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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군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이슬람과 기독교의 끊임없는 충돌, 그 근원을 양쪽 진영의 두 인물을 통해 분석
이것은 두 남자의 이야기이며, 두 세계의 충돌에 대한 기록이다. 1095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의 결정으로 시작돼 아랍의 저항으로 이어지며 200년 넘게 계속된 십자군 전쟁은 수많은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고, 기독교 세계와 이슬람 세계 사이에 깊은 골을 팠다. 미국의 언론인이며 작가인 제임스 레스턴이 많은 자료들을 모아 쓴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과 신의 전사들>은 격렬했던 3차 십자군 전쟁(1187~92)에서 양쪽 군대를 지휘한 잉글랜드의 사자왕 리처드 1세와 이슬람 제국을 통합한 술탄 살라딘이 주인공인 역사 이야기다.
기사도의 전형과 아랍 영웅의 대결
그의 맞수였던 사자왕 리처드 1세(1157~99)는 월터 스콧의 <아이반호> <로빈 후드> 등 유럽의 역사와 문학에서 기사도의 전형으로 그려지는 것과는 많이 달랐다. 레스턴이 재해석한 리처드 1세는 출중한 외모의 서정시인이기는 했지만 “허장성세와 교활함, 사치스러움”으로 유명했으며, 잔인했다. 리처드가 앞장선 3차 전쟁은 “신의 이름으로 자행된 유대인 학살, 전리품을 얻으려는 탐욕의 분출, 오직 자기만족을 위해 싸우거나 타인을 죽이는 행위”로 포악함이 극에 달한 전쟁이었다. 두 인물을 꼼꼼히 살피는 것도 흥미롭지만, 이 책의 야심은 더 크다. 어느 한 세계에 치우치지 않는 눈으로 중세의 전쟁을 재해석하면서 오늘날까지 계속되고 있는 기독교와 이슬람 두 세계 대결의 뿌리를 찾으려는 것이다. 십자군 전쟁을 계기로 두 세계의 문명 교류는 충돌로 변했다. 성도 예루살렘 탈환이라는 종교적 명분 아래 시작된 십자군 전쟁은 아랍인들의 눈으로 보면 일방적인 침략이자 학살이었다. 1차 전쟁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한 십자군은 예배당에 피신해 있던 200여명의 유대인들을 불태워 죽였고 무슬림들을 잔인하게 살상했다. 이후 다섯번의 전쟁을 치르면서 기독교도와 이슬람교도들은 서로를 죽고 죽이는 행위를 주고받았고, 이 과정에서 본디 이슬람교의 가르침을 지키려 노력하는 방어 전쟁의 개념이던 지하드(성전)에도 공격 개념이 더해졌다. 오늘도 아랍 세계 사람들은 살라딘을 기다리고 있다. 아랍 세계를 다시 통일하고 미국을 등에 업은 이스라엘을 몰아낼 지도자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집트의 나세르, 이라크의 후세인, 팔레스타인의 아라파트, 인티파다에 나선 팔레스타인 젊은이들이 자신을 살라딘과 동일시했다. 아랍인들은 이스라엘을 현대의 십자군으로 여기며, 역사의 필연성으로 이스라엘인들도 십자군처럼 언젠가는 팔레스타인에서 쫓겨나게 될 것이라고 믿는다.
이슬람은 살라딘을 기다리고 있다
2000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십자군 원정 등 신의 이름으로 로마 가톨릭 교회가 저지른 죄를 씻기 위한 사과문을 발표했다. 십자군 전쟁은 기독교 역사와 인류 역사의 오점이었다는 결론이 난 상태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은 ‘성전’의 개념을 들고 나와 ‘악의 축’에 맞서 싸우겠다고 나선다. 수렁에 빠진 경제 등 국내 문제를 뒤로 한 채 외부로 불만을 돌렸고, 가난한 소수민족들이 미국 시민권을 얻기 위해 이라크에 파병돼 목숨을 잃었다. 12세기에도 십자군의 성전에 대한 열정 뒤에는 유럽 귀족들의 불만을 성지 탈환에 분출시키려는 최고위층의 의도가 있었다. 당시 수많은 병사들은 유럽 본토에서 재산을 상속받지 못한 젊은이들과 죄를 지어 쫓겨난 사람들, 세금을 내지 못하는 가난한 자들이었다. 현재의 십자군 전쟁은 중세를 되풀이하고 있는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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