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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념의 시대에 대한 기억 여운형과 적군파, 다르면서도 같은 인물에 대한 애정을 담은 두권의 책
세계와의 연대를 다짐하며
그리고 이 책들은 가족이 가족을 생각하며 쓴 글이다. <사과나무 아래서…>는 무국적자로 남아 있는 딸 메이(28)에게 일본 국적을 얻어주려 철저히 비밀에 부쳐졌던 딸의 관계를 상세히 밝히는 어머니의 글이고, <…여운형>은 자신을 유독 사랑해주던 아버지를 기억하는 딸의 글이다. 따뜻하고 끈끈한 정감과 함께 아버지를, 또 자신과 딸을 강하게 옹호하는 날선 결연함이 동시에 깃들어 있다. ‘테러리스트’ 시게노부가 올곧게 살면서 정치적 관점이 분명했던 아버지로부터 어렸을 적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나, 여연구가 아버지 몽양을 기억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닮았다. 특히 그 시대답지 않게 여성을 하나의 인격으로 대해주던 아버지에 대해 시게노부와 여연구는 공통의 기억과 감동을 갖고 있다. 시게노부는 조그만 가게로 힘겹게 살지만 굽힘없던 지식인 출신 아버지를 자랑스럽게 여긴다. 어릴 때 또래 아이들과 몰려다니며 한국인 아이들을 못살게 굴자, 상처입은 건 뜻밖에도 아버지였다. 시게노부는 “인간이 인간을 차별하는 어리석음이야말로 세상을 살아가는 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다치게 하는 해악이 되는지” 거듭 이야기하는 아버지로부터 첫 정치적 가르침을 받는다. 가난한 집 사정으로 일찌감치 대학진학을 접고 간장회사에서 취직한 시게노부는 ‘고졸 여성’이라는 벽에 부딪히고는 야간대학에 진학한다. 60년대 중반 대학에 들어선 시게노부가 미-일 안보반대투쟁 등으로 불붙던 학생운동에 끼어든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그가 적군파가 되어 아랍까지 찾아가게 된 이유는 당시 아버지와 나눈 대화에서 드러난다. “나는 민족주의자의 한계를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세계와의 연대를 목표한 국제주의자가 되겠다고 생각했다. 나는 한계를 뛰어넘고 싶다고 아버지에게 말했다. 세계다, 국제주의다 뭐니 하면서 아버지를 혼돈시키고, 그러다가 반론을 당하고. 그러면서 내심 일본만으로는 혁명이 일어날 수 없다는 확신만 굳게 더하고 있었다.” 결국 그는 26살의 나이에 세계 혁명을 위한 해외 거점으로 삼은 레바논으로 향한다. 이후 이스라엘 벤구리온 공항 총격(72년),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 미대사관 점거(75년), 방글라데시 다카 공항의 일본항공기 납치(77년) 사건 등에 관여하게 된다. 지난해 말 일본에서 체포돼 기소중인 시게노부는 ‘테러조직’ 적군파와, ‘테러리스트’로서 뉴욕 9·11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연합 적군 동지가 혁명투사로서의 자각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다른 12명의 동지를 린치 살인한” 연합적군사건(72년) 때 많은 동지가 충격을 받고 조직을 떠났지만 시게노부는 흔들림이 없었다. 당시 팔레스타인에서 1년째 머물던 시게노부는 “자신은 죽음을 피해가면서 남을 죽인다는 것은 잘못이다. 남을 죽인다는 것은 자신의 생명을 상대에게 대신 주는 행위말고는 그 어느 것도 용납될 수 없다. 이 엄연한 진실을 동지들이 외면했다”고 규탄하면서도 “투쟁을 조직화할 필요가 있다”며 벤구리온 공항습격 사건에 임하는 ‘최초의 동기’를 찾는다. 이런 논리는 선뜻 이해하기 어렵지만, 9·11 테러사건에 대해서는 충분히 수긍가는 주장을 편다. “누구의 행위이든 무차별한 폭력은 인간에 대한 범죄행위이며 결코 용서될 수 없는 것”이라며 “이스라엘의 국가정책화된 암살과 폭력, 아랍인과 이슬람교에 대한 편견과 차별, 아무런 제동없는 미국과 이에 영합하는 일본 정부” 등에 문제를 제기한다.
일제시대 몽양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
먼저 1936년 베를린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손기정 선수의 일장기 말소 사건. 일장기를 달고 경기에 나가야 할지 망설이는 손기정을 출전하도록 격려한 것도 몽양이었고, 일장기를 지운 사진과 함께 특집기사를 가장 먼저 실은 건 <동아일보>가 아니라 몽양이었다는 게 여연구의 증언이다. 당시 <조선중앙일보>의 사장이던 몽양은 <동아일보>보다 1주일쯤 앞서 일장기를 지운 손기정 선수의 우승 사진을 싣도록 했고, <동아일보>는 <조선중앙일보> 사진부에서 문제의 사진 동판을 빌려가 게재했다는 것이다. 또 몽양이 1940년 일본을 방문했을 때 히로히토 천황을 독대했다는 증언도 실려 있다. 일본은 중국을 겨냥한 외교 수단의 하나로 몽양을 활용하려 했으나, 몽양은 목숨을 내걸고 조선독립의 당위성을 주장하며 당당히 담판을 벌였다는 게 통역관으로 따라 들어간 사촌오빠의 증언이다. 이 책을 편집한 신준영 <민족21> 편집장은 “요즘 출판가에서는 체 게바라, 등소평, 트로츠키 등 세계적인 정치가들의 평전이 주목받고 있으나 이들이 하나같이 외국인들이란 점이 못내 아쉬웠다”며 “몽양은 격동의 20세기를 함께 살았던 이들과 비교해볼 때 결코 뒤떨어지지 않는 실천가였다”고 머리말에 적고 있다. 이렇게까지는 아니더라도 몽양을 둘러싼 여러 인물과 사건에 대한 증언은 아직 정리되지 못한 해방 전후의 현대사를 풍부히 하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임에는 틀림없다. 일본의 잡지 <통일평론>에 실렸던 여연구씨의 회고록을 옮긴 이 책에는 신 편집장이 몽양의 자녀로는 유일한 생존 인물인 세째딸 여원구씨와 나눈 인터뷰, 여운형과 김일성의 회담을 기록한 러시아 비밀문서 등을 부록으로 싣고 있다.
이성욱 기자 lewoo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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