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문화 | 등록 2002.02.20(수) 제397호 |
[문화] 아프간, 그 깊은 고통의 이름 영화 <칸다하르>와 소설 <흙과 재>를 통해 만나는 비극의 땅 아프가니스탄
지난해 9월11일 이전까지, 아프가니스탄은 우리에게 먼 나라였다. 아예 존재하지 않는 국가였다고 말할 수도 있다. 그 땅에 대한 사람들의 무관심이 어느 정도인가를 한탄하며 이란감독 모흐센 마흐말바프(45)가 쓴 보고서에는 유감스럽게도 한국 얘기가 등장한다.
2000년 한국에서 개최된 부산국제영화제에 참석했을 때, 다음 영화의 소재에 대한 질문을 받고 나는 “아프가니스탄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곧 “아프가니스탄이란 뭔가요?”라고 물어왔다. 왜 그럴까? 한국과 같은 아시아 국가의 사람들조차 들어본 적이 없을 만큼 아프가니스탄이라는 나라가 잊혀진 것은 무엇 때문일까?(‘아프가니스탄의 불상은 파괴된 것이 아니다. 너무 치욕스런 나머지 무너져내린 것이다’, <당대비평> 2001년 겨울호)
무관심으로 고통받은 땅
마흐말바프가 바로 그 아프가니스탄의 실제 상황을 기록한 장편영화 <칸다하르>를 찍기 위해 국경을 통과할 때, 맨 처음 만난 것은 지뢰 경고 표지였다. 그 간판에는 “아프가니스탄에서는 24시간에 7명이나 지뢰를 밟아 죽습니다. 오늘 혹은 내일의 피해자가 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라고 적혀 있었다. 탈레반 학교에 입학하려고 아이들이 줄을 서는 까닭이 코란을 외우는 대가로 누구에게나 빵을 주기 때문이란 것도 알았다. 학생들은 그 빵을 아껴 가족들을 먹여살리고 있었다. 촬영을 위해 엑스트라를 모으려던 마흐말바프 감독은 사막에 버려진 양떼들처럼 굶어 죽은 난민 시체더미를 보고 배우 선발을 집어치우곤 울면서 빵과 과일을 나눠주었다. 그리고 썼다. “나는 영화를 그만두고 다른 직업을 찾고 싶었다.” 마흐말바프는 그렇게 만든 영화 <칸다하르>를 들고 다시 2001년 부산국제영화제를 찾았다. 아프가니스탄이 9·11 테러로 세계 뉴스의 초점이 된 뒤였다. 사람들은 이제 아프가니스탄이 뭘 뜻하는지 알고 있었다. 9·11 테러 이후 미국은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데, 아프가니스탄은 어떨까. 사람들은 궁금해했다. 마흐말바프의 영화는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아프가니스탄은 다른 나라의 간섭 때문에 고통받았다기보다는 오히려 무관심 때문에 고통받았다.” 3월1일 서울 대학로 하이퍼텍 나다에서 개봉하는 <칸다하르>에는, 그러나 피나 눈물이 없다. 오랜 기근과 전쟁으로 평균 수명이 마흔살을 밑돈다는 아프간 사람들의 슬픔을 그 너른 사막이 다 삼켜버려서일까. 거기서 사람들은 조용하고 무감각하게 현실을 견디고 있을 뿐이다. 세계의 양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더 강렬한 비극이 필요한지 모른다. 지뢰를 밟아 다리나 팔뚝이 날아가버린 사내들은 비행기에서 떨어지는 의족을 잡기 위해 절뚝거리며 모래언덕을 뛰어간다. 그 광경은 울음을 넘어선 장엄한 희극이다. 울긋불긋 아름다운 ‘부르카’(여성들 얼굴 가리개) 밑에서 숨죽여 고통을 이겨낸 여주인공은 말한다. “난 아프간 여자들이 갇힌 감옥에서 도망쳐나왔지만, 이제 다시 그 감옥의 포로가 된다. 나의 여동생, 오직 너를 위하여.” 사람에 대한 사랑만이 신이 버린 땅, 아프가니스탄의 희망이 된다. 영화 <칸다하르>가 영상으로 만나는 아프가니스탄이라면, 소설 <흙과 재>(김주경 옮김, 동문선 펴냄)는 문학으로 만나는 그 아픔의 땅이다. 1985년 프랑스로 망명한 아프간 작가 아티크 라히미(40)는 할아버지와 손자의 짧은 여행을 통해 비극이 끊일 새가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전한다. 