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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닿을 듯 말 듯한 당신, 책이여! 깊어가는 가을, 독서가들이 추천하는 독서법… “읽더라도 알고 읽자”
가지치기식과 잡독법, 바른 선택을 위해
아예 책에 대한 공력이 전혀 없는 사람이라면 어디부터 시작해야 할까. 숭문고 국어교사인 허병두씨는 일단 서점에 가볼 것을 권유한다. 책의 홍수와 만나고, 책을 읽는 사람들 옆에 있는 것만으로도 책을 읽고 싶은 욕구가 솟는다는 것이다. 대형서점은 볼 것도 많고 진열된 책도 많아서 폭넓은 책을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고, 헌책방이나 작은 골목 서점은 시끄러운 사람들을 피해 오붓하게 서서 볼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 재계의 독서가로 알려진 SK 손길승 회장 역시 책과 일단 접촉할 것을 권유하는 사람 중 하나다. 바쁜 시간에 책읽는 요령으로 손 회장은 자동차 안에 책을 비치할 것을 권한다. 손이 닿는 곳에 책이 있으면 몇쪽이라도 읽게 되고, 일하는 자투리 시간을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손 회장의 차에는 요즘 <세계화 이후의 세계화>(로웰 브라이언)를 비롯한 여남은권의 책이 실려 있다. 일단 책을 접하기 시작했으면 책을 골라야 한다. 책을 고르는 기준은 많지만 크게 가지치기식과 잡독식으로 나눌 수 있다. 가지치기식은 한 분야를 정하고 그 분야에 관련된 다른 분야를 읽고 하는 식이다. 정계의 독서가로 알려진 손세일 전 원내총무의 독서법은 가지치기식이다. “관심이 생기면 그 분야를 집중적으로 섭렵하는 겁니다. 한 분야를 집중해서 읽다보면 자연스럽게 연관된 분야로 관심이 옮겨갑니다. 예를 들어서 한국근대사에 관한 책을 읽다보면 아시아근대사에 대한 책을 안 읽을 수가 없어요.” 이런 식으로 책을 모아 국회 ‘손세일 서고’에 2천권을 기증하고 남은 책이 1만5천권 남짓이라고 한다. 고서(古書)수집으로 유명한 남재희 전 노동부 장관은 반대되는 책 선정법을 갖고 있다. 손에 닿는 대로 읽는 잡독법이다. 이 방법은 뜻하지 않게 좋은 책과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젊을 땐 역시 닥치는 대로 책을 읽어야지요. 나는 아직까지도 잡독입니다, 잡독.” 고등학교 때 토머스 울프며 오스카 와일드를 원문으로 읽었는데, 그때 읽은 책 중에는 아직 국내에 소개되지 않은 것도 있다며 뿌듯하게 자신만의 독서역사를 회상한다. 언뜻 질서없어 보일지라도 자기만의 기준을 가지고 책을 골라나가면, 그것이 곧 자기의 독서흐름을 이루게 된다는 것이다.
책에 따라 마라톤형과 산책형을 병행하라
독서법 역시 “그냥 책을 손에 쥐고 읽으면 되는 거 아냐?” 싶지만 사실 책읽는 법은 여러 가지다. 소리내어 읽기, 밑줄치며 읽기, 동사에 주목하며 읽기, 심상(心象)에 주목하며 읽기…. 현재까지 알려진 독서법은 150개 이상이라고 한다. 김열규 교수는 독서법을 책에 맞게 달리해야 한다고 말한다. “책에는 마라톤형 책이 있고 산책형 책이 있습니다. 마라톤형은 젊은 시절이면 누구나 흠뻑 빠져서 밤을 꼴딱 새우는 그런 책이지요. 스탕달의 <적과 흑>이라든가, 도스토예프스키의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이라든가. 그런 책을 읽고 있으면 확 빠져들어가서 마지막장을 넘길 때까지 잠도 안 자고 독서에 몰두하게 되지 않습니까? 반면에 한쪽 읽고 덮고 생각해보고, 한쪽 읽고 덮고 해야 할 책이 있습니다. 산책형 책입니다. 산책형 책에는 파스칼의 <팡세>, 토마스 만의 <마의 산>, 경구집이나 단상집이 들어갑니다. 한번에 서너줄을 읽더라도 많이 생각해봐야 하는 책입니다. 불과 서너줄이라도 깊은 함축성이 있습니다.” 김 교수는 독서력이 얕을 때는 마라톤형 책을 읽어 흥미를 키우고, 어느 정도 집중력이 쌓이면 산책형을 읽으면서 묵상할 것을 권한다. 그는 또 진지하게 삶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가 왜 사는가’,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삶의 고민이 생기게 마련이며, 그런 고민이 자연스럽게 다양한 책읽기를 유도한다고 덧붙였다.
책읽기도 창조적으로
한편 문화평론가 진중권씨가 제시하는 책읽는 법은 조금 다르다. “책을 읽을 때 두 가지를 염두에 둡니다. 첫째는 책을 유의미한 해석의 지평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즉 이 책이 어떤 맥락에서 의미가 있는가 하는 것이죠. 둘째는 책의 언저리 사항, 그러니까 문화나 역사나 사회배경을 염두에 두고 전체를 조망합니다. 이렇게 하면 책에 대한 해석이 풍부해집니다.” 진씨는 즐기기 위한 책을 읽을 때는 잡독을, 어떤 분야의 지식을 얻으려는 목적을 갖고 책을 읽을 때는 서지목록을 뽑아서 탐독을 하는 두 가지 방법을 섞어쓴다. “학교 앞 리어카라든지 개가식 도서관, 화장실에 비치해놓은 잡지, 이런 우연한 책과의 만남을 즐깁니다. 그러면 생각지도 않았던 조합의 아이디어가 나오죠. 한 내용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이해되는 겁니다.” 정과리씨가 말한 것은 텍스트에 충실하는 독서법이고, 진중권씨의 독법은 사회·역사적 맥락을 중요시하는 독서법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어느 쪽도 버리기 어려운 방법이지만 책읽을 때 “텍스트에 집중을 못한다”라는 사람이 있다면 생각을 훌훌 날려볼 필요도 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몽상의 시학>에서, “텍스트에 얽매이지 말고 자기 생각을 따라 책을 읽어보라”고 말한다. 독서도 하나의 대화인 만큼 텍스트를 충실하게 이해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책에 자신의 사유를 불어넣는 것도 독서의 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당신을 기다리는 수천의 소우주
글 이민아 기자mina@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park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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