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2003년05월22일 제460호 

“나의 정열, 나의 봉평”

인터뷰 | ‘가산문학 선양회’ 사무국장 김남극씨



‘가산문학 선양회’는 30년째 봉평에서 이효석 추모제를 열고 있는 풀뿌리 문학 단체다. 이 모임의 사무국장인 김남극(35·봉평고등학교 교사)씨는 고등학교·대학교 시절 7년을 빼고는 봉평을 떠나본 적이 없는 봉평 토박이다. ‘이효석 문학관’이 문학의 명소로 입소문이 나게 된 것은 김씨의 공을 빼놓을 수 없다. “이효석 문학관은 20여년 전부터 봉평 면민들이 꿈꾸던 사업이었어요. 저도 중학교 다닐 때 문학관 건립 성금으로 500원을 냈던 기억이 있어요.”

하지만 여러 사정으로 이효석 문학관 조성계획은 이후 흐지부지됐다가 1998년 터를 마련하면서 다시 궤도에 올랐다. 국어 교사이자 시인인 김씨는 동네 사람들을 대표하는 전문가 자격으로 문학관 조성 과정에 참여했다. 설계자 선정부터 시작해 벽돌 한장 끼우고 나무 한 그루 심는 것까지 어느 것 하나 소홀하지 않도록 꼼꼼히 감시했다. 건물을 채울 자료를 수집하고 전시를 기획하는 것도 김씨의 몫이었다. 이효석과 관련된 자료가 있다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고, 꼭 필요한 것이라면 어르고 달래 기증을 받아왔다. 봉평면사무소 공무원인 아내를 꼬셔 이효석의 호적부를 몰래 복사해오기도 했다. 요즘도 1주일에 2차례가량 대학생·문인 등 단체 관람객에게 문학관과 봉평 일대를 가이드해주는 일을 하고 있다.

왜 그는 이처럼 이효석 문학관에 정열을 불사르고 있는 것일까? ‘이효석 마니아’라서? “사실 개인적인 문학 취향으로 보자면 문체주의자·스타일리스트인 이효석을 좋아하지 않아요. 하지만 가만히 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이효석이 불행한 인물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당시 일제에 저항하는 것은 만주로 독립운동하는 것말고는 다른 선택이 없었을 텐데 그 갈등을 견디며 사노라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동정이 가더군요.” 김씨는 “문학 때문이 아니라 지역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문학관에 사명감을 느낀다고 했다. “올해도 우리 학교 신입생이 41명밖에 안 돼서 두반으로 분반을 못했어요. 봉평에 문화적 활기가 넘쳐서 젊은 사람들이 들어와 살고 싶은 마을을 만드는 게 제 꿈입니다.”

평창·원주=글·사진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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