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
![]() |
|
![]() |
![]() |
꼼꼼한 정보, 특별한 체험 여행지 〈론니 플래닛〉 창간한 토니 휠러의 제안… 눈으로 하는 관광에서 가슴으로 느끼는 체험으로
1972년 갓 결혼한 가난한 젊은 부부가 여행을 떠났다. 런던에서 60파운드짜리 중고차를 사서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까지 간 이들은 차를 팔고 버스, 기차, 배를 타거나 히치하이크를 해가며 인도를 지나 인도네시아 발리로 향했다. 다음 목적지는 오스트레일리아. 당시에는 정기여객선이 없어 비행기를 타야 했지만 그들은 요트에서 일하며 배를 얻어탔다. 오스트레일리아에 도착했을 때 남은 것은 27센트와 카메라 하나. 이들의 이름은 배낭여행자의 영웅이 된 토니 휠러와 아내 모린 휠러였다. 부부가 부엌식탁에 앉아 이 ‘짠돌이 신혼 배낭여행’에 대해 쓰고 손으로 직접 묶어서 펴냈던 여행서는 이제 전 세계 여행자들이 가장 많이 들고 다니는 여행서 <론니 플래닛> 시리즈로 발전했다. <론리 플래닛> 시리즈는 현재 22개 시리즈 650여종이 나왔고 17개 언어로 번역됐다. 한국판은 디자인 전문출판사 안그라픽스가 한해에 15권 이상 내기로 계약을 맺었으며 이번 달 처음으로 <유럽> <뉴욕> <빠리> <런던> <싱가포르>편을 내놨다.
배낭여행의 전설을 한글로 만나다
<론니 플래닛> 한국어판 출간에 맞춰 한국에 온 ‘배낭여행의 아버지’ 토니 휠러(57)는 6월4일 기자회견에서 여행예찬론으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실 오늘의 <론니 플래닛>을 있게 한 것도 여행에 대한 그의 마니아적인 열정이다. <론니 플래닛>은 처음부터 많은 사람들이 갈 것 같지 않은 (그래서 별로 장사가 될 것 같지 않은) ‘오지’에 대해 과감히 다뤘다. 에스토니아나 핀란드, 중앙아시아, 남태평양의 통가에 가고 싶다면 의지할 수 있는 여행서는 <론니 플래닛>뿐이다. 심지어 흰 북극곰이 표지에 시원하게 그려져 있는 <북극>편도 있다. 휠러는 “1972년 처음 책을 내기 시작했을 때 거대 출판사들의 여행서는 크고 잘 알려진 나라의 유명한 관광지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타이, 파키스탄처럼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곳에 대한 책을 많이 냈다. 처음 낸 25권 중에 한국도 들어 있었다. 여행자들은 알려지지 않은 새로운 여행지에 열광했다”고 말했다. 100개 이상의 나라에 가봤고, 지금도 일년의 절반 정도를 여행으로 보낸다는 휠러는 여전히 여행 마니아다. 항공사에서 근무하는 아버지를 따라 파키스탄, 서인도제도, 미국 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난 지 1년6개월 됐을 때 런던에서 파키스탄으로 가는 생애 첫 여행을 했다는 그에게 여행은 ‘천직’이다. “여행을 하면 할수록 세계는 점점 더 넓어진다. 아직 갈 곳이 너무 많다. 파키스탄에서 중국의 카슈가르를 가로지르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못 가봤고, 배를 타고 알래스카로 향하는 수로를 지나본 적도 없다.”
여행지 정보는 즐거운 여행의 필수품
휠러가 여행할 때 꼭 챙겨가야 할 것으로 꼽은 것은 “첫째는 (독립적으로 다른 세상을 만날 준비가 된) 자기 자신이고, 둘째는 절대 많이 챙기지 않는 것”이다. 서울에는 처음 왔다는 그는 지난해 6월 2주 동안 북한을 여행했던 이야기를 꺼냈다. “당시 언론에서는 북한에 대한 보도가 많았고 가기도 어려워서 더욱 관심이 생겼다. 베이징에서 기차를 타고 평양에 들어가 비무장지대를 거쳐 동해의 원산, 칠보산, 백두산, 러시아 국경까지 갔다. 북한 사람들은 매우 친절했고 월드컵이 열리고 있어서 호텔 뜰에서 함께 축구도 했다. 이번 한국 여행에서는 남쪽 비무장지대에서 북한을 건너다볼 생각이다. 언어와 역사를 공유하는 남북한이 빨리 통일되길 바란다.” “여행지에 대한 정보가 많으면 많을수록 여행이 즐거워진다”는 것은 그의 철학이다. 그래서 <론리 플래닛>은 여행지의 역사·문화·정치·종교·예술 등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담고 있다. 휠러는 “역사와 문화를 많이 소개하는 것은 우리의 일관된 정책이다. 그 나라를 즐기고,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깊이 이해하라. 떠나기 전에도 준비를 많이 하지만 여행을 다녀와서 그 나라에 대한 책을 더 많이 읽게 된다”고 말했다. <론리 플래닛>의 꼼꼼한 정보는 혀를 내두르게 한다. 350여명의 전문 여행작가들은 책을 쓰기 위해 현지의 모든 것을 직접 체험한다. 버스를 타보고 호텔 침대가 푹신한지 누워보고, 커피는 맛 있는지 마셔보며 모은 정보를 작가의 느낌을 생생히 담은 개성 있는 문체로 서술한다. 또 2년마다 달라진 부분을 찾아 전면 개정판을 낸다. 한국판에는 “한국의 지방 소도시에서 좋은 여관을 찾으려면 다방 ‘레지’에게 물어봐라. 서울에서 밤늦게까지 술을 마시고 인천으로 가려면 영등포역에 가서 ‘총알택시’를 타라” 같은 내용까지 담겨 있을 정도다. 직접 다니며 확인해 그린다는 지도 역시 정확해서 유엔군사령관이 아프리카의 키알리라는 잘 알려지지 지역에 갈 때도 <론리 플래닛>에 실린 지도를 사용했다. CIA는 개정판이 나올 때마다 <론니 플래닛>을 20권씩 주문한다.
외로운 행성 항해하는 나침판이 되어
여행 산업이 발달하고 여행자들이 휩쓸고 지나간 유명 관광지의 환경오염이나 전통문화 파괴에 대한 비판이 고조되면서, 여행산업의 상징인 그에게도 비난의 화살이 날아든다. 그는 “조용했던 발리 해변이 호텔과 관광객들로 뒤덮인 것을 볼 때마다 처음 발리를 소개했던 사람으로서 안타깝다. 그러나 생활수준이 나아진 현지 사람들은 변화를 환영한다. 또 여행객들이 전통문화를 위협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전통문화는 그렇게 약하지 않다. 외부의 도전에 살아남은 전통문화는 더욱 강해진다. 여행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다 있다”는 여행 옹호론을 폈다. 참, 그런데 왜 <론니 플래닛>일까. 휠러는 젊은 시절 조 카커의 노래 <스페이스 캡틴>에 나오는 가사 “내가 하늘을 여행하던 중에 이 사랑스러운 행성(lovely planet)이 내 눈을 사로잡았네”라는 구절에서 러블리 플래닛(사랑스러운 행성)을 론니 플래닛(외로운 행성)으로 잘못 알아듣고 실수로 이 이름을 지었다. 아주 멋진 실수 아닌가 여행은 모든 사람을 ‘외로운 행성’이 되게 하니까.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