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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 영화를 빌리다
‘신시뮬레이션’ 게임 <블랙 앤 화이트>는 신이 되어 사람들을 돕고 다스려야 하는 게임이다. 가끔 섬을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을 도와 배를 만들고 식량을 구해주면 드디어 배는 항구를 출발한다. 그때 뱃머리에 서 있는 두 남녀, 여자가 앞에 남자가 뒤에 서서 손을 맞잡고 바람을 향해 양팔을 좌우로 크게 벌린다. 물론 <타이타닉>의 바로 그 장면이다. 이렇게까지 노골적인 패러디는 아니라도 게임에서 영화의 연출기법을 발견하는 건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다. <파이널 판타지> 6편의 오프닝은 영락없는 영화 오프닝이고, 대전 액션게임 <소울 캘리버>의 무술시범의 카메라워크 역시 영화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게임은 영화의 연출뿐 아니라 설정도 알게 모르게 많이 빌려온다. 캡콤의 <바이오 해저드>는 1천만장 이상 팔린 호러게임이다. 이 게임이 나왔을 때 낯설지 않았던 건 호러영화 팬이라면 이미 익숙한, 강시같은 좀비들이 쏟아져나왔기 때문이다. 로메로 감독의 영화들을 비롯해 B급 호러영화에서 빼놓을 수 없는 바로 그 좀비들이다. <바이오 해저드>, 또 <더 하우스 오브 더 데드> 같은 게임들을 보면 <살아난 시체들의 밤> 출연진들이 단체로 찬조 출연이라도 한 것 같다. 재미있는 건 <바이오 해저드> 3편의 TV CF를 로메로 감독에게 맡겼다는 것이다. 역시 호러게임인 <엑스터미네이션>은 극지방 연구소라는 설정에서 생명체의 몸에 융합해 들어가는 몬스터까지 누가 봐도 영화 <더 씽>의 판박이다. <딥 피어>를 비롯해 호러게임에서는 괴물이 희생자의 배를 찢고 튀어나오는 일이 많다. 영화 <에이리언>이 없었어도 그랬을 것 같지는 않다. 영화 주인공 혹은 영화배우의 캐릭터를 게임에 슬쩍 출연시키는 일은 더 흔하다. 대전 액션 <데드 오어 얼라이브>의 ‘쟌 리’를 보면, 깡충대면서 엄지로 코를 치는 모습이 누가 봐도 이소룡이다. <그란스트림 전기>는 애니메이션 <에반겔리온>의 주인공 성격 설정을 그대로 가져왔다. 또 아예 배우 금성무와 계약을 맺고 캐릭터를 이용한 <오니무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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