량을 통제해 다양한 놀이와 문화행위를 즐길 수 있는 광장으로 만들었다. 하지만 기껏 만들어놓아도 군중집회 장소로만 사용된다는 이유로 얼마 지나지 않아 철회되었다. 교통량이 증가해 불편함도 컸다. 이는 광장을 유지할 수 있는 우리 문화가 그만큼 빈약했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직후 폐허로 변한 수도 서울을 서둘러 재건하고 폭발적인 인구 증가를 수용할 만한 기능들을 급조해내면서 서울은 무분별한 개발로 상처투성이가 되고 말았다. 서울의 역사성을 살리고 문화도시로 가꿔나가자는 주장이 어느 정도 먹히기 시작한 것은 1994년 서울 정도 600주년 기념 행사를 치르면서였다. 이후 서울의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자는 갖가지 주장이 펼쳐졌다.

건축가 김석철(아키반 대표)씨는 신문 지면 등을 통해 2000년 경복궁~세종로~남산, 창덕궁~종묘~남산에 이르는 녹지축의 부활을 제안했다. 남북 녹지축과 동시에 청계천을 복원해 동서 녹지축을 만드는 것도 포함시켰다. 북악산과 남산을 녹지로 연결하기 위해선 세종로를 사람을 위한 길로 만들어 녹지를 가꾸는 것이 필수적이었다.

더욱 구체적인 안도 등장했다. 건축가 서현씨는 보도 포장 같은 구체적인 부분까지 보여줬다. “육조거리로 시작된 이 길은 조선시대가 이 도시에 새긴 중요한 흔적이다. 조선은 왕조의 시대였다. 그 시대가 우리에게 남긴 가장 위대한 문화적 유산은 <조선왕조실록>과 훈민정음일 것이다.”

그는 한글로 번역된 <조선왕조실록>을 세종로 바닥에 새겨 까는 디자인 안을 제시했다. “가로·세로 3cm가량 되는 판에 태조 실록부터 한글자씩 새겨 광화문 앞부터 이순신 동상까지 연대순으로 깔면 경복궁이 정궁으로 사용됐던 선조 때까지 이른다.” 거리 곳곳에는 자격루·앙부일구 등 실록에서 등장하는 소도구들이 제작되어 설치된다. 실록에 등장하는 문화적 인물들의 생몰 연대도 거리에 표시된다. “그래서 우리는 ‘중종 3년에서 만나자’고 약속할 수 있다.” 그는 길 주위 세종로에 면한 1층 부분은 소매점들로 채워 아무나 들락날락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어찌 보면 미술관보다 국수집이나 아이스크림 가게가 더 문화적일 수도 있다. 고급하고 세련된 문화공간보다 편안하고 포근한 공간을 만들면 좋겠다.”

이 모든 설계안들은 차를 적극적으로 배제하는 것을 전제한다. 청계천 복원 공사로 인해 도심에 승용차를 끌고 가는 것은 너무나 불편한 일이 돼버렸다. 세종로에 광장이 생기면 청계로 남북으로 우회하는 차량 흐름을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세종로 광장 계획은 광화문 앞길만 사람을 위해 비우는 작업이 아니라 서울 전체가 사람에게 편안한 거리가 돼야 함을 의미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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