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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매스컴의 ‘포로’가 되지 말라 상업논리에 의해 무차별적으로 쏟아지는 뉴스의 홍수… 독자와 시청자의 주체적 역할 찾아야
미국 클린턴 대통령과 백악관 인턴사원 모니카 르윈스키의 ‘부적절한 관계’에 대한 스캔들은 98년 1월부터 전세계 신문의 국제면을 도배하기 시작해 몇달 동안 지긋지긋하도록 이어졌다. 한 인터넷 뉴스사이트가 백악관 주위의 소문을 기사화하면서 시작된 이 스캔들의 폭발력은 엄청났다. 미국 방송사들은 교황의 쿠바 방문을 취재하러 출장갔던 간판스타급 기자들을 모두 소환해 클린턴의 성생활을 취재했다. 미국의 거의 모든 언론매체들이 이 뉴스로 도배를 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미국의 일부 신문들은 “우리 신문에는 (클린턴과 르윈스키의) 섹스 스캔들을 싣지 않습니다”라고 선전했을 정도였다.
커뮤니케이션 업체의 구세주, 선정성
이른바 정보의 시대다. 이제 정보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상품이 됐다. 정보를 취급하는 커뮤니케이션 업체들은 전화, 영화, 텔레비전, 광고, 비디오, 컴퓨터 관련 거대기업들과 합병하고 제휴하면서 새로운 세계의 지배자들로 등장하고 있다. 문제는 이렇게 거대화된 매체들이 서로가 서로를 베끼고 닮아지면서 엇비슷한 정보들을 쏟아내는 과잉매체화 현상을 빚어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정보를 팔아먹는 데 혈안이 돼 경쟁하다 난관에 봉착하자 일종의 구세주를 내세웠다. 실제 의미와 가치의 중요성보다는 모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그리고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뉴스의 으뜸가는 소재로 삼게 된 것이다. 거대 커뮤니케이션 업체들은 정보를 더욱 많이 팔아먹기 위해 클린턴과 다이애나를 골랐고, 이 거대기업의 영향력에 놓인 세계 각 나라의 매체들도 이 뉴스들을 받아서 보도했다. 결국 원하든 원치 않든 전세계 사람들은 자신들의 삶에는 중요한 의미가 별로 없는 이 두 가지 뉴스를 끊임없이 되풀이하는 매스컴의 포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일반 대중에는 이런 커뮤니케이션계 내부의 본질적인 문제점은 쉽사리 감지되지 않는다. 그저 감으로만 뭔가 잘못돼가고 있는 것같이 느낄 수는 있지만, 정확한 이유와 배경을 알기는 쉽지 않다. 정보를 주체적으로 선별하고 이해하기는 더욱 힘들고 그저 쏟아지는 텔레비전 화면과 신문기사를 보면서 커뮤니케이션이 제공하는 이미지를 진실로 믿어버리고 만다. 프랑스의 언론인 이냐시오 라모네의 책 <커뮤니케이션의 횡포>(원윤수·박성창 옮김, 민음사 펴냄, 9천원)는 이런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를 정면으로 고발하고 비판하고 나섰다. 라모네는 이런 경향을 주도하는 미디어기업들이 틀을 짜는 산업구도 아래에서 정보는 그저 상품일 뿐이고, 미디어의 기본 사명인 민주적 토론을 밝히고 진작시키는 것을 압도해버리는 현실을 통렬하게 꼬집는다.
정보 얻으려면 품을 팔아라
<커뮤니케이션의…>은 이런 커뮤니케이션 시대의 병폐를 생생한 사례들을 들어가며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비록 구미권의 사례들이어서 다소 생소하긴 해도 라모네가 뜻하는 바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 모든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하는 것은 바로 커뮤니케이션의 수혜자이면서 동시에 피해자들인 독자와 시청자들이란 점을 라모네는 강조한다. 커뮤니케이션 시대는 대중에게 정보를 다루는 데 있어 편리함과 용이함을 줬지만 대신 정보를 얻는 것이 수용자 주체의 적극적 의지의 실천 행위라는 점을 잊게 했다. 텔레비전 화면 속에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이미지를 ‘보는 것’이 ‘이해하는 것’이라고 믿고, 클릭 한번으로 화면에 뜨는 정보를 보는 것을 정보를 얻는 것이라고 믿는 착각에서 벗어나려면 정보를 얻기 위해 품을 팔고 그것을 자기것으로 체화하려고 수용자들이 노력하는 수 밖에 없다. 정보를 얻기 위해 공을 들이는 대가를 치러야만 시민들은 민주주의적인 삶에 현명하게 참여할 권리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구본준 기자bonb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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