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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섹션 : 문화 | 등록 2003.01.08(수) 제442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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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성육신 여성, 원초적 멍에 두 여성 철학자가 나눈 ‘성스러움’에 대한 대화… 도발적인 질문 던지며 여성의 본질에 접근
불가리아 출신인 줄리아 크리스테바(1941년~)는 파리7대학 교수로 언어학과 문학이론을 정신분석의 관점에서 해석하는 기호분석론 연구로 이름을 떨치고 있다. 프랑스에서 태어난 카트린 클레망(1939년~)은 철학박사로 언론인·소설가로 활동하며 현대 프랑스 지성사를 꿰뚫는 주목받는 저작물을 내놓았다. 프랑스 철학계의 두 ‘디바’가 여성들이 지닌 성스러움에 대해 1년 동안 주고받은 편지가 <여성과 성스러움>이라는 책으로 묶여 나왔다. 두 지은이가 ‘여성’이라는 주제로 토론을 시작한 것은 두 사람이 공유한 여성적 체험에서 비롯한 것이었다. 30살 무렵부터 교분을 가져온 두 사람은 철학과 정신분석을 공통 관심사로 가지고 있었고, 둘 다 아이를 낳아 기르는 모성적 경험이 있었으며, 소설을 썼고, 세계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며 살아보기도 했다. 크리스테바는 유년시절에, 클레망은 성인기에 공산주의자가 됐다. 이런 비슷한 경험은 두 사람의 논쟁이 더욱 풍부하고 설득력 있는 지점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었다.
다른 관점에서 여성 바라보기
이 책에서 말하는 성스러움이란 반드시 종교성을 뜻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신앙에 의해 보호받으면서도 악용당하는, 여성들이 뚜렷이 자각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염두에 두지는 않는” 여성에 본질적으로 깃들어 있는 고유한 경험을 일컫는다. 예수 탄생 이후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여성은 어떤 자리를 차지했는가, 이슬람교·아프리카 애니미즘 등에서 여성은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고 있는가 등을 짚어봄으로써 여성이 지닌 가치와 가능성, 그 기회를 모색하자는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여성의 성스러움을 대하는 태도에는 중요한 차이가 있다. 편지를 주고받을 당시 다카르에서 머무르던 클레망은 국제질서 속에서 주변부 세계, 사회관계 속에서 주변인으로 살아가는 제3세계 여성들의 삶에 주목한다. 그러기에 그가 본 여성적 특질로서의 성스러움은 기존 질서에 틈과 균열을 내고 새로운 창조의 공간을 만드는 전복적인 본성이다. “여성 혐오증은 (어느 종교에서나) 빠지지 않지요. 그리스 로마 다신교 역사와 내용이 여성에게 가한 폭력을 정당화합니다. 하지만 이런 폭력에도, 또한 폭력 덕분에 여성적 물질인 피와 젖의 진정한 연금술이 행해진다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연금술을 통해 여성적 물질은 자율적이고 활력 있고 책임질 줄 알고 사랑할 줄 아는 주체로 설 수 있게 되는 것이지요. 성스러움은 배제를 논리적으로 체계화하는 데서부터 성립하는 것이지 자연상태의 실체 그 자체로 성립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 크리스테바는 여성의 대표적 속성인 모성애를 비롯한 사랑에서 성스러움을 찾으려고 한다. “만약 현재 여성들이 모성의 소명을 무시한다면, 만약 이들이 혈연에 대한 애착을 느끼지 못한다면, 한 남자와의 도덕적 계약 너머의 것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이런 이유로 인해 인류는 마음대로 조작되거나 혹은 멸종할지 모릅니다.” 이런 이유로 두 사람의 의견이 가장 명확하게 갈리는 대목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견해 차이다. 크리스테바는 예수가 인간이 된 것이 자애로 가득한 성모 마리아의 육신을 빌리지 않고선 불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런 자애심은 인간이 한 걸음 더 멀리 나아가기 위해 필요한 사랑의 기원으로서, 원초적인 자기애를 밀어내며 자기 희생적인 모성애를 강력히 옹호합니다. …요컨대 성모 마리아는 우리 정체성의 바탕이 되는 초석을 복원시켜 주는데요. 그 초석이란 충동적이고 남근숭배적인 ‘행위’와 대비해 평정상태의 존재인 것입니다.” 이에 대해 클레망은 성모 마리아를 등장시킴으로써 남성 위주의 기독교 교리가 더욱 토대를 탄탄히 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어머니의 전능한 모성애라고 포장하는 것이 실제로는 사랑이 아니라 애착은 아닌지 의혹을 들이민다. “전능한 모성애라는 것이 있지만 유아살해 욕망도 함께 있지요.” 두 사람의 편지는 때로 좀처럼 합의점에 이르지 않을 듯 평행선을 긋기도 한다. 그러나 이들의 글쓰기는 진지한 태도를 견지하면서도 도발적인 질문과 화제를 이끌어낸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크리스테바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으로 추앙받는 카테리나 베닌카사의 개인사를 분석하며 그녀가 완벽히 살아낸 ‘사랑과 의무’의 생활이 사실은 거식증을 앓는 내면세계에서 비롯했음을 밝혀낸다. 카테리나는 자매들이 잇달아 죽자 그 죽음에 자신이 책임이 있다고 느끼고 엄격한 규율로 자기를 끝까지 몰아붙였다. 크리스테바는 이런 카테리나의 고행에 담긴 가학적 성스러움이야말로 곧 삶에 대한 부정이었다고 풀이한다.
이방인으로 살아 남은 여성의 서글픔
대체로 더욱 격렬하고 논쟁적 어조의 클레망은 톡톡 튀는 물음을 던진다. 예컨대 사형수들이 처형당할 때 대소변을 조절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옷이 벗겨진 상태에서 어떤 곤란을 당했을까 상상하는 식이다. 그는 기독교를 비롯해 유대교·이슬람교 등 유일신교가 육체의 분비물을 배제해왔다고 말한다. “하지만 여성은 자신의 육체를 통해 비천한 것과 만날 수밖에 없습니다. 월경혈의 붉은 색을 피하기 위해 푸른색 액체가 나오는 수많은 생리대광고를 보세요. 광고는 남성들에게 푸른 피를 팝니다.” 하지만 그녀가 보기에 피·고름·손톱 부스러기 같은 육체의 분비물이야말로 성스러움과 맞닿는 매개물이다. “아프리카의 성스러운 나무에는 짐승의 피와 젖이 뿌려진 흔적이 엉겨붙어 있고 사람들은 그 흔적을 씻어내지 않지요. 성스러운 나무에서는 피와 젖이 쉼 없이 배어나와야 하니까요.” 그런 까닭에 여성의 육체가 성스러움과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것은 이 ‘비천한 것’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마치 ‘바이올린과 피아노, 소프라노와 메조처럼’ 어울리며 논쟁을 벌이는 두 사람이 결국 이마를 맞대고 합의하는 대목은 여성들이 기존 사회질서에 대해 이방인으로 남아 있다는 점이다. “여성들은 소수집단이며 억압당하는 층입니다. 그래서 여성들은 신들림 또는 히스테리 발작을 일으킬 권리가 있습니다. 이 점은 아프리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의기소침한 상황이 오면 주술, 집단적 숭배, 신들림이 나타나는 것이지요.” 클레망은 많은 여성들이 앓고 있는 우울증이야말로 이 시대 추문의 징후라고 말한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