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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문화 | 등록 2003.02.20(목) 제447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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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시체 포육전 그만두라! 여성 과학자의 ‘인체의 신비전’ 관람기… 과학교육이라는 미명아래 벌어지는 생명 경시
지난해 4월부터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열리고 있는 ‘인체의 신비전’은 이제까지 200만명 가까운 관람객이 다녀갔다. 전시를 기획한 독일 박사 군터 폰 하겐스는 “의사들뿐 아니라 일반인들도 정확한 해부학적 지식을 공유해야 한다”는 취지에 따라 모형이 아닌 사람의 실제 몸을 전시해 관심을 모았다. 이는 인체에서 지방과 수분을 빼내고 특수 플라스틱을 주입해 원하는 포즈로 시체를 고정시키는 ‘플라스티네이션’이란 특수기술의 개발에 힘입은 것이었다. 외국에선 인체를 이용해 지나치게 선정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는 논란이 벌어지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이와 무관하게 ‘교육 전시’라는 마케팅이 탁월한 성공을 거두고 있다. 총관람객 중 청소년 이하 관람객이 60%를 차지하고 있으며, 주최쪽이 관람객 3만2772명을 대상으로 ‘전시에 대해 어떻게 느꼈느냐’고 물은 설문조사에서도 응답자의 49%가 ‘교육적이다’라고 대답해 ‘끔찍하다’(16%), ‘예술적이다’(8%), ‘비윤리적이다’(3%)라는 반응을 큰 폭으로 눌렀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본 여성 과학자(무슨) 김재희(
지난해 봄부터 대학로에는 수상쩍은 열기 하나가 보태졌다. 창경궁 옆 국립서울과학관에서 열리는 ‘인체의 신비’ 전시회를 보러 오는 인파 때문인데, 월드컵의 열기도 선거전의 열기도 이 동네에서 사라진 지 오래지만 훨씬 전에 시작된 이 열기는 아직도 식지 않고 진행 중이다. 전국에서 몰려오는 이 인파의 정체가 궁금했는데, 나는 최근에야 사태의 본말을 깨닫게 되었다. 2년 전 같은 전시회가 베를린에서 열렸을 때 난 궁금함 반 두려움 반으로 전시장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표를 사고 입장하기 전 대략 어떤 내용의 전시회인지 이해할 수 있도록 넓은 현관에 맛보기 전시를 해놓은 덕에 이것만 둘러보고 그냥 돌아왔다. 어둠이 깔리고 추적추적 비까지 내리는데, 엽기적인 전시를 보고 혼자 숙소로 돌아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나말고도 그렇게 하는 사람이 많았다. 당시 행사의 제목은 ‘몸의 세계’였다. 인체의 ‘신비’는 절대 아니었다. 직업상 인간의 몸 구석구석을 세밀하게 알아두어야 하는 의학도나 미술학도, 또는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이런 걸 구경할 만한 기회가 생긴 거라면, 괜찮은 거였다. 하지만 이 행사는 절대로 누구나 가서 볼 만한, 더욱이 어린이를 위한 전시회는 결코 아니었다.
시체들의 놀이공원에서 생생한 교육?
올 겨울방학 초등학교 6학년 아들과 함께 손잡고 간 한국의 ‘인체의 신비전’은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적 교육열을 체감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인체의 신비전’은 대학로 지하철역에서 창경궁까지 기다랗게 이어진 줄에 동참하면서부터 시작됐다. 전시를 볼 시간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2월 안에는 꼭 봐야 하는 거라는 얘기가 교실마다 나돌았던 모양이다. 지방에서 전세버스를 타고 온 경우도 상당히 눈에 띄었다. 반에서 그거 안 본 아이는 저밖에 없다고 강북에 사는 우리 애가 그랬고, 분당 사는 선배네 아이도 똑같은 소리를 했다. 아이들은 교실에서 주워들은 소리를 떠들었다. “거기 들어가서요 내 친구는 웩 하고 토했대요. 큰 소리로 우는 아이도 많대요. 