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음식 이야기 | 등록 2002.02.05(화) 제396호 |
[음식이야기] 겨울에 무르익는 ‘토종 묵’ 충북 옥천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다 마치 휴게소를 들르듯 무리없이 거쳐갈 수 있는 고장이다. 고속도로가 작은 읍마을을 신읍과 구읍 사이로 가로질러가고, 톨게이트 거리가 짧아 읍내 어디든 5분 안에 닿을 수 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맛볼 수 없는 담백한 토속음식들이 고루 박혀 있고, 그 내력들 또한 만만치 않다. 톨게이트를 나서며 오른쪽인 신읍쪽으로 불과 100m 거리에 순수한 한우고기로 끓이는 따로국밥집 ‘따로집’(043-733-4323)이 있는데, 이 집의 육개장과 갈비탕 또한 일품이다. 거기서 2∼3분 거리에는 20년 내력을 자랑하는 올갱이국밥집 미락올갱이집(043-733-4845)이 올갱이국밥과 올갱이해장국을 기막히게 끓여낸다. 또 톨게이트를 나서며 왼쪽으로 들어가는 구읍에는 말 그대로 옥천 구읍을 대표하는 구읍할매묵집(043-732-1853)이 평생 한 솜씨로 가꿔낸 묵맛을 선보이고 있다. 구읍할매묵집은 주인 김양순(75) 할머니가 25살 되던 해 어려운 살림을 보태기 위해 주변 산에서 나는 상수리를 모아다 묵을 쑤면서 시작했다. “여태껏 손을 놓지 못하고 있지만, 농사 한톨 짓지 않고 5남매를 모두 길러냈어”라며 신고한 지난날을 일러준다. 묵은 메밀묵과 도토리묵 두 가지를 내고 있다. 가을에서 초여름까지는 두 가지를 다 맛볼 수 있지만 가을에 거둬들인 메밀이 대개는 초여름이면 떨어져 1년 중 3∼4개월은 도토리묵만 내게 된다고 한다. 특히 겨울 한철은 어느 것이나 그 맛이 절정을 이루게 된다. 동치미나 김치국에 말아내는 채묵은 가을에 담근 김치국물이 한참 제맛이 나고, 찬으로 곁들이는 풋고추지까지 무르익어 가히 계절의 진미로 극찬할 만하다. 이 맛을 한번 확인한 고객들은 경부고속도로를 지나며 옥천톨게이트를 그냥 지나칠 수 없게 된다. 입소문이 이어져서 서울과 부산, 대구를 비롯해 멀리 강원도 차량까지 찾아든다. 묵을 쑤는 방법도 남다르다. 순수한 토종메밀과 도토리를 갈아 앉힌 전분을 큼직한 무쇠솥에 장작을 때며 쑤어내 옛맛이 그대로 살아 있다. 젓가락 솜씨가 다소 서툴러도 묵이 툭툭 끓어지는 법 없이 찰지고 담백하다. 적당한 크기로 송송 썰어 그릇에 담고 참기름과 김가루를 얹은 뒤, 동치미국물을 부어내면 채묵이고 여기에 밥을 한 그릇 곁들이면 채묵백반이 된다. 1인분 4천원으로 가격도 부담이 없다. 김양순 할머니가 이미 칠순을 넘어섰지만 아직 정정한 모습으로 며느리와 함께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하나하나 챙겨내는 묵맛은 어디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고유한 우리 묵맛이다.
음식이야기를 이번호로 마칩니다. 그동안 우리의 맛을 찾아 전국을 누비고 다닌 필자 김순경씨와 이 난을 아껴주신 독자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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