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 ] 2003년05월14일 제459호 

도시 ‘녹색 표피’의 진화

인류역사상 건물 위에 정원이 만들어진 가장 첫 번째 사례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의 지구라트에서 나타난다. 지구라트는 주요 도시의 사원 중앙에 지어진 피라미드형의 거대한 계단식 구조물이었다. 고대인들은 지구라트의 평평한 테라스 위에 나무를 심어 바빌로니아 평원으로부터 불어닥치는 뜨거운 바람을 피했다고 한다. 바빌론의 정원 중 가장 유명한 것은 네부카드네자르 2세가 산악지방 출신인 왕비 아미티스를 위해 지은 ‘공중 정원’이다. 서기 1세기에 살았던 그리스 역사가 시큐러스는 이 정원을 상세히 묘사한다. “그 정원은 100피트(30.48m) 길이에 100피트 폭이었으며 단으로 축조되어 극장을 닮았다. 나무를 심은 테라스 밑에는 정원의 하중에 견디도록 돔형의 둥근 천장을 축조했다. 정원을 지지하고 있는 방은 16피트 길이의 들보를 세웠는데, 그 위에 두꺼운 아스팔트 속에 첫 번째 갈대층이 놓였고, 시멘트로 붙인 구운 진흙 벽돌 두 겹이 놓였으며, 최종적으로 흙 속의 수분이 지붕 아래로 새는 것을 막기 위해 동판 층을 놓았다. 이런 지붕 위에 큰 나무도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충분히 복토를 했다. …맨 위층에는 강으로부터 풍족한 물을 펌프로 끌어올린 수도관이 있었다는데 아무도 그것을 보지는 못했다.”

중세와 르네상스 시대에도 교황을 비롯해 메데치가 등 재력가들은 개인을 위한 아름다운 옥상정원을 만들었다. 하지만 옥상정원에서 가장 중요한 기술적 진전은 19세기 후반에 이뤄졌다. 베를린의 중산층을 위해 옥상정원을 조성한 조경가 칼 라비츠는 1867년 파리 국제박람회에서 직접 개발한 경화 시멘트로 방수 처리한 실물 모형을 선보여 박수를 받았다.

19세기 미국 대평원 지역에선 ‘노르웨이식 옥상정원’이 응용됐다. 서부개발 때 다코타·네브라스카 등 미국 대평원으로 옮긴 이주민들은 길고 추운 겨울을 견디기 위해 풀로 지붕을 이은 바이킹족의 지혜를 따랐다. ‘평야의 대리석’이라고 불린 ‘물소풀 잔디’는 건물 자재의 기본이었고, 단열효과가 있는 이 풀로 지붕을 씌웠다. 이주자들은 물론 이 지붕을 장식 목적으로 짓지는 않지만, 몇몇 사람들은 친구나 친척에게 지붕 위에 심겠다며 꽃씨를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전한다.

20세기 들어 옥상정원은 상업적 성공을 거뒀다. 음악가이며 흥행주였던 루돌프 아론슨은 1880년 미국 뉴욕의 브로드웨이에 카지노 극장을 짓고 2년 뒤 평평한 지붕 위에 옥상정원을 덧붙였다. 여름철 실내 극장을 보충하기 위해 지어진 이 옥상정원엔 무대가 마련됐고, 이곳에서 다양한 연주회가 열렸다. 시민들은 번화해지는 주변 도시 경관을 둘러보며 여름밤 정취를 만끽했다. 지붕 위 공간은 모더니즘 건축에서도 주목을 받았다.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코르뷔지에는 지붕 위 테라스를 근대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꼽았다. 하지만 그는 옥상을 적극적 의미의 정원이라기보다는 하늘로 둘러싸인 곳에서 주변 풍경을 가장 잘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여겼다.

영국 런던 도심에 있는 데리 톰스 옥상정원은 현대 들어 가장 화려한 옥상정원의 하나다. 1938년 백화점 6층 위에 문을 연 이 정원은 해마다 봄이면 왕족 또는 고위층이 주최한 자선파티가 열려 사교 행사의 메카가 됐다. 스페인의 대칭형 무어식 정원, 전원의 자연경치를 따온 풍경식 정원, 큰 나무들에 둘러싸인 튜더식 정원 등 세 가지 콘셉트로 꾸며졌다. 이 정원은 유료였는데도 이용객이 많아 백화점 매출 증가에 크게 기여했다. 한때 백화점이 망하고 폐허가 됐다가 건물주가 바뀌면서 새로 복원돼 방문객을 맞고 있다.

단일 건물뿐 아니라 건축군을 통일적인 옥상정원으로 꾸민 사례도 있다. 1933~36년 뉴욕 록펠러센터 지붕 위에 시공된 옥상정원은 5번가를 따라 녹색 벨트를 형성하고 있다. 분수 주변에 쥐똥나무 생울타리로 틀을 잡은 잔디밭을 놓거나 물결모양으로 울타리를 만들고, 큰 테라코타 화분에 가지를 다듬은 관목을 놓았다. 애초 이 건물의 설계자인 레이먼드 후드는 이 정원을 서로 잇는 공중다리를 놓을 계획까지 세웠으나 경제공황 등 이유로 실현되지는 못했다. 최근 옥상정원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생태계를 만들거나 녹색 지표를 마련하는 환경적 이유에서 각광받고 있다. 지붕은 수천년 세월을 지나면서 권력자의 은밀한 공중정원에서 시작해 상업자본이 가꾼 옥상정원을 거쳐 ‘녹색 표피’로 변신하고 있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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