마을에 떨어진 포탄으로 가족이 죽어가는 걸 지켜봐야 했던 할아버지는 유일하게 살아남은 손자를 데리고 멀리 탄광에 일하러 가 있는 아들을 찾아나서지만, 발길은 천근만근이다. “그때 내가 어찌하여 파편이라도 맞아 죽어버리지 못했는지 모르겠소! 대체 내가 무슨 죄를 지었기에 죽지 않고 살아서 그렇게 처참한 꼴들을 두눈으로 보아야 했단 말인지….” 아들에게 어떻게 그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아들의 심장에 비수를 꽂으러 가는 길”에서 눈앞에 아른거리는 몰살 현장 때문에 할아버지의 두눈은 불타는 듯하다. 폭격 소리에 귀가 멀어버린 손자는 할아버지에게 묻는다. “왜 군인들이 세상 사람들의 목소리를 빼앗아가버렸느냐”고. 손자의 질문은 할아버지 가슴에 ‘날카로운 슬픔의 칼날’이 되어 꽂힌다. 작가는 그 고통이 녹아내려서 때로 눈으로 흘러나오고, 아니면 면도날 같은 말이 되어 입술 사이로 새어나오다가, 어느날 가슴속에서 폭발하리라고 말한다. 소설 <흙과 재>는 그렇게 한줌 재로 타버린 아프가니스탄의 침묵하는 고통을 대변하고 있다. 책 끝에 붙어 있는 작가 인터뷰에서 아티크 라히미는 이들 3대를 아프간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라고 설명했다. 전통을 지키려는 할아버지(과거), 전쟁과 복수의 악순환 속에서 옴짝달싹할 수 없는 아들(현재), 그리고 더이상 귀도 들리지 않고 내일이면 목소리마저 잃은 채 자신의 틀 속에 갇힌 존재가 되어버릴 손자(미래)가 그들이다. “하지만 이미 상처를 입은 자들은 결코 회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작가는 씁쓸한 미소를 띠며 말한다. 그는 아프간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한다고 덧붙였다. “이 아이들에게서 삶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전쟁으로 장애인이 되어 더이상 자신에 대해서도 세계에 대해서도 생각할 수 없게 된 국민, 그것이 작가가 아프게 내다보는 아프간의 미래다. 이 인터뷰에서 재미난 대목은 부시 대통령에 대한 작가의 언급이다. 아티크 라히미는 9·11 테러를 겪으며 부시 대통령이 하는 말을 들었을 때, “마치 한편의 서부영화를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고 했다. “자신과 다른 세계들은 전혀 보려고 하지 않는 외곬 생각이 여전히 문제더군요. (…) 결국 그런 태도는… 모든 전체주의자들과 똑같은 사고 방식에서 나온 것입니다.”
“부시의 말은 서부영화 같더군요”
북한을 ‘악의 축’이라 몰아붙인 미국 대통령의 한마디가 한반도를 강타한 요즈음, ‘한편의 서부영화를 보는 것 같다’는 작가의 통찰이 얼마나 정확했는가를 새삼 느끼게 된다. 부시 대통령은 지금 자신을 역마차 시대를 사는 서부의 사나이 존 웨인이나 게리 쿠퍼쯤으로 착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20세기 냉전시대의 유물인 줄 알았던 군산복합체의 유령이 다시 살아나 북한과 이란과 이라크를 희생양 삼아 떠돌고 있다. 그래서 문학은 “우리가 보고 있는 것 뒤에 있는 것을 펼쳐보이게 해”주고, 세상 사람들이 잊어가고 있는 역사의 진실을 되새김질로 토해낸다. 한 타지크 시인은 노래했다. “아프가니스탄이 지닌 그 많은 슬픔 때문에 세계의 누군가가 죽어도 이상하지 않다. 그 비탄 때문에 한 사람도 죽지 않는다는 것, 이 얼마나 이상한 일인가.”
정재숙 기자/ 한겨레 문화부 j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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