사람이 너무 많아 잘 볼 수 없으니까 자세히 안 보면 상관없대요.” 아이들은 과학하는 마음을 배우러 거기 가는 게 아니었다. 너도나도 가는 거니까 자기들도 안 가면 이상할 뿐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들은 달랐다. 그들은 이 훌륭한 ‘과학’의 세계를 놓칠 수 없어 아이들과 손에 손을 잡고 달려온 듯했다. 대학로의 지하철을 빠져나온 어머니들은 아마 앞으로 훌륭한 과학자 혹은 의사가 될 아이에게 벌써부터 과학교육을 시작했다. “너, 저 앞에 가는 저 애 좀 봐라! 쟤는 공부할 자세가 저렇게 되어 있잖니! 넌 왜 집에 있는 책 안 챙겨갖고 왔어!” ‘우리 몸은 어떻게 생겼을까요’ 이런 정도의 제목이 붙은 커다란 그림책을 겨드랑이에 낀 채 기우뚱거리며 가는 남의 집 아이를 발견한 어떤 어머니는 자기 아이를 쥐어박았다. 그러자 아이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던 여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저 앞에 가는 아이, 그 겨드랑이의 책에 꽂혔다. ‘좀더 생생한 과학교육을 시킬 수 있었을 텐데…’ 그들의 눈초리에 서슬이 퍼랬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100여구의 시체를 특수 처리해서 밀랍처럼 만든 뒤, 여러 방향에서 저미고 풀어헤친 볼거리가 진열되어 있었다. 이 전시를 기획한 이는 독일 출신의 의과대학 해부학 교수인 군터 폰 하겐스다. 밤낮 시체와 사는 사람이니, 그로선 시체가 우리가 나물 다듬는 정도로 부담이 없는 모양이었다. 벌건 근육만 남은 시체가 피부가죽을 들고 서 있다든가, 몸을 토막낸 뒤 위나 간 같은 장기를 서랍처럼 열어젖혀 보여주는 시체들. 살과 뼈가 발라진 채 검투를 하거나 담배를 피우거나 체스를 두는 시체들…. 마치 시체들의 놀이공원에라도 온 것 같은 이런 풍경 속에 존재에 대한 공경심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가치 중립을 표방하는 전형적인 가부장제 과학의 섬뜩한 횡포가 느껴질 따름이었다. 저미고 싶은 방향과 각도로 마음껏 썰어놓은 시체들을 보면서 인간의 몸에 대해 유난히 복잡한 잣대를 가진 이 나라에서 저렇게 훌러덩 벗겨놓은 몸뚱이를 아이들에게 거리낌없이 보인다는 게 좀 뜨악했다. 나는 자꾸, 전쟁 동안 인체를 대상으로 별 짓을 다 벌인 히틀러의 친위부대가 생각났다. 정말로 해괴한 점은 이 행사를 소개하는 국내 언론은 이들을 ‘예술’과 ‘과학’과 ‘교육’의 미사여구를 동원해 칭송으로 일관한다는 사실이었다. 첨단 기법으로 고정시킨 인간의 몸, 발라지고 파헤쳐진 인간의 뼈와 살, 야릇한 몸짓의 시체들과 벌이는 ‘굉장한 행사’에 격찬만 있을 뿐 어떤 의혹도 제기하지 않았다. 언론의 이런 자세는 전시회에서 이상한 낌새를 느낀 사람들도 애써 태연한 얼굴을 만들어버리게 했을 것이다.
히틀러의 친위부대가 떠오르는 까닭
죽으면 썩어서 흙으로 돌아갈 몸, 하지만 이 경우는 죽어도 썩지 못하게 방부처리를 한 다음 떡 썰고 포 뜨듯 칼질해 인간의 몸을 눈요깃거리로, 돈벌이 수단으로 만들어버린 것이 아닌가! 이를 어떻게 아무 거부 없이 넉넉하게 받아들이는지 믿기 어렵다. 이렇게 칼질한 시체를 세워놓지 않고는 우리의 몸과 삶과 죽음에 대해 진지한 성찰과 교육을 할 수 없단 말인가 아프리카나 아시아의 가난한 나라에서 이 행사가 들어왔어도 언론은 이렇게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을까 전시의 기획자인 군터 폰 하겐스는 베를린에서 많은 군중이 모여드는 축제인 러브 퍼레이드 기간에 시내 한복판으로 시체 여러 구를 끌고 나와 여러 사람들의 비명과 환호가 울려퍼지는 가운데 이를 해부하는 이벤트를 벌일 작정이었다가 논란 속에 취소하기도 했다. 현재 영국과 독일에선 시체를 볼거리로 만들어 전시하는 행동을 금지하는 안을 국회에서 입법 추진 중이다. 국내의 경우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이 행사는 지방순회를 시작할 예정이라 한다. 그의 홈페이지엔 전시를 원하는 시체를 구한다는 배너가 떠 있다. 시체는 얼마든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얼마 있으면 우리도 모두 시체가 될 테니까.
김재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