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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베의 건설자는 무명의 석공 거시사가 놓쳐온 개인들의 일상적 삶에서 역사를 파악하는 미시사의 도전
옛 동독의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는 자신의 희곡에 등장한 ‘박식한 노동자’의 입을 통해 이렇게 묻는다. “누가 일곱 문을 가진 도시 테베를 건설하였는가?” 역사학은 저마다의 관점에 따라 이 물음에 서로 다르게 대답해왔다. 가장 오래고 대중적인 응답은 특출한 영웅을 그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것이다. 테베의 창설자 카드무스를 비롯한 여러 왕들이야말로 일곱 문의 도시를 만들어낸 역사의 주체이다. 한국 노래방의 한 인기곡은 이런 견해에 정확히 일치한다. “아름다운 이 땅에 금수강산에/ 단군 할아버지가 터 잡으시고/ 홍익인간 뜻으로 나라 세우니/ 대대손손 훌륭한 인물도 많아/ 고구려 세운 동명왕 백제 온조왕/ 알에서 나온 혁거세/ 만주벌판 달려라 광개토대왕/ 신라장군 이사부 백결선생 떡방아/ 삼천궁녀 의자왕/ 황산벌에 계백 맞서 싸운 관창/ 역사는 흐른다….” 이 노래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은 제목 그대로 한국 역사책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위인들의 이야기를 가사로 담고 있다. 모두 5절의 가사는 절마다 어김없이 ‘역사는 흐른다’란 후렴구로 끝을 맺는다. 여기서 역사는 곧 위인 또는 영웅들의 역사다. 이 위인과 영웅들은 주로 정치적 위인이며 영웅들이다.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에 반기 들다
그러나 20세기 이후 적어도 학계의 실제 역사연구에선 이러한 영웅 위주의 사관은, 여전한 그 대중적 인기와는 별개로, 더이상 주류를 형성하고 있지 못하다. 이보다는 역사의 흐름 배후에 놓여 있는 구조와 인간 집단 전체의 활동에 집중하는 견해들이 현대의 역사연구에서 더 큰 설득력과 영향력을 발휘해왔다. 20세기 역사학 최대의 업적으로 불리는 ‘사회사’는 이러한 관점에 기반해 있다. 사회사는 역사를 단순한 정치체제의 변동으로 보는 인습적인 정치사적 관점을 벗어나 역사를 바라보는 시야를 크게 넓혔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사회사의 조류를 만들고 이끈 두축은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였다. 마르크스주의의 시각은 ‘밑으로부터의 역사’를 내세우며 피지배 계급의 활동을 주요한 역사연구의 대상으로 편입시켰고, 사회경제적 과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프랑스혁명 당시 하층민 출신 혁명가들인 상퀼로트의 활약을 재평가한 알베르 소불의 연구나 근대 노동계급의 형성과정에 주목한 E.P. 톰슨의 연구를 기점으로 마르크스주의 역사가들은 노동자, 농민, 여성 등 이른바 소외받는 다수 대중을 역사서술의 중심부로 끌어들였다. 아날학파는 폴 비달 드 라 블라슈나 에밀 뒤르켕과 같은 프랑스 출신 지리학자와 사회학자의 영향을 역사연구에 받아들였다. 1929년 마르크 블로흐와 뤼시엥 페브르가 창간한 <경제사와 사회사 연보>(‘아날’(Annales)은 연보라는 뜻)를 중심으로 활동한 이 학파는 사회를 하나의 전체적 유기체로 이해하려고 했다. 이들은 ‘장기 지속’의 사회구조를 이해하는 데 방점을 뒀으며, 이를 위해 중세 이후 근대까지 거의 변화가 일지 않았던 농민들의 일상사에 관심을 기울였다. 또 아날 2세대의 대표자인 페르낭 브로델은 <물질문명과 자본주의> 등 그의 대표작을 통해 근대세계의 기본구조를 그 물질적 토대의 차원에서 해명하고자 시도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와 아날학파의 계급과 구조만으로는 결코 ‘박식한 노동자’의 물음에 또렷한 대답을 들려줄 수 없다는 반성이 제기됐다. 물론 사회사는 그의 물음에 대한 나름의 확고한 응답을 확보하고 있다. 이 견해에 선 이들은 테베의 건설자는 다름 아닌 민중이라고 대답하거나, 당시 그리스의 사회경제적 발전상태가 테베라는 도시가 건설될 수밖에 없는 구조에 놓여 있었다고 답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낭만적 영웅사관의 신화를 벗어난 사회사의 새로운 문제설정으로도 역사학에 제기된 더 새로운 문제의식을 다 담아낼 수는 없었다. 그것은 개인의 문제였고, 문화의 문제였다. 1970년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일어난 뒤 영국과 미국 등으로 번져간 미시사의 등장은 이러한 문제를 역사연구의 전면에 부각시키는 주요한 계기였다. 같은 시기 프랑스 아날학파 제3세대 역사가들도 문화와 정신의 문제로 역사연구의 축을 이동시켰다. 독일에서 활발했던 일상사 중심의 연구도 이러한 새로운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이다. 미시사 또는 신문화사적 접근으로 불리는 이들의 공통된 문제의식은 기존의 사회사가 제대로 된 밑으로부터의 역사 포착에 실패했다는 것이다. 마르크스주의의 대중 또는 민중은 결국 역사학의 연구대상을 계급이라는 집단적 주체로 환원하는 결과를 가져왔으며, 아날학파의 구조는 개인의 생생한 삶의 결을 놓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시사가들은 미시사에 대해 “거시적 사회사로부터 지배층을 본위로 삼지 않는 관점을 수용하면서도, 지배층에 관한 이전의 연구에서 개성을 찾기 위한 노력을 본받은 것”이라고 규정내리곤 한다(백승종 서강대 교수). ‘지배층 영웅이 아닌 일반 개인들의 일상적 삶을 문화적 차원에서 들여다보기’라는, 기존 두 역사관의 종합이야말로 미시사 또는 신문화사의 관점일 수 있다는 것이다.
독자들의 입맛에도 들어맞아
물론 거시사의 반격 또한 거세다. 틸리 같은 거시사가는 “미시사는 사소한 문제에만 집중하며 개인의 총합을 사회라고 인식하는 오류에 빠져 있다”며 “역사란 거시적인 관점에서 파악되는 사회구조와 그 변동을 탐구하는 작업”이라고 반박한다. 그러나 거시사가 놓쳐온 부분에 주목하는 한 미시사의 존재이유는 분명해 보인다. 이탈리아 출신의 대표적 미시사가 카를로 진즈부르그는 그의 출세작 <치즈와 구더기>에서 ‘박식한 노동자’의 질문에 대해 이렇게 대답한다. “그 어느 사료도 (테베를 건설한) 무명의 석공들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지만 이 질문은 여전히 의미있는 것이다.” 구조 속에서 물화될 수밖에 없었던 무명의 석공들에 그 이름과 의미를 찾아주는 일이 역사학의 과제라는 지적이다.
손원제 기자 wonj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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