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섹션 : 음식 이야기 | 등록 2001.11.06(화) 제383호 |
[음식이야기] 입에 녹는 선지, 담백한 국물 먹는 즐거움으로 1년 중 가을만큼 행복한 계절이 없다. 체중이 늘어날 정도로 입맛이 살아나기도 하지만 겨울 동안 다시 원상태를 회복할 수 있어 크게 염려할 일도 없다. 특히 요즘 같은 날씨는 따끈하게 국물있는 음식을 찾아가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선짓국은 소의 피를 맛있게 조리해낸 독특한 음식이다. 돼지피를 소재로한 순대와 함께 동물의 피를 유효적절하게 가꿔낸 고유한 먹을거리로 그 내력이 오래다. 피는 본래 생명을 상징하는 신성한 개념이 깃들여 신에게 바치는 제물 이외에 사람이 먹는 것을 금기시 했다. 그래서 육식을 주로 하는 나라에서도 피를 이용한 대중음식은 극히 드물다. 그러나 우리 음식에서는 오랜 세월 서민들의 친숙한 먹을거리로 뿌리를 내려왔고 돼지피는 순대의 주재료로 소피는 선짓국으로 진미를 장식하고 있다. 선짓국에는 피의 바탕이 되는 철분과 단백질, 비타민 등 혈액을 구성하는 요소들이 고루 들어 있고, 소화흡수가 빨라 빈혈치료에 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요즘처럼 다이어트 열풍으로 빈혈증상이 잦은 여성들에게는 다이어트와 상관없이 입맛과 조혈기능을 고루 갖춘 매우 효과적인 별미이기도 하다. 영동고속도로 이천나들목에서 장호원쪽으로 고속도로 밑을 막 빠지면서 오른쪽 사동마을에 자리잡은 장모님해장국(031-634-0828)은 선짓국의 제맛을 느껴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집으로 손꼽힌다. 주인의 오랜 경륜이 배어 있는 선지는 담백하고 말랑하면서 부드러운 질감이 고소하게 입맛을 당기며 신선하다. 감미로울 정도로 입에 녹는 선지가 담백한 진국물과 어우러지고 흐물흐물하게 푹 무른 구수한 우거지까지 곁들여져 누구든 행복감에 젖어들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따라내는 찬들도 하나같이 맛깔스럽고 뜸이 잘 든 이천쌀밥도 입에 착착 붙는다. 주인 권순용(66)씨의 손맛은 이미 70년대 초 영등포의 중심거리인 옛 영등포경찰서 앞에서 ‘우창해장국’ 하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을 만큼 크게 소문났었다. 30년 손맛이 밴 선짓국맛은 누구나 감탄할 만큼 깔끔하고 고소해 선지에 대한 이런저런 선입견들을 한순간에 지워버리고 제맛을 즐길 수 있게 한다. 권씨는 일손이 달려 우창해장국을 넘기고 쉬던 중, 이천 현대전자에 입사한 아들 내외를 도우러 내려와 이천에 머물면서 소일삼아 장모님해장국의 문을 열었는데 오히려 아들 내외까지 직장을 그만두고 대물림하게 됐다. 모든 음식은 신선한 재료와 주인의 정성이 기본이라는 권씨는 지금도 국물을 내는 데 사용하는 사골과 소뼈를 멀리 평창군에 거래를 터놓고 한우뼈만 고집하고 있다. 해장국과 함께 내는 도가니탕과 도가니수육도 각별한 맛이 있다. 간판도 처음에는 우창해장국이란 옛 이름을 그대로 내걸었는데, 맏사위인 개그맨 이홍렬씨가 자신의 사진과 함께 장모님해장국이란 새 간판을 써들고와 달아놓았다고 한다. 그래서 마치 체인점간판처럼 보이지만 체인점은 한곳도 없다. 해장국 5천원, 도가니탕 8천원, 도가니수육 2만원.
글·사진 김순경/ 음식 칼럼니스트 www.OB-gree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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