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60년 전통의 고유한 하동관 곰탕.
설렁탕과 곰탕의 구별이 애매해지고 있다. 옥호는 분명 설렁탕집이라고 되어 있지만 소머리국밥을 내는 집이 있고, 곰탕을 주문했는데 설렁탕이 나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고객들도 전혀 의문스럽게 여기지 않고 주인도 태연한 표정이다.
하지만 곰탕의 본고장으로 손꼽는 전남 나주을 찾으면, 지금도 30∼40년 맥을 이어오는 곰탕집들의 조리법은 설렁탕과 뚜렷이 구별되고 있다. 또 서울의 곰탕집으로 내력이 가장 오래다는 하동관(02-776-5656) 역시 설렁탕과는 완연하게 다르다.
나주의 유명 곰탕집이나 하동관의 공통된 점은 탕국물을 내는 주체가 쇠고기 양지살과 사태살 등 지방이 적은 살코기를 사용하고, 설혹 뼈를 넣을 경우라도 사골이나 잡뼈를 넣을 뿐 소머리나 잡부위를 일체 넣지 않는다. 국물을 우려내는 과정도 설렁탕처럼 24시간 뼈가 가루가 되도록 고는 경우는 없다. 계속 기름을 걷어내며 알맞게 우러나면 뼈를 건져내고, 양지살과 사태살도 알맞게 삶아졌을 때 건져놓았다가 다시 국에 얹는 고기로 쓴다. 따라서 설렁탕국물이 진하고 깊은 맛이라면, 곰탕국물은 맑고 담백하면서 시원한 맛이 앞선다. 그래서 술꾼들의 경우 파를 듬뿍 얹고 깍두기국물을 알맞게 풀면 해장국을 대신할 수 있고, 식사손님들도 깔끔하고 개운한 맛을 즐긴다. 담아내는 그릇도 설렁탕은 대부분 뚝배기를 사용하지만 곰탕의 경우 갈비탕이나 국밥처럼 놋그릇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하동관은 이런 점에서 곰탕의 고유한 맛과 격식을 흐트리지 않고 이어오는 고유한 곰탕집이라 할 만하다.
사진/ 40년 가깝게 하동관 곰탕맛을 이끌어온 장석천씨와 부인 임정옥씨.
내력 또한 만만치 않다. 1940년대 후반 문을 열어, 1964년 주인이 한번 바뀌었을 뿐 음식맛은 물론 주방식구들과 해묵은 테이블까지 개업 때와 비교해 크게 변한 데가 없다. 올해로 하동관을 인수한 지 38년째를 맞고 있다는 주인 장석천(63)씨의 곰탕에 대한 자부심 또한 한결같아 60여년 내력의 하동관 곰탕맛은 앞으로도 변함이 없을 것 같다. 특히 주방장격인 권혁녀(64)씨는 40년, 지배인 강복형(62)씨는 47년간 한자리를 지켜오고 있어, 음식맛과 분위기가 바뀔래야 바뀔 수가 없다는 것이 주인의 이야기다.
기름을 말끔히 걷어낸 양지살과 사골을 알맞게 삶아 기름을 한번 더 걷어낸 맑은 국물에 밥을 말고 양지살과 함께 맛돋움으로 양(소의 위)을 몇 조각 얹어 두툼한 놋그릇에 담아낸다. 찬도 탕맛을 해치지 않도록 잘 익은 깍두기 한 가지만 낸다. 큼직한 그릇에 담아낸 싱싱한 파를 한 수저 떠넣고, 깍두기를 얹어 먹으면 개운하게 입안에 감도는 맛이 바로 곰탕의 참맛이다.
신선한 탕맛을 내기 위해 새벽에 끓인 탕국이 일찍 떨어지는 날은 오후 2∼3시에도 문을 닫는 것이 60여년간 지켜온 전통이다. 하루가 지난 묵은 국물은 사용하지 않는다. 100% 한우고기와 신선한 사골뼈로 금방 끓여낸 것이 아니면 깔끔하고 개운한 곰탕 고유의 맛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고객의 대부분이 이같은 맛이 입에 밴 오랜 단골들이고,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와 대물림해주며 2∼3대로 이어지는 손님들도 쉽게 만날 수 있다. 곰탕 6천원, 특곰탕 7천원, 수육(350g) 2만원.
나도 주방장|진품 깍두기
깍두기, 더 무엇이 필요하랴
쇠고기 탕국에 깍두기는 천하 일품의 궁합인 것은 두말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최근에는 탕에 곁들이는 깍두기 역시 옛맛이 아닌 경우가 종종 있다. 담그는 방법이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음식점들이 저녁에 무를 썰어 소금물에 절여놓았다가 아침에 양념에 비벼 즉석에서 내는데, 제대로 양념을 비벼넣고 알맞게 익힌 깍두기맛이 아니다.
하동관의 경우, 하루에 내는 탕이 일정해 이에 알맞게 깍두기도 하루 간격으로 담가 제대로 익혀낼 수 있다. 양념과 간이 제대로 배고 알맞게 익은 깍두기맛이 제대로 난다. 맑고 담백한 탕국물에 상큼하게 익힌 싱싱한 깍두기가 어우러지는 맛은, 실제로 다른 찬이 더 필요할 이유가 없다. 곰탕에 꼭 맞게 안성맞춤격인 깍두기 한 가지만을 곁들였던 옛 어른들의 안목이 가히 수준급이 아니었나 싶다. 깍두기국물을 주전자에 따로 담아놓았다가 국물을 더 청하는 고객들에게는 원하는 만큼씩 듬뿍 따라주는 것도 옛스런 장면이다. |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