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ww.hani.co.kr/h21 |
|
| 기사섹션 : 문화 | 등록 2003.08.06(수) 제471호 |
|
[문화] 키보이스는 깃발을 꽂았는가 [한국 록 음반 기원 논란]
극소수를 제외하곤 존재 자체도 알지 못했던 음반이 39년 만에 재발매됐다. 키보이스의 데뷔 음반 <그녀 입술은 달콤해>(오리지널 발매 1964년 7월 신세기레코드사 SL-10417, 재발매 2003sus 7월 레트로 뮤직 RMLP-0001)가 주인공이다. 재발매 음반이라 하면 보통 과거 음원을 되는 대로 편집해서 실은 CD를 떠올리기 쉽다. 이런 재발매 CD들은 대중음악을 흘러간 유행가에 머무르게 한다. 하지만 음악 애호가 박성서가 ‘발굴’해서 내놓은 이 재발매 음반은 재킷은 물론 마스터테이프로 만든 음원까지 원본 그대로다. 오기(誤記)도 수정하지 않아 ‘사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CD가 아니라 비닐 음반(LP)으로 1천장 한정발매한 것은 그런 맥락에서다. 그래서 음반을 들으면서 해설지를 읽다보면
음반 재킷에 나오는 ‘한국의 비틀즈 Key Boys’라는 문구, 말쑥한 옷차림에 악기를 들고 있는 멤버들의 모습은 록 음악이 당시 한국 청년들에게 미친 영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노래와 연주를 겸하는 소그룹이 전기 악기를 사용해 증폭한 사운드 말이다. ‘노래는 가수, 연주는 악단’이 당연했던 시절, 고작 네댓명이 기타·베이스·드럼만으로 노래와 연주를 겸한다는 건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었다. 점잖치 못하다는 기성세대의 곱지 않은 시선에 아랑곳 않는 ‘속된’ 음악과 태도 또한 마찬가지다.
사료로서 이 재발매 음반은 한국 록의 기원 논쟁을 다시 지필 듯하다. 그동안 한국 록 최초의 음반은 신중현의 록그룹 애드 훠(Add 4)의 데뷔작 <빗속의 여인>이라는 게 다수설이었다(64년 12월 혹은 65년 초에 발매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런데 박성서는 멤버들의 증언과 상세한 고증을 근거로 이 음반이 64년 7월에 발매된 한국 최초의 록 음반이라는 주장을 해설지에서 입증하고 있다. 키보이스가 그해 여름 한국방송에 출연해 신보 발표회 형식으로 연주했다는 것과 64년 7월3일자로 기록되어 있는 취입 카드 및 마스터테이프가 핵심이다. 아직은 하나의 주장이지만 물증과 근거가 만만치 않아서 ‘고수들’ 사이에서 벌어질 향후 토론이 흥미진진할 전망이다.
그런데 정작 음악 자체는 어떨까. 총 13곡의 수록곡 중 6곡이 창작곡이다. 그룹 멤버들의 자작곡은 아니고 당시 신예 작곡가인 김영광의 곡들이다. 하지만 키보이스의 음악이 구미 팝/록의 모방에 그쳤다고 알려진 통설을 재검토할 필요가 있는 증거다. 물론 자작곡만으로 이뤄진 애드 훠의 음악과 비교하면, 키보이스 음반의 창작곡은 나머지 7곡의 번안곡과 거의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유사한 질감을 보인다. 전체적으로는 비틀즈를 비롯해 60년대 초반 ‘백인 청년’ 밴드들의 신선하고 풋풋한 사운드를 너끈히 따라잡고 있다.
한국 대중음악의 정사에서 64년은 ‘동백 아가씨(이미자)의 해’라고만 기록되어 있다. 그렇지만 이 음반을 보면 더 의미심장한 사건이 발생한 해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키보이스와 애드 훠 같은 몇몇 선구자들에 국한되지 않는, ‘한국 팝’이나 ‘한국 록’이 태동하는 집단적 움직임이 있었다. 이는 단지 ‘음악’의 문제를 넘어 새로운 대중문화(청년문화)의 맹아였다. 이번 재발매 음반에 이어 키보이스의 다른 두 음반도 재발매될 계획이고, 다른 곳에서도 ‘잊혀진 한국 록 황금기’의 음반들이 속속 재발매될 예정이다. ‘키보이스 데뷔 음반의 재발매’라는 사소해 보이는 뉴스가 한국 대중문화의 역사와 현재에 대한 진지한 탐구의 기폭제가 되길 기대해본다. 다시 한번.
이용우 | 대중음악평론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