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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즐거운 도발, 현대미술 힘 빼! 난해함 덧씌워 서구미술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경향에 반란을 꾀하는 두 개의 전시회
미술에 대해서 어느 정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변기를 보고 피식 웃음을 지었을지도 모른다. 윤진섭씨의 작품 <변기>는 바로 그 유명한 마르셀 뒤샹의 <샘>을 패러디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르셀 뒤샹은 1913년 뉴욕에서 열린 앙데팡당전에서 변기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아무런 미술적 손질없이 작품으로 발표했다. 변기는 전시장에 전시됨으로써 배설물을 흘려보내는 원래의 기능을 뛰어넘어 하나의 조형물이 된 것이다. 20세기 미술의 패러다임을 바꾼 ‘오브제’가 처음으로 미술에 등장하는 역사적 사건이 바로 <샘>이었다. 물건을 이용해 다른 물건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물건 그 자체가 예술작품이라는 생각으로 나오는 물건을 뜻하는 오브제의 효시가 바로 뒤샹이었다.
‘변방’의 미술인 함께 모이다
특히 미학적으로 이론의 여지가 많은 서구, 특히 미국 중심의 현대미술이 그대로 우리나라에 도입되면서 국내 화가들이 이를 맹목적으로 추구한다는 비판은 미술계 안팎에서 공히 거센 상황이다. 의미 없어보이는 언어유희에 지나지 않는다는 극단적 평가도 나온다. 그럼에도 이런 경향은 이제 대세를 이루고 있다. 동시에 관객은 과연 미술이 무엇이냐는 의문만 더 커지면서 미술과 멀어져가고 있다. 이런 미술 조류에 대한 반성과 비판의 의미를 담은 전시회가 요즘 두곳에서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서울 신문로 성곡미술관의 ‘나는 작가가 아니다’와 소격동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주재환씨의 개인전이다. 두 전시회 모두 어렵고 근엄한 ‘척’하는 현대미술에 대한 도발과 냉소가 담겨 있다. 성곡미술관이 개관 5주년 기념전시회로 마련한 ‘나는 작가가 아니다’전은 전시회 이름처럼 모두 전문 미술가들이 아닌 사람들의 작품으로 꾸며졌다. 그냥 아마추어의 전시회가 아니라 굴지의 미술관에서 의도적으로 비미술가들의 작품을 컨셉으로 잡았다는 점에서 극히 이례적인 전시다. <변기>를 출품한 윤진섭씨도 패션회사에서 전시장 디스플레이를 하고 캐릭터와 미니어처를 만드는 실용미술을 생업으로 하는, 전통적 의미의 순수 미술가와는 거리가 먼 회사원이다. 다른 작품들도 모두 미술과 전혀 관련이 없거나 정통 순수미술과는 거리가 있는 ‘변방’의 미술인들이 만든 것들이다.
비미술가도 난해할 수 있다?
전시회를 구경하는 일반관객으로선 작가들이 비미술가라는 점을 모른다면 또 하나의 난해한 현대미술전으로 받아들일 정도로 이들 비미술가의 작품들은 그럴듯해 보인다. 이것이야말로 바로 전시회가 노리는 바다. 마치 미술가가 만들지 않아도 그 비슷한 정도의 작품을 보여줄 수 있다는 조롱처럼 들리기도 한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윤상진씨는 기본적으로 요즘 우리 현대미술이 맹목적으로 서구사조의 아류로 흘러가는 데 대한 ‘반성’의 의미로 전시를 마련했다고 설명한다. “영상이나 설치미술은 모두 서구에서 발생한 것이다. 지금 우리는 이 외래 미술에 의식없이 흔들리고 있다. 서구의 첨단미술이라고 하는 미술을 안 하면 전근대적이고 후진적인 것이 아니냐는 분위기에서 외래의 새로운 변화를 우리 것으로 체화하는 노력이 부족한 현실이다. 미국과 영국에서 떴다고 하면 쫓아가기 바쁜 우리 미술계의 문제점을 정면으로 드러내고 싶었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주재환씨의 개인전(내년 1월21일까지. 02-733-8940)도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과 반론을 만날 수 있는 전시회다. 미술대학(홍익대 서양화과)을 1학기 만에 중퇴한 뒤 외판원, 방범대원, 미술잡지 기자, 출판사 주간 등 다양한는 직업을 전전하면서도 79년 ‘현실과 발언’ 창립동인으로 활동했고 민족미술협의회 공동대표를 지냈던 이 재야화가는 환갑을 한해 앞두고서야 첫 개인전을 열었다. 그리고 모처럼 들고나온 수많은 작품에 현대미술에 대한 의문과 비평을 녹여놓았다. 그 가운데 빈 액자에 자기 생각을 쓴 글을 덧붙여 전시한 <미학> 시리즈는 ‘요즘 미술’의 요지경 같은 분위기에 비수처럼 날이 선 도발로 읽힌다. 특히 이 시리즈 가운데 한점인 <미학(이브 클라인)>은 현대미술의 간판스타로 이름을 날린 프랑스 화가 이브 클라인이 빈 액자들을 전시장에 내걸고 점당 8만프랑에 팔았던 유명한 사건을 정면으로 겨냥하고 있다. 주씨는 이브 클라인처럼 텅 빈 액자를 걸어놓고는 “(이브 클라인은) ‘위험스런 주변환경에서는 철저한 도피’가 그의 비회화미학이라 한다. 나는 비회화를 모방하여 금테 두른 텅 빈 액자를 내걸었다. 팔리기를 바라면서. ‘위험스런 주변환경에서는 현찰이 중요’ 이것이 나의 오랜 체험미학이다”라고 써놓았다. 자신도 돈을 벌고 싶어 빈 액자를 내걸지만 과연 이브 클라인이 전시장에 선보였다는 이유만으로 액자를 사듯 자신의 그림을 사겠다는 사람이 있겠냐는 질문인 것이다. “도대체 빈 액자를 왜 사는가. 이게 바로 자본주의적 미술판의 허상이고, 온갖 이름으로 포장된 미술이 허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을 우리도 그저 따라가기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다.”
주재환씨의 ‘빈 액자’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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