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성장 보고서]
우리에게 손정목 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가 있다면, 뉴욕에는 <파워 브로커>(The Power Broker: Robert Moses and the Fall of New York, 로버트 카로, 1973)가 있다. 손 교수의 책이 서울의 질풍노도적 성장과정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면, <파워 브로커>가 밝히는 뉴욕의 개발 역시 다르지 않다. 이 책은 고속도로와 공원의 개발을 필두로 해 뉴욕 도시계획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로버트 모지스(Robert Moses)의 전기로, 이 저돌적인 인물이 세계적 대도시 뉴욕에 투사한 비전과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한 과정에서의 권력과 결탁, 그리고 그 결과로서 몰락을 이야기하고 있다.
두 책은 서울과 뉴욕이라는 세계적 대도시의 성장과정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전자는 서울이라는 도시에, 후자는 로버트 모지스라는 인물에 시선이 집중돼 있다는 것이 다르다. 그는 과연 누구인가?
혹자는 로버트 모지스를 가리켜 미국은 물론이고 아마도 인류역사에서 가장 많은 물량의 건설사업을 주관한 인물이라고 한다. 한번도 선거에 의한 공직을 가져본 적이 없지만 루스벨트 대통령마저도 그를 마음대로 다루지 못했다. 그가 가졌던 공식 직함은 뉴욕시 공원국장이었으나 그는 언론과의 유대, 상대에 대한 인신공격에 가까운 협박, 공공에 대한 헌신적 자세, 저돌적인 추진력 등을 바탕으로 엄청난 권력을 누렸다. 최대 정적이던 넬슨 록펠러에 의해 공직에서 물러날 때까지 그는 뉴욕과 롱아일랜드 일대의 도시경관을 혁신적으로 바꿔놓았다.
그는 공이 많은 만큼 과오도 많이 저질렀다. 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오늘날 뉴욕이 갖고 있는 많은 도시 문제들의 책임을 그에게 묻기도 한다. 롱아일랜드 고속도로를 계획하면서 부자들의 땅을 교묘히 비껴가는 도시계획적 게리맨더링(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에게 유리하도록 선거구를 상식이나 원칙과 무관하게 멋대로 고치는 행위)이나, 예산도 확보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단 공사부터 시작해놓고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역으로 공사 중단의 책임을 뒤집어씌우는 장면 등은 마치 손 교수의 책 어딘가 있는 구절을 읽는 듯하다.
이 책은 이 대담한 인물을 미화하려는 의도에서 쓴 것은 아니다. 오히려 로버트 모지스의 몰락과정이 이 책에서는 더 중요한 내용이다. 그가 그토록 사랑했고- 적어도 겉으로는- 그들을 위해 봉사하고 있다고 믿었던 대중은 결국 그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속으로 대중을 경멸했고 그 자신의 호화로운 사무실에서 황제와 같은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결과로 1959년에서 68년까지 10년 동안 점차 권좌로부터 멀어지는 괴로움을 맛봐야 했다. 그는 왜 대중이 자기에게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지 끝까지 이해할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