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호크니 지음, 남경태 옮김, 한길아트(031-955-2032) 펴냄, 6만원

유럽의 박물관에 가득한 사진처럼 정교한 근대 회화들의 비밀은 무엇일까. 영국 팝아트의 기수인 데이비드 호크니는 2년 동안 ‘화가의 눈으로’ 연구한 끝에 15세기 초부터 많은 화가들이 광학, 즉 거울과 렌즈를 이용해 맺힌 상을 그대로 따라 그리는 투영법으로 섬세한 묘사를 할 수 있었다고 지적한다. 출판 뒤 많은 논란을 일으켰던 이 책에는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그가 모은 베르메르, 반 아이크, 앵그르, 홀바인 등 수많은 대가들의 그림 도판이 담겨 있어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19세기 서울의 사랑-절화기담, 포의교집

김경미 조혜란 역주, 여이연(02-763-2825) 펴냄, 1만원

18~19세기 서울에 살았던 이들의 사랑과 욕망을 보여주는 고소설 2편이다. 사랑의 주체로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조선시대 유부녀들의 모습이 신선하게 다가온다. <절화기담>의 순매와 <포의교집>의 초옥은 하층 집안의 유부녀로 양반 남성과 사랑에 빠진다. 특히 초옥은 자신의 뛰어난 재능에 걸맞은 남자와 대등하게 마음을 주고받고자 하며 이를 알게 된 남편이 엄청난 폭력을 휘두를 때도 자신의 정당함을 꿋꿋하게 주장한다. 정절의 포장을 벗어던진 조선 여성들과 당시 서울의 풍속이 생생하다.

상업문화 예찬

타일러 코웬 지음, 임재서·이은주 옮김, 나누리(02-3144-8506) 펴냄, 1만2천원

“나는 오직 돈을 벌기 위해 곡을 쓰는 음악의 고리대금업자는 절대 아니다! 하지만 나는 독립적으로 살고 싶다. 그렇게 살려면 얼마간의 수입이 있어야 한다”고 베토벤은 말했다. 경제학자인 지은이는 예술성은 선이고 상업성은 독이며 ‘상업주의’가 예술을 고사시킨다는 통념에 적극적으로 반론을 제기한다. 근대 예술가들은 경제적 독립을 통해 중세 귀족 후원자에게서 벗어나 새로운 예술을 할 수 있었다. 돈은 예술가를 대중의 취향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게 하고 다양하고 혁신적인 창작활동을 가능케 한다는 것이다.

마음의 땅, 보이지 않는 자들, 알려지지 않은 쿠르드족 이야기

힐미 압바스 지음, 조경수 옮김, 도서출판 이매진 (02-2273-8687) 펴냄, 1만2천원

터키와 이란, 이라크, 시리아의 산악지대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세계 최대의 ‘이산 민족’ 쿠르드족의 신화와 전설을 기록했다. 그들의 기원과 민족적 자의식이 드러난 이 기록은 유대인의 성서가 그러한 것처럼, 쿠르드족이 ‘마음의 땅’에 정착해야 할 당위성을 증거한다. 쿠르드 신화와 전설도 유럽과 아프리카, 서아시아 일대 신화의 특성을 공유했는데 천지창조와 낙원 등이 등장한다. 창조주인 ‘아주 늙은 성스러운 아버지’와 그리스도와 유사한 신인(神人) 암샤스판드가 나오며 세계는 존재와 비존재, 빛과 어둠, 선과 악 등으로 나뉜다.

아우또노미아

조정환 지음, 갈무리(02-325-1485) 펴냄, 2만원

이탈리아 사상가 안또니오 네그리는 2001년 전지구적 시스템으로 새로운 ‘제국’이란 새로운 유령이 형성되고 있다고 경고했으며 곧바로 9·11이 일어났다. 이 책은 좌파 지식인들 사이에 큰 관심을 모으고 있는 네그리의 삶과 사상에 대한 체계적인 입문·연구서다. 지은이는 네그리 철학을 ‘아우또노미아’, 즉 자율이라는 개념으로 수렴한다. 또 ‘제국’은 미국을 염두에 두지만 세계화·국제화·자본화 등 하나의 원리로 작동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려는 모든 음모를 포괄하며, ‘다중’이 획일화에 대항하는 대안이라는 점을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