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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돈줄이 막힌다 대작 잇따른 흥행 참패로 위기설 득세… 탄탄한 기획력·맨파워로 돌파구 찾아
폭우로 물난리가 날 지경에 ‘성소’라는 태풍이 들이닥친 격이다. 추석 연휴를 앞두고 개봉한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이하 성소)의 흥행 성적은 9월24일 기준으로 전국 14만명. 한국영화 사상 최대의 제작비인 110억원을 들였으나 비용을 건질 만한 길이 안 보이는 수치다. 이제 산업으로서의 한국영화는 <성소> 이전과 이후로 나뉘게 됐다.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좌절인가 한국영화의 위기인가?
영화판 뒤흔드는 ‘성소의 재앙’
그래도 뭔가 해결책이 있지 않겠느냐고 묻자, 잠시 말을 멈춘다. “…없다. 그냥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말고는….” 차 대표는 <성소>를 만든 당사자가 아니다. 그는 최근 수년간 한국 영화계를 주도해온 정상급 프로듀서이자 제작자다. 그런 그가 이렇게까지 비관적으로 이야기한 적은 없었다.
블록버스터를 ‘양산’하느라 지난 2년간 끊임없이 투자자를 찾아다닌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 대표는 “올해 상반기를 통해 돈 놓고 돈 먹기 하겠다는 단기 금융자본은 다 떠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작비 폭등으로 금융자본들 쓴맛
갑자기 위기라니? 한국 영화의 상반기 점유율이 46%에 이르고,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고 멀티플렉스 극장이 증가하는 등 영화산업의 성장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외친 게 바로 얼마 전 아닌가. 외형적 수치만 보면 언뜻 그렇게 보인다. 상반기 영화관객 수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9.1% 증가한 1780만명을 기록했다. 특히 한국 영화 관객 수는 무려 46.9% 증가한 834만명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 기간에 개봉한 한국 영화 44편 가운데서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다섯편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공공의 적>(300만명)이나 <집으로…>(420만명)같은 대형 흥행작들이 손님 대부분을 모셔갔다는 뜻이다. 반면 평균 제작비는 2∼3년 전보다 두배가량 오른 40억원에 이르러 투입 대비 손실이 그만큼 커졌다. KTB네트워크, 산은캐피탈, 무한기술투자 등 벤처캐피탈이 쏟아부은 수백억원의 돈이 큰 타격을 입었고, 각종 영화펀드 대부분이 상반기에만 20% 이상의 손실을 입었다. 최근 한국 영화의 제작비 구성은 벤처캐피털을 중심으로 형성된 금융자본이 50∼60%, 양대 산맥을 이루는 CJ엔터테인먼트와 플레너스엔터테인먼트를 중심으로 한 배급사가 30∼40%, 제작사가 10%를 이룬다. 단기 금융자본이 대박을 기대하고 주로 돈을 쏟아부은 블록버스터들이 줄지어 무너졌으니 돈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갈 법도 하다.
비관론이 팽배하지만 반대의견도 만만치 않다. <공동경비구역 JSA>에 이어 50억원짜리 대작
“발전적 자정 거치면 상품성 높여”
많은 영화인들이 블록버스터에 대한 시도 자체를 문제삼지는 않는다. 비용을 많이 쓴다는 건 새로운 소재와 형식에 도전한다는 뜻이고, 국내외 시장 개척에 앞장 설 수 있기 때문이다. 튜브엔터테인먼트의 김 대표가 고집하는 게 이 대목이다. “블록버스터에 매달린다기보다 질 높은 좋은 영화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챔피언>도 필요하니까 수억원을 들여 로스앤젤레스에서 특설링을 만들어 찍고, <공동경비구역 JSA>도 완성도를 높이려니까 수억원을 들여 판문점 세트를 제작하는 게 아닌가. <성소>는 큰 비용을 들인 데 비해 관객들에게 매력을 주는 효과가 없었던 것이다. 누구보다 실수를 많이 했으니까 꼭 만회하고 싶다. 세계 시장을 겨냥해 더 안정된 형태의 블록버스터를 만들고 싶다.”
블록버스터 제작의 문제는 애초 기획한 일정과 범위가 끝없이 늘어지면서 프로덕션 과정이 통제되지 못하고, 그 결과 비용은 비용대로 늘어나면서 작품의 질은 관리되지 못하는 현상이 되풀이되는 데 있다. 이은 프로듀서는 “평균 제작비가 두배로 뛴 주된 원인은 인건비 상승에 있지만, 그동안 스태프들이 받을 걸 못 받았기 때문에 결국 오를 게 올랐다고 봐야 한다. 프로덕션 과정의 세분화·전문화를 통해 촬영기간을 줄이는 식의 방법밖에 없다”고 말했다.
진짜 위기는 영화라는 상품이 다양한 맛을 잃고 소비자의 신뢰를 놓치는 데 있다. 홍콩 영화가 그랬다. 어떤 작품이 잘 나가면 질이야 어찌 됐든 죽어라 비슷한 영화를 양산하는 체제였다. <해피엔드>와 <와니와 준하>를 생산한 청년필름의 김광수 대표가 당장 차기작들의 제작비 마련에 어려움을 겪으며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낙관하는 이유가 성격 탓은 아니다. “조폭 코미디가 잘된다고 하지만 그 가운데서도 나름대로 짜임새 있는 게 잘된다. <오아시스>도 100만명을 돌파했고, <폰> 같은 호러 장르도 흥행이 잘되는 등 다양한 장르가 공존하고 있다. 또 장르와 상관없이 흥행을 이어가는 배우들이 있다. 제작쪽에서 (노하우 등) 준비가 안 됐는데 한탕을 노리고 뛰어든 게 문제였다. 지금의 어려움을 잘 활용하면 오히려 긍정적인 정리 효과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캐스팅 대란이라는 것도 제작사가 난립했고, 그만큼 영화사 만들기가 누워서 떡먹기였기 때문이 아니었나.”
여전희 희망의 근거가 뿌리내린다
능력 있는 제작자들의 생각이 극과 극을 달릴 정도로 한국 영화계는 혼돈 속에 빠져 있다. 하지만 희망은 늘 있게 마련이다. 부산국제영화제의 허문영 한국영화 프로그래머는 ‘관찰자’의 위치에서 이렇게 말한다. “90년대 중반 이후 폭발적으로 붐이 일어나던 무렵과 비교하면, 창의적인 대중 영화와 장르 영화가 감퇴하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시장에서도 그런 영화가 외면받고 있다. 그럼에도 전망은 어둡지 않다. 한국 영화는 흡족하지 않은 조건에서 늘 돌파구를 마련해왔고 지금도 그 힘이 살아 있기 때문이다. 그 힘의 원천은 맨파워에 있었고, 좋은 인력들은 여전히 모여들고